영화 <아가씨>, 억압된 현실 해방 위해 동성애 코드 활용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는 폭력적이고 절망적인 현실에서 맺은 여성의 연대를 예쁜 화면에 담아낸 작품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여주인공은 처지가 다르지만, 여성이라는 젠더 때문에 의도치 않게 어떤 역할을 맡게 된다. '히데코(김민희 분)'가 권위적이고 가학적인 남근 중심의 성문화에 마지못해 가담해 음란소설을 낭독한다면, '남숙희(김태리 분)'는 주체적이고 당찬 성격에 맞지 않는 하녀 역을 요구받는 점에서 그렇다.
히데코를 백작 행사를 하는 '고판돌(하정우 분)'에게 넘기고 조선을 뜰 예정이었던 숙희와, 그런 숙희를 자신의 이름으로 병원에 가둔 뒤 자유를 찾기로 고판돌과 공모한 히데코는 애초의 계획을 버리고 사랑함으로써 서로를 믿기로 한다. 이때 서로를 이어준 건 가학적이고 일방적인 남성 중심의 성문화와 대조되는 여성 간의 성적 결합이다. 그 결과 히데코는 스킨십으로도 달궈지지 않는 자신의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경험을 하고, 동시에 자신의 이모부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숙희 역시 더 이상 조선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내다 팔며 근근이 살지 않을 수 있게 됐다.
반면 히데코와 숙희를 각각 착취하던 남성은 자신이 욕망하던 대상을 얻지 못한 채 몰락한다. 히데코의 이모부 '노리아키(조진웅 분)'는 어릴 때부터 히데코가 성적 흥분을 느끼지 못한 채 음서를 읽는 데 집중하도록 훈련시켰던 장본인이다. 고판돌이 히데코를 해외로 빼돌리고, 숙희가 그의 음서를 훼손함으로써 그는 가진 모든 재산을 잃게 된다. 애초에 히데코를 이모부로부터 해방하는 대가로 히데코에게 거액을 요구한 고판돌은, 결국 그에게 매력을 느껴 강제로 관계를 맺으려다 실패하고 노리아키와 함께 죽음을 맞는다.
이 영화가 상업적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여성의 연대에서 가장 이슈가 될 만한 성행위와 노출을 앞세워 두 여성의 관계를 이끌어갔기 때문이다. 억압받는 현실에 맞선 여성들의 결속이 성행위로 반드시 이어지진 않을 텐데, 이 영화는 구태여 여성 간의 동성애를 절망적인 현실을 타개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소수자의 권리 문제와도 관련이 있는 동성 간 결합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데만 집중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겠으나, 이렇게라도 상영관에서 더 많은 관객을 만나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 결과 관객은 이 영화에서 약자의 연대라는 나름의 의미 있는 메시지를 읽었으리라 믿는다.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주인공 '고애신' 역을 맡았던 김태리의 연기는 농익은 김민희의 연기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김태리는 또박또박한 발음에 확실한 발성 그리고 고전적이고도 사랑스러운 외모까지, 내 마음에 쏙 드는 배우다. 이 영화에서 일본인으로 분하거나 하녀로 나온 배우들은 미스터 선샤인에서 비슷한 배역을 맡아 눈에 띄기도 했다. 잔인하면서도 지질하고 소심한 구석이 있는 연기에는 이모부 역을 맡은 조진웅이 제격인 듯했으며, 비열한 듯하다가도 묵직한 것도 같은 고판돌은 하정우가 깔끔하게 연기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