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서랍장

관계의 거리

by 안현희 마리스텔라

오늘은 성당 언니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원래는 명동성당에서 성경 순례 수업을 마치고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내가 감기몸살에 걸린 데다 어머니의 건강도 좋지 않으셔서 저녁에는 곁에서 챙겨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장소를 우리 집 근처 카페로 옮겨 얼굴을 보기로 했다. 특히 이문동에서 먼 길을 오는 소피아 언니께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함께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분들이라 감사한 마음으로 만남을 가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깊고 멋진 시간이었다. 글라라 자매님은 작은 선물을 준비해 오셔서 우리 각자가 하나씩 고를 수 있게 하셨고, 포춘쿠키까지 챙겨 와 서로의 운세를 나눠보았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문구가 나와 웃음도, 의미도 함께하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내가 쓴 시를 글라라 자매님이 낭독해 주셨을 때였다. 낮고 차분한 음성에 시가 새롭게 살아나는 듯했다. 분석적이고 호불호가 분명한 분인데 여러 번 좋다고 말씀해 주셔서 부끄럽고도 행복했다. 우리는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도 시를 함께 읽고, 쓰고, 낭독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모임을 마칠 무렵 카페 앞 정류장으로 버스가 도착하자 글라라 자매님은 인사를 나누고 떠나셨고, 소피아 언니와 나는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우리 셋은 모두 방송대 학생이라 공감대가 깊고, 종교로 인연이 시작되었지만 각자의 삶에서도 열정을 다하는 사람들이라 만날 때마다 에너지가 채워진다. 개성이 강해 의견이 부딪힐 때도 있지만, 서로를 존중하며 현명하게 풀어가 불편함 없이 마무리된다.


책 이야기, 신앙 이야기, 음악과 공부, 자격증 이야기까지 공통점이 많아 함께하는 시간이 언제나 유익하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마음을 채울 수 있어 늘 의미 있는 만남으로 남는다. 자주는 만나지 못해도 이런 시간이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다.


인간관계에서는 감사함과 미안함이 교차하기도 하고, 때로는 관계의 거리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시기도 있다. 그래서 스스로 적정한 거리를 조율하며 좋은 점은 잘 담고, 불편함은 현명하게 털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배워간다. 상대에게 과한 기대를 두지 않고, 친밀함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세 사람이 함께할 때는 언제나 즐겁다. 자주 만나지 않기에 더 반갑고, 오늘도 건강과 행복을 빌며 다음을 기약했다. 이런 마음으로 오래도록 이어지는 따뜻한 인연이 되기를 바란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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