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글 스물
스무 번째다. 하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는 '스물'로 불리는 것이 더 그럴싸하다.
스물이 주는 말랑말랑함,
무엇을 시작해도 될 것 같은 기대감, 모든 것이 실패할 것 같은 두려움
그 두 가지가 섞여 아직 단물이 잔뜩 들어있는 (방금 뜯어 입 안에 넣은) 껌 같은 느낌.
<스물>이라는 영화도 있었는데. 그 스물은 나의 스물과 너무 달라서 낯설고. 남자아이들의 스물이라서 그럴까, 거기서도 꼰대력이 발동돼서 라떼는 안 그랬다고를 남발하기도 했으니까. 근데 감독은 나보다 나이 많을텐데. 감독님의 스물 판타지를 보여준 걸까.
오늘 이야기는 중구난방이다. 딱히 할 이야기가 없을 때, 이런 모양새가 나오잖아. 그렇게 이쪽과 저쪽을 헤맨다. 어딘가 내가 안주할 곳을 찾아, 부유하다 둥둥 떠다니는 이야기. 지금 내 안의 이야기가 그러네. 이 이야기도 저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정작 뭘 하고 싶은 건지는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선 절망.
다시 스물로 돌아와서,
스물에는 누가 그렇게 콕 발라놨는지, 어른의 냄새가 박혀있었다. 그것은 마치 나 아닌 누군가는 절대 맡지 못 할 향을 풍기고 있었고, 아무리 내가 설명해도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짙은 절망의 색을 품고 있었다. 그것이 사무치게 외로웠고 미치도록 좋았다. 내가 아니면 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못 해. 아무도 널 알아주지 않을 거야. 그 가련함을 동경해 그 자체가 나인 것처럼 둥둥 떠다녔다. 땅에 발을 붙이지 않고도 세상을 걸어다닐 수 있었다. 꽉 막힌 사방의 벽을 뛰어넘어 앞으로, 옆으로, 때로는 저 위로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오직 나만이, 이 세상을 알고 있어.
스물의 생은 짧았다. 하나, 둘씩 내 팔과 다리를 붙잡는 것들이 늘어났고, 나를 아래로 아래로 끌어당겼다. 어느 새 나와 함께 올라 온 그 향은 점점 더 위로 올라갔지만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붙잡힌 팔이, 다리가 사랑스러웠다. 따스한 체온이 느껴지는 곳마다 색이 피어올랐다. 온통 무채색인 곳에 아름다운 빛깔들이 채워져갔다. 그 냄새는 썩 좋지 않았지만, 어찌 됐든 사랑스러웠다. 어쩌면 떠나가는 것이 퍽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직, 스물만을 알고 있었구나.
발을 딛는 곳마다 색이 피어올랐다. 열기가 끓어올랐다. 그것은 다정함의 색일 때도 있었고,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외면의 색일 때도 있었다. 처음 접해보는 것들은 깊은 자국을 남겨, 그 안에서 썩기 시작했다. 누군가 나를 붙잡고 그 상처 위에 자신의 상처를 포갰다. 조금씩 아물어가는 상처에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냄새가 났다. 시간이 흘러, 그것은 향을 잃기 시작했다. 킁킁 코를 대고 맡아봐도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킁킁, 킁킁 몸 여기저기를 맡아봐도 느낄 수 없었다. 무수히 많은 상처 위에 무수히 많은 상처가 포개졌고 다시 자국이 남고 다시 포개져 어느새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기쁘다. 무색무취의 인간이라니, 나는 이제 어떤 향도 내 안에 담을 수 있구나. 하지만 스물의 향은 더이상 맡을 수 없었다. 그 가련함을 여전히 동경하지만, 그것은 이제 나의 것이 아니다.
다정함의 색이 돋아난 사람에게 가까이 가, 그 다정함을 조금 훔쳤다. 무색무취의 인간은 오늘 다정했다.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시련에게 가까이 가, 그 시련을 조금 덜어냈다. 무색무취의 인간은 한껏 그 냄새를 맡았다. 찌르르 울리는 냄새에 하마터면 잡아먹힐 뻔 했다. 역시 이건 버려야겠어. 어서 내게 다른 냄새를 줘.
그 모든 색은 사무치게 외롭지도 않지만, 미치도록 좋지도 않은 냄새였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스물은 어른이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