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서랍장

따뜻한 작별

by 안현희 마리스텔라

삶이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기에, 길목마다 설레고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두렵기도 하다. 학원에서 보낸 지난 시간도 그랬다. 나에게 기쁨을 주었지만, 동시에 적잖은 스트레스도 안겨주었던 날들이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나의 교육 지향점은 ‘학습’ 이전에 사람으로서의 기본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짧은 순간이라도 아이들의 하루가 즐겁고, 마음 한쪽이 작은 행복으로 채워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숙제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만 내고, 금요일에는 ‘주말을 이용해 책 읽기’를 숙제로 대신했다. 그날만큼은 공부가 끝난 뒤 10분이라도 아이들과 놀았다. 집에 갈 때는 사탕이나 과자를 꼭 챙겨주었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사탕 하나를 물고 웃으며 돌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병아리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 웃음은 나의 마음도 환하게 채워주곤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내게 주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았다. 공부를 좋아할 리 없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물을 싫어하는 말을 억지로 끌고 가는 것처럼 버겁고 지치는 일이었다. 그래도 1년 6개월을 버텼다. 아니, 돌아보면 그보다 훨씬 긴 세월—25년이나—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나 스스로도 놀라울 때가 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멈추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이제는 아이들의 에너지를 감당하기에 나이도 나이지만, 체력도 뒷받침되지 않았다. 학원을 그만두는 날까지 아이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어떤 반응이 나올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퇴직 다음 날 난리가 났다. 전화를 걸어 울고불고하는 여학생들, 예상했지만 막상 들으니 마음이 무거웠다. 무뚝뚝하던 은결이마저 “다시 오라”고 소리쳤고,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눈물로 전화하던 민경이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더욱 컸다.

나는 아이들과의 이별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지하철에서 어떤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너희에게 전해 달래. ‘좋은 말과 행동을 하고, 책을 많이 읽어야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그리고 이 선물도 주셨단다.” 인증샷을 찍자고 하니 큰 아이들은 “선생님이 포장한 것 같은데?” 하고 웃었고, 저학년들은 진심으로 믿는 듯 눈을 반짝였다. 그 해맑은 웃음에 마음이 울컥했지만, 미안함과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눈물을 꾹 눌러 담았다.

“이거 먹어도 돼요?” 하고 묻는 천진한 얼굴들을 바라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하느님, 이 아이들에게 평화와 행복을 채워주세요.

얘들아,
선생님은 너희가 건강하고, 많이 웃고, 환하게 자라길 바란다. 행복하게 지내자. 아주 많이.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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