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괜찮을 우리를 위해

괜찮을거야

by melody

나홀로 일본 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약 20년의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찾아온 무력감에 충동적으로 티켓을 끊었다. 딱히 무엇을 하겠다고 다짐한 건 아니었다. 그저 이 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아는 사람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여행은 좋았다. 여행 이야기를 마저 더 하고 싶지만 그건 따로 올려보도록 하고.

3주라는 시간 동안 오사카와 교토를 목적없이 걷고는 했다. 오롯이 행복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있고 싶어. 내게 아무도 말걸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무연고자의 도시에서 나는 그제야 엉망진창이 된 나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여행지를 떠나기 싫은 건 당연했다.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니 몸까지 아팠다. 귀국하고 이틀 뒤에 건강검진이 있었다. 남편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건강검진이었기에 아낌없이 해볼 작정이었다.


"금식해야하는 거 알지? 대장내시경도 신청해놨으니까 죽 같은 거 먹고."


하지만 식도락의 나라 일본에서 금식이라니. 내 의지는 이미 떠나기 전부터 가느다란 심지만이 나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귀국 3일 전 끝내 활활 불타버리고 말았다.


"도저히 금식을 할 수가 없다. 너 혼자 해."


그렇게 내 건강검진은 불발됐다. 지나고 보니 그 결정이 우리를 살렸다. 살렸던 건가?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로 인해 발견하고야 말았으니.

둘이서 나눠했어야할 건강검진 비용이 한 사람에게 몰렸다. 그래서 남편은 그간 해보지 않았던 검사들을 진행했다. 한국에 없던 나는 정확히 몰랐지만 CT검사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귀국 후 한달 정도가 지난 후 어느날 밤, 남편이 조심스레 내게 말했다.


"정밀 검사를 해봐야할 것 같대."


그때 내가 어떻게 말했던가. 어떤 표정으로 들었던가. 별 생각이 없었다. 남편은 지극히 건강 체질에 이보다 더 성실할 수 없을 정도로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 아마 이런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괜찮을거야. 괜찮아. 그럴 리가 없어!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그때 가서 걱정하자."



그리고 1차 항암치료를 앞둔 어젯밤 남편이 걱정하며 눈물을 보였다. 갑작스레 시작된 항암치료였다. 정기검진 일주일 전에 찍은 것이 결과가 안 좋았던지 진료 전부터 다른 검사 예약들이 잡혔다. 남편은 불안해했다. 내색은 안 했지만 사실 나도 예감하고 있었다. 아, 이제 시작되는 구나. 치료를 최대한 미루고 싶어했던 마음을 알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 지도 알았다. 그러니 해줄 수 있는 말도 이전과 같았다.


"괜찮을거야. 괜찮아."


하지만 걱정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듯 내뱉던 말은 더는 할 수 없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말은 꾸역꾸역 삼켰다. 대신 닥치면 걱정하자는 말은 똑같이 했다. 물론 이번에는 나에게 하는 말이다.



괜찮을거야. 괜찮아. 잠든 얼굴을 보다 문득 겁이 난다. 이 사람없이 내가 괜찮을 수 있을까. 체감할 수 없는 미래가 이토록 두려워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그래서 기록해본다. 당신과 내가 괜찮을 미래를 기다리며 사투하는 글을, 괜찮다고 믿게 만들어 줄 삶의 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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