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서랍장

나이 듦에 대하여

by 안현희 마리스텔라

문득 오래전에 TV에서 보았던 한 편의 드라마가 떠오른다. 주인공 ‘나’를 포함한, 스물다섯, 세 여자들의 이야기였다.

스물다섯이라는 나이는 젊다는 이유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 안에서는 나이 들어감을 두려워하며 알 수 없는 불안과 막연한 공포에 흔들리기 쉬운 시기임을 보여주고 있다. 젊음이 있기에 겁 없이 도전하기도 하지만, 그 젊음 때문에 오히려 보이지 않는 미래 앞에서 더 크게 염려한다.

그 무렵의 나도 그랬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불안해서 방황했고, 심지어 죽음까지 떠올리곤 했다. 스물다섯의 나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곁에는 친구들도 있었으며, 남자친구도 있었다. 겉으로는 부족할 것 없어 보였지만, 늘 우울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둠에 잠식되고는 했다. 오히려 뚜렷한 원인이 없다는 점이 더 괴로웠다.

드라마 속의 한 인물 역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후, 부모의 뜻에 떠밀려 공무원 남자와 애정 없는 결혼생활을 이어가던 그녀는 어느 날 백화점에서 주인공과 마주쳤다. 그날 그녀는 가위를 사 갔다. 그리고 며칠 후, 그 가위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주인공은 깊은 충격에 잠긴다.

그 후, 남자친구와의 여행길에서 주인공은 먼지가 희뿌옇게 이는 국도를 달린다. 길가에서 어린아이를 업고 초라한 나무 상자 위에 사과 몇 개를 놓고 앉아 있는 여인을 보았을 때, 그녀는 문득 생각한다. ‘저 모습이 언젠가 나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그 상상은 곧 불안의 납덩이가 되어 주인공을 무겁게 짓눌렀다. 나 또한 그 장면을 떠올릴 때가 있다. 그것이 마치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나를 짓눌렀었다. 궁핍한 삶 속에서 웃음을 잃고 살아가는 나, 그런 삶을 누가 바라겠는가.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마흔을 훌쩍 넘긴 나는, 그 시절과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살아간다. 어둡고 죽음을 생각하던 스물다섯과 달리, 지금의 나는 오히려 수많은 꿈을 품고 살아간다. 바리스타 공부도 시작했으니 전문가 과정에 도전해보고 싶다. 취미로 시작한 우쿨렐레는 남을 가르칠 만큼 꾸준히 배우고 싶다. 성가대 활동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이어가고, 방통대 공부는 욕심내지 않더라도, 언젠가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과정까지 이어가고 싶다.

그 모든 것 가운데 가장 간절한 바람은 글을 쓰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글은 내 삶의 중심에 서 있다. 내 몸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꿈의 목록을 잠시 미루더라도, 적어도 글만큼은 최선을 다해 끝까지 이어가고 싶다. 삶은 어느새 이렇게 달라졌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이 행복하다. 더 이상 나이 들어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하다. 내일 어떤 일이 펼쳐질지, 어떤 인연을 만날지 기대하며 살아간다. 죽음을 원하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은 부끄럽지만, 살아 있는 지금은 그저 감사하고 기쁘다. 이제 나는 알게 되었다. 삶은 충분히 살 만하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웃음을 잃지 않고, 밝은 에너지를 품으며 살아가려 한다. 내 안의 사랑과 빛을 흘려보내어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 고운 마음과 따뜻한 시선으로 살아감으로써, 살아 있음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삶을 이어가고 싶다.

일요일 연재
이전 09화비밀 서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