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내가 조커가 되도록 선동한 이 누구인가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토드 필립스 감독의 영화 <조커>에서 주인공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분)'을 절망에 빠트린 건 자신의 정서 불안만은 아니었다. 광대라는 이유로 그의 소품을 들고 달아나 폭행하는 거리의 10대들, 아서에게 총을 소지하게 해 그를 직장에서 잘리게 만든 동료, 그의 코미디를 우스갯거리로 만든 유명한 TV 프로그램의 진행자 모두가 그를 조금씩 갉아먹었다. 결정적으로, 가장 믿었던 어머니가 자신의 질환을 만든 장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이성의 끈을 놓고 본능과 손잡는다. 스스로를 보듬고 주위를 돌아보기보다,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한 이들에게 복수해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각성한 그는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의 모습이었던 광대로 분한 뒤 춤추며 가파른 계단을 내려온다.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게 쌓아 올린 그의 인간성이 내리막길로 추락하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영화 시작부터 뭔가 사건이 터질 것 같아 조마조마하던 긴장감은, 그의 변신과 기괴한 춤 동작 이후엔 안도감으로 변한다. 이제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딘가 그들과 다르고, 이상하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을 조롱한 이들에게 직접적인 복수를 하면서 쾌감을 얻는다.
아서의 음울하고 절망적인 현실은 그가 조커가 될 수밖에 없었던 개연성을 묵직하게 뒷받침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분노의 총구를 타인에게 겨누는 일까지 용납할 수는 없다. 폭력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은 당장은 시원하고 통쾌하지만, 그만큼의 대가가 따른다. 죽음이 두렵지 않아 기꺼이 처단에 나서는 그를 보며, 관객은 그를 동정할지언정 그 행동을 긍정하지는 말아야 한다. 비록 자신의 잘못과 무관하게 거리에 쥐가 창궐하거나, 일할 곳이 없어 절망에 빠졌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공격은 매혹적이고 통쾌하지만, 걷잡을 수 없으며 파괴적이므로.
2시간 넘는 러닝타임의 <조커>는 흡입력 있는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로 지루할 틈이 없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을 군데군데서 영상으로 구현했다. 조커의 상징이랄 수 있는 기괴한 웃음소리는 전혀 웃기지 않은 상황에 터져 나와서 듣는 내내 불편했다. 영화 말미에 자동차 보닛 위에서 자신의 피로 더 선명한 입술 분장을 하는 그의 눈은, 이상하게 공허하고 슬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