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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joge Jul 04. 2017

사랑을 위한 여정

영화 <옥자> 리뷰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 방지를 위해 영화를 보지 않은 분은 읽지 말아 주세요.


<옥자> 사랑을 위한 여정

  영화 <옥자>는 사랑에 대한 영화다. 강원도-서울-뉴욕-다시 강원도를 오가는 옥자와 미자의 여정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는 건 오직 '사랑'임을 보여준다. 생명에 대한 존중은 오히려 덤이다. 옥자와 미자의 사랑, 그 사랑을 위한 여정을 보고 있노라면 두 시간이 30분처럼 지나간다. 그간 봐온 어떤 영화 속 커플의 사랑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재미있고 눈물 나는 러브 스토리다.


진짜 사랑 구별법

  사람은 저마다 달라서 사랑 방식도 모두 다르다.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열 개의 사랑 방식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사랑'을 구별하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면, '진짜 사랑'은 사랑받는 이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고 고양시켜 준다는 데 있다. 영화 첫 부분 강원도 산속에서, 서울에서, 뉴욕에서,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 다시 강원도 산속에서 미자가 '옥자'를 부르고 바라보는 눈빛은 계속 조금씩 달라진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미자는 첫 장면에서 봤던 미자와 정말 확연하게 다르다! 미자는 옥자를 구하기 위한 여정에서 어떤 사랑을 배운 걸까.


미자의 여정 1. 강원도에서 서울로

  영화의 시작은 옥자와 미자의 알콩달콩한 일상을 보여준다. 옥자는 미자의 엄마이자 아빠이고 형제자매이자 제일 친한 친구다. 서로 기꺼이 목숨을 내어 줄 사이다. 그런 옥자를 데려가자 미자는 곧장 서울로 향한다. 막무가내다. 그 와중에 '금돼지'를 챙겨가는 걸 보면 용감한 데다 나름 현실 감각도 뛰어난 미자다. 서울에서 미자는 오로지 옥자를 되찾는 데 집중한다. (십 대 소녀 미자의 액션은 제이슨본 뺨친다!) 동물해방전선 단원들의 호소를 귀 기울여 듣지만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옥자랑 산에 갈래"라고 말한다.


미자의 여정 2. 서울에서 뉴욕으로

  서울에서 실패했지만 뉴욕에서 옥자와 재회할 기회를 얻는 미자. 그 와중에 '금돼지'와 '기본 영어 회화' 책을 챙겨가는 걸 보면 역시 용감한 데다 현실 감각이 뛰어난 미자다. 서울에서의 실패가 자신이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미자 캐릭터 진짜 독보적이다. 뉴욕에서 미자는 또다시 오로지 옥자를 되찾는 데 집중한다. 단 이번에는 서울에서처럼 막무가내가 통하지 않는다. 서울에서는 유리문도 부수고 추격전도 했지만 뉴욕에서는 말도 잘 안 통하고 협박도 더 무섭다. (무심한 듯 농담처럼 "옥자 스테이크 된다"하는 통역사의 협박에 바로 꼬리 내리는 미자) 결국 미란도 이름이 새겨진 괴상한 한복을 입고 무대에 오르지만 이미 견디기 힘든 상처를 입은 옥자와의 재회는 끔찍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폭력에 의해 찢어지는 둘.


미자의 여정 3. 뉴욕에서 도살장으로

  도살장에서 미자는 이전과 비교도 안되게 거대하고 무지막지한 현실, 자본이라는 시스템과 마주하게 된다. 사랑하는 옥자를 구해야 하는데, 둘을 가로막은 장벽이 너무 단단하고 크다. 옥자와 비슷하게 생긴 다른 수많은 위기에 빠진 아이들이 미자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물론 옥자를 잃을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자 미자는 다시금 뛰어난 현실 감각을 발휘해 옥자를 구출해 내는 데 성공한다. 옥자를 데리고 도살장을 나서며 허리춤에 찼던 돈가방을 미련 없이 던져버리지만 발걸음은 가볍지가 않다. 자꾸 뒤를 보게 되고 애써 앞을 향한 눈빛은 멍해진다. 현실 감각이 뛰어난 미자지만, 도살장에서 마주한 무지막지한 현실 앞에서 감각이 마비되었다.

  

미자의 귀환. 미자를 변하게 한 건 옥자의 사랑

  옥자와 아기 돼지를 데리고 돌아온 미자의 눈빛은 마냥 순수했던 시골 소녀의 그것이 아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잔인한 현실을 마주해야 했고, 그 현실과 거래해야 했다. 옥자를 구출했지만, 구하지 못하고 돌아온 수많은 옥자가 그곳에서 무참히 죽었다는 것도 안다.  


  미자를 변하게 한 원동력은 옥자의 조건 없는 사랑이다. 열 마리의 동물이 있다면 사랑 방식은 단 하나일지 모른다. 조건 없는, 계산 없는, 아무 바람도 없는 사랑. 옥자의 사랑을 받고 자란 미자는 옥자를 위해 용기내고 희생하는 여정 속에서 성장하고 고양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도살장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무자비하게 죽임 당하며 울던 아이들 하나하나가 실은 옥자와 하나도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말 한마디 할 수 없지만 눈빛으로 행동으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여정을 마치고 강원도 산속에 돌아온 미자의 눈빛이 한층 성숙해진 건 현실이라는 이름아래 아무렇지 않게 죽임 당하는 사랑이, 생명이 도처에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미자가 깨달은 또 한 가지. 옥자와 대화하는 법. 영화의 처음에 등장하는 미자의 귓속말은 먹보 옥자를 유인하기 위한 당근이었을 것 같다. 영화의 중간에 등장하는 미자의 귓속말은 옥자에게 추억을 되새겨주기 위한 절박한 목소리였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귓속말은 미자가 듣는 쪽이다. 서울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 '돈'이, 뉴욕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 '돈'과 '영어'가 필요함을 귀신같이 알아챘던 미자가 항상 곁에 있던 옥자와 대화하는 법을 가장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진짜 사랑'을 주고받는 대화는 '돈'이나 '언어'같은 '수단'으로 가능한 것 같지 않다. 옥자는 귓속말로 미자에게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옥자의 코를 돼지코가 아니라 하마코로 만든 건 신의 한 수


덧. 인간들의 비뚤어진 사랑.

  옥자를 향한 미자의 사랑의 여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와 감동은 넘치지만, 둘을 둘러싼 인간 군상의 비뚤어진 사랑을 목격하는 일도 흥미롭다.


#미란도 자매의 사랑

  루시 미란도는 아버지와 쌍둥이 언니의 그림자에 벗어나 진짜 '나'를 찾고 사랑하고 싶어 하지만 어두운 그림자 속에 꽁꽁 묶여 뒤틀린다. 두 미란도가 담뱃불을 나누는 장면은 둘은 결국 여전히 '둘 같은 하나'임을 보여준다.


쌍둥이 언니 낸시 미란도는 '반짝이는 것'(돈)을 사랑한다. 자신을 '칼같이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라고 칭하지만 '반짝이는 금돼지'를 보자 방금 전에 한 말을 바꾼다. '반짝이는 것'에 대한 비뚤어진 사랑이 다른 모든 것에 앞선다. (낸시 미란도가 비즈니스 얘기하며 바쁘게 걷다 'Shine' 푯말이 걸린 구두가 보이는 쇼윈도 앞에서 멈추는 장면이 나온다.)


#닥터 조니의 사랑

  닥터 조니는 명성을 사랑한다. 과거엔 누구보다 동물을 사랑했지만, 지금 있는 실험실이 말도 못 하게 끔찍한 곳이란 걸 알지만 '미란도 기업의 얼굴'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은 비뚤어진 욕망은 그를 미치게 했다. (제이크 질렌할의 '미친 닥터 조니' 연기는 진짜 짱이었다.)


#동물해방전선의 사랑

  ALF 단원들은 동물을 사랑하지만 때론 그 사랑이 눈을 가려 '신념'이란 이름으로 '폭력'에, '미션'이란 이름으로 '효율'에 타협한다. (그래도 폴다노가 러브액츄얼리 남주처럼 스케치북을 들고 두 번째 본 미자에게 'WE LOVE YOU' 할 때는 감동적이었다.)


#할아버지의 사랑

  할아버지의 사랑은 때론 우스꽝스럽지만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기에 짠하다. 다른 목적으로 금돼지를 사줬지만 미자에게 현실과 싸울 힘을 준 건 결국 할아버지였다. (변희봉의 생활 연기는 진짜 최고다.)


'사랑'과 '연대'의 여정

  역시나 인간의 사랑은 쉽게 변하고 비뚤어지고 우습고 바라는 게 많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건 '사랑'을 통해 배우고 변하고 나아가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스티븐 연이 폴다노한 테 피 터지게 맞고도 팔에 '통역은 신성하다'라는 타투를 새기고 돌아온 장면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동료들이 블랙초크에게 당할 걸 예상하고 일본인 간호사 친구를 데려오는 치밀함도 보였다. 게다가 갑툭튀 한 이 일본인 간호사 친구는 징징대는 스티븐연에게 짜증 내면서도 헬멧에 달린 조명에 의지해 폴다노 이마를 엄청 열심히 꿰매준다. 그 덕에 누워있던 폴다노가 일어나 앉아 이번엔 미자를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연대의 도미노! 영화의 에필로그에서도 각자가 가진 사랑과 신념에서 나아가 연대하는 인간들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옥자를 위한 미자의 여정을 보고 난 후 내게 남겨진 것은 사랑에 대한 고찰. ‘언어'로 '돈'으로 '인터넷'으로 넘쳐나는 소통을 하지만 정작 '마음'을 주고받지 않는 비뚤어진 인간의 사랑. 말 한마디 하지 못해도 조건 없이 바람 없이 주는 동물의 사랑.(옥자 눈 클로즈업될 때마다 우리 집 냥이가 생각이 났다.ㅠㅠ) 현실이란 이름아래 무참히 죽임 당하는 말 못 하는 약한 것들, 동물과 생명에 대한 고찰 이런 것들이다.


  그리고 함께하면 조금씩 느리게라도 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돈이나 명예 효율 이런 것들만 쫓으며 우습고 비뚤어진 사랑을 하지 말고, '진짜 사랑'을 갈구하고 또 '연대'하다 보면 비록 나약한 우리지만 정신이 고양되고 인격이 성숙하고 옳은 길로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


  영화가 만들어지고 나면 그 이후는 저마다 보는 이들의 몫이지마는, <옥자>를 보고 '메시지는 명확한데 뻔하다 혹은 지루하다'라고 평하는 이보다 '끔찍하고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의 여정을 목격했노라'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기 바란다.


P.S. 첨에 <라라랜드>를 보고 진부한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찰떡같은 디테일과 꿀떡 같은 연출을 눈여겨 다시 보니 전혀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왔었더랬다.





우리 집 냥이 얼굴 구경하고 가세요. 이쁘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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