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직원이 나를 위아래로 훑던 날, 나는 무너져내렸다

남성보다 여성 비난하는 시선 존재...다수 여성은 이 때 퇴사

by 안녕하세요

Q. 회사를 계속 다니고 싶은데, 제 모든 상황을 전하자니 왠지 부끄러워요.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요?


A. 저 역시 이 단계가 부모님께 알리는 일 다음으로 껄끄러웠어요. 회사의 모든 직원이 서로 친하게 지내는 분위기상 제 얘기가 나오지 않을 리 없었죠.

다른 건 다 떠나서 저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려고, 휴직과 복직 계획을 짜서 최대한 빨리 말하려고 했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제 상황을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직원은 없었어요. 남성보다 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는 이 현실이 어서 개선됐으면 좋겠어요.



부모님께 알리는 것만큼이나 곤혹스러운 순간이다. 다니는 직장에 임신 소식을 말하는 일이었다. 아기집이 단단하게 자리 잡고, 시간이 흐를수록 회사에서의 모든 인간관계가 전부 신경 쓰였다. 임신이 티 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배가 굉장히 크고 빠르게 불러오는 체질이었다. 한 직원이 내가 휴직 사실을 알리기도 전에 먼저 임신 사실을 물어볼 정도였다. 차라리 그렇게 묻는 말에 답하는 건 비교적 어렵지 않았다. 최소한 그 사람에 대한 내 마음은 편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복도 등에서 우연히 만날 때마다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는 일부 직원의 태도였다. 그 표정에는 비난과 동정, 멸시와 냉소 등의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런 시선을 마주칠 때마다 나는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내 상황과 선택을 안줏거리 삼아 술자리에 올릴 게 분명했다.


2018년 한국 여성정책연구원의 '임신 중단에 관한 여성의 인식과 경험 조사'를 보면, 전국 16~44세 여성 2006명 중 61% 정도의 여성이 혼전 임신한 여성은 피임방법도 모르며 자기 관리를 잘 못하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있다고 답했다. 또 81%가량은 임신·낙태에서 남성보다 여성을 비난하는 시선이 사회 전반에 있다고 보고 있었다. 아마 내가 느낀 그 직원의 인식도 이런 생각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직장을 쉽게 그만두기도 어려웠다. 20대 때 오랜 시간 비정규직 직업을 전전하며 ‘취준’을 해온 나는, 여성에게 취업시장이 특히 가혹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불안한 삶은 개인의 영혼을 갉아먹을 정도였으니까. 그때에 비하면 내게 ‘시선 폭력’ 외에 직접적인 비난을 하지 않는 지금의 상황은 조금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절실해지면 별별 기억을 다 소환해 지금의 상황을 합리화하는 것 같다.


그런 시선이 신경 쓰여 불안하고 우울해질 때마다 스스로 생각했다. 어차피 지나갈 일이야. 과정이 잘못됐다고 해서 결과까지 잘못된 건 아니니까. 아기만 건강하게 출산하고 나면 몸조리하고 육아하느라고, 나를 비난하는 것 같은 시선은 전혀 느끼지 못할 거야. 내가 신경 쓰면 쓸수록 몸이 반응해서, 자궁 내 환경도 아기에게 불편해질 거야.


그렇게 시간이 흘러 휴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임신 후기가 되니, 정신은 온통 건강한 출산과 출산 준비, 그리고 그 이후의 삶에 쏠려 다른 사람의 시선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게 됐다.


아기가 두 살이 된 지금, 실제 내 관심사는 아기를 건강하게 키우고 일을 해내는 데 집중돼 있다. 전세 계약 만료 후 이사하는 문제, 이사 후 아이 어린이집을 보내는 문제, 양가 부모님 챙기는 일 등으로도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대부분의 여성은 결혼과 임신·출산 계획을 알린 이후 최소 한두 번 이상은 다른 직원들과 얼굴을 붉히거나, 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선택을 한다. 무역회사에 다니던 A는 갑작스러운 임신 사실을 회사에 알릴 자신이 없어 급작스럽게 퇴사했다. 한 은행의 계약직이었던 B는 언젠가 회사를 그만 둘 예정이라고는 했지만, 계획에 없던 임신을 이유로 실업급여를 받을 조건도 따질 겨를 없이 퇴직했다고 했다.


속도위반을 불가피하게 회사에 알린 경험이 있는 여성으로서, ‘다 지나갈 거야’ 하는 식의 위로 외엔 해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멘털 붕괴'를 방지하기 위한 최대한의 자구책을 찾는 일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래와 같이 고민했다.


시차 두고 임신, 결혼 소식 알려 '멘털 붕괴' 방어


1. 결혼 사실만 알린다

임신 사실은 말하지 않고 결혼 사실만 알린다. 보통은 경력단절에 대한 우려나 다른 직원들의 험담이 두려워서 이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임신 후기가 될수록 티가 날 테니 다소 근시안적인 해결 방법이다. 퇴사하지 않는 이상 출산 전에 어떤 이유로든 휴직을 해야 하는데, 출산 및 육아휴직 급여를 받지 않는 것도 경제적으론 부담이 될 수 있다. 나는 퇴사하지 않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모두 사용할 계획이어서 이 선택지는 배제했다.

2. 결혼 사실을 알린 뒤 임신소식을 알린다

내가 선택한 방법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뒷소문이 많고 빠른 곳인 데다 정년도 긴 편이어서, 사실대로 말하지 않거나 작은 단서가 생기면 소문이 더 무성해지곤 했다. 나는 복직 후에도 이 곳에서 일할 계획이어서 좀 더 진솔해지기로 했다.


이 방법은 소식을 듣는 사람의 심적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결혼 전에 임신 소식을 알리면 '그럼 결혼이 무산되면 아기는?'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결혼 후에 알게 되면 '막연하게 추측하긴 했지만 역시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기를 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키울 수 있으니, 적어도 상대방 입장에서 좀 더 편하게 축하해줄 수 있다.


실질적인 이유도 있다. 당장 업무 면에서 더 인정받아야 하거나, 승진을 앞두고 있을 때 먼저 임신 소식을 알리면 그만큼 일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임신은 조금 더 늦게 알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우리 부서는 내가 하지 못한 일을 상사들이 책임져야 하는 구조라서,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선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이렇게 되면 내가 임신 여부에 대해 확실하게 물어보거나 답하지 않는 이상, 내 임신 여부에 대해선 뜬소문만 있는 상태가 된다. 일단은 이 상태로 두고 결혼 전까지의 시간은 결혼 준비와 일에 몰두해서 ‘멘털 붕괴’를 방어했다.


3. 결혼 소식과 임신소식을 함께 알린다.

친한 친구들에게는 이 방법으로 겹경사를 알렸다. 상대방의 반응이 걱정되긴 하지만, 내가 임신 사실을 밝힌다고 해서 친구들이 피해를 보진 않기 때문에 이 방법을 택했다. 내가 먼저 솔직하게 얘기하니 친구들은 놀라면서도 먼저 얘기해줘서 고맙고 축하한다면서 응원해 줬다. 일단 말했으니 받아들이는 건 너의 몫이라는, 일종의 심리적 폭탄을 건넨 느낌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편안한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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