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글을 쓰는 것이 두렵다
글을 생업으로 삼겠다고 마음 먹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날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토해내고 다시 삼켜서 내 것으로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글 속에 내가 없었다. 간결하게, 짧게, 이해하기 쉽게, 단지 목적에 맞게 사용되는 언어는 점점 내 흔적을 지울 뿐이었다. 하지만 나와 다른 이들이 있었다. 같은 목적이지만 다른 색깔을 내는 사람들. 나는 왜 이것밖에 쓰지 못할까. 한참을 자책하고 못남을 숨기기 급급했다. 그럴수록 점점 나는 지워져갔다.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내 한계를 스스로 느낄까봐, 나에게조차 숨기는 방법은 읽지 않고, 쓰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 처음부터 내 안에 '나'란 존재는 있었던 것일까. 과거를 미화하듯, 지난 나를 지금의 나보다 더 높은 곳에 올려두고 스스로를 위로 하는 것이 아닐까. 어느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마 이게 정답일 것이다.
글에서 맛이 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되려 작가가 아닌 경우가 많았다. 소소하게 SNS에 글을 올리거나 취미로 했을 뿐인데 그들의 글에서는 빛이 났다. 짠맛이 나고 단맛이 나고 계속 읽고 싶게 하는 중독의 맛이. 생업을 하는 모든 이들을 뛰어넘을 정도로 반짝이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 그 사람들은 태초부터 가지고 태어난 것이겠지. 나외의 차이점이 뭘까. 경힘이 다른 것? 이 나이 쯤 되면 경험이라는 것은 개수의 차이도 아니고 깊이의 차이도 아니다. 단지 네가 겪었느냐, 내가 겪었느냐.. 화자의 차이일 뿐. 한 번쯤 세상을 원망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사랑에 크게 데여본 적이 없는 사람이 없고,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되려 찾아보기 힘들다. 나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을 모두 비슷한 출발선에 서게 만든다. 아픔과 고통, 삶에 대한 회의, 무력감 등 부정적인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둔 마음의 상처는 속깊이 묻어두고 이래나저래나 인생은 굴러가는구나 일단 오늘만 버텨보자, 하면서 인생을 굴러가게끔 하는 오늘의 출발선. 고로 경험의 차이는 아니다. 사실 생각나는 이유들은 많다. 통찰의 차이, 독서량의 차이, 자신의 색을 얼만큼 갈고 닦았는지의 차이.. 오히려 이 쪽의 이유들이 말이 되는 것만 같아서 가끔은 경험의 차이로 핑계를 돌려보고 싶을 정도다.
사고는 언제 정해지는 것일까. 어떤 사건을 겪을 때 우리는 사고를 한다. 생각을 하고, 자신의 의견을 내고, 도출하고 그 경험을 저마다 느낀다. 자신만의 사고로, 언어로. 나에게도 그 언어를 표현하는 색이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색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갖고 싶은 타인의 색들이 이토록 지독하게 잘 보일리는 없지 않은가. 유명하거나 대단한 작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 저 사람 같은 글을 쓰고 싶다' 느끼게 하는 사람. 왜 나는 갖지 못했을까, 속상해지는 시점이다. 날카로운 글이 쓰고 싶다. 남들과 다른 예리한 칼날을 눈에 달고 다른 시선으로 뾰족한 창을 날려 대부분이 모르는 문제의 진짜 핵심을 중심으로 끌어오고 싶다. 하지만 내 눈에 달린 건 스폰지밥이랄까. 보이는대로 흡수하고 말하는대로 믿고 전해지는대로 새긴다. 통찰의 개념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눈치가 제로에 가까운건가.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하지만 그 이유 또한 제일 잘 안다. 세상에, 사람에 관심이 많이 없다. 한 때 함께 일했던 선배가 말했다. '사람에 관심을 가져야해. 사람을 사랑해야해. 사람이 재밌지 않니? 그럼 넌 작가로 성공하지 못할거야' 그래, 결국 다 연결된다는 이야기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긴 글을 쓰지 못하겠다. 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 정리해서 써야할지 모르겠고, 쓰다보면 하고 싶은 말이 모호해지고 딴 길로 새고 도통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쓰는지 잘 모르게 된다. 나 벌써부터 실격 아니야?
어쨌든 15년 정도 이걸로 밥 벌어먹고 살고 있다. 돌고 돌아 결국 같은 곳에서 15년 가까이. 큰 재주가 없다해도 꾸준함이 있었고, 눈치가 없어도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몸도 마음도 약했지만 악한 짓도 하지 않았지.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건가.
결론은 뭐다. 글이 쓰고 싶다. 내 이야기를 쓰고 싶고, 긴 이야기를 쓰고 싶고, 정리된 내 글이 갖고 싶고, 통찰력있는 이야기를 나만의 색깔로 풀어보고 싶다. 이만큼 세월이 지났으니 내 안에도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조금씩 써보려고. 어차피 아무도 모를테니까. 누군가 봐주면 땡큐고. 글쓰기를 연습하고 사람에 관심을 갖는 걸 연습하고, 결국 다 연결된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