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치 않은 불행에 대처하는 방식에 대하여

영화 <화차>, 인간의 존엄은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가

by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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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변영주 감독의 영화 <화차>는 자신의 노력이나 잘잘못과 상관없이 불행을 맞은 이들의 서늘한 풍경을 담은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 '차경선(김민희 분)'은 위험한 사채를 끌어다 쓴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를 잃고 자신도 고아처럼 자란다. 사채를 끌어다 쓴 채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죽어야만 변제되는 빚 앞에, 경선은 이런 기도를 읇조릴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 저를 측은하게 여기신다면 부디 우리 아버지를 죽여주세요."


의도치 않은 불행을 맞닥뜨린 건 그를 사랑한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고향의 한 교회에서 어린 시절의 경선과 만난 '고승주(이희준)'는 경선과 결혼해 경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지만, 그가 운영하는 식당까지 찾아온 사채업자의 행패에 못 이겨 경선과 이혼한다. 이런 경선과 결혼하려고 한 '장문호(이선균)' 역시, 경선이 자신의 신분 노출 직후 도주한 경선의 실체를 알게 된다.


인간은 자신이 의도치 않은 불행에 맞닥뜨릴 때 과연 인간다움을 버리지 않을 수 있는가. 빚 독촉에 이어 성매매까지 가담하며 자신의 존엄을 잃어야 했던 경선은 자신을 대신할 육체를 찾기 위해 벌인 살인극에서 자신의 뺨을 수 차례 때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사채업자가 경선을 성매매 업소에 팔아넘기기 전에 자신에게 한 행위이기도 하다. 사채업자의 빚 독촉에 몸과 마음이 모두 고단해진 승주의 표정엔, 더 이상 경선을 향한 애틋한 마음 같은 건 남아있지 않는 듯했다.



movie_image (1).jpg 김민희는 영화에서 가녀린 듯하면서도 강단 있고, 서늘하면서도 사연이 있는 듯한 경선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


그러나 이런 시련이 다른 누군가에게 번지지 않도록 하려는 게, 경선과 문호가 보여준 존엄은 아니었을까. 경선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행복했던 문호와의 한 때를 떠올리지만, 자신 때문에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사랑했냐고 묻는 문호에게 고개를 저어, 자신을 향한 문호의 마음을 닫히게 만든 듯하다. 문호 역시 경선의 대답을 듣고도, 경선이 뛰어내린 빌딩에서 같은 행동을 하려는 등의 강한 미련을 보인다.


이 영화는 영화 '아가씨'에서 빼어난 연기를 보여준 김민희가 나온 영화를 찾다가 만난 작품이다. 어딘가 멍해 보이면서도 사연을 간직한 듯한 김민희의 연기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경선의 모습과 맞아떨어졌다. 처음엔 무력해 보이다 점점 뜨거워지는 전직 경찰 역의 조성하 연기도 영화를 든든하게 뒷받침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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