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서랍장

미처 전하지 못한 말

살아가면서 용서받고 싶다기보다, 진심을 다해 얼굴을 보며 사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나는 스물 후반에 영어 학원을 운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원장으로서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이나 조직을 이끌 리더로서의 자질은 부족한 채, 단지 5~6년간 강사로 지내며 쌓아온 노하우(학부모와 학생 관리 정도)에만 의지한 채 덤벼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학원 오픈 전에는 수업 도구나 운영 방식을 철저히 준비했고, 열정도 가득했기에 아이들은 점점 늘어났다. 그 결과 오픈 1년 만에 성남에서 유일하게 GnB 단독 운영으로 100명이 넘는 원생을 모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내 완벽주의 성향과 ‘선생님 관리’에서 비롯되었다. 운영 경험이 없었던 나는 사람을 대하는 법도, 강사들의 고충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중 K 선생님은 키가 크고 성격이 온화한 분이었다. 나이가 있었음에도 다른 선생님들과 잘 어울렸고,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셨다. 다만 내가 요구하던 빠른 일 처리나 판단에서는 다소 부족해 보였다. 그러다 보니 내 잔소리와 꾸중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간극이 점점 깊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모든 것은 내 오만 때문이었다. 운영자로서 선생님을 온전히 믿고 맡기기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을 거쳐야 한다’는 집착 속에서 선생님을 신뢰하지 못한 것이다. 잘한 일은 칭찬하고, 부족한 부분은 차분히 요청했어야 했는데, 나는 오로지 채찍질만 하는 원장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원생은 계속 늘었지만, 나는 일의 중첩과 스트레스로 쉽게 지쳐갔다. 체력은 한계에 다다르고, 욕심만 앞서 모든 것이 과부하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정확히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K 선생님이 또 실수를 하셨고 나는 끝내 화를 참지 못하고 노트북을 던지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일이다. 당시 K 선생님의 마음이 어땠을지, 만약 내가 그런 상황을 겪었다면 얼마나 깊은 상처를 받았을지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아이들과 부대끼며 수업을 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을 텐데, 원장은 매번 화만 내고 있었으니 그 직장을 누가 붙잡고 싶었겠는가. 게다가 원래 허리가 좋지 않았던 K 선생님은 병원이라며 전화를 주셨고, 그 후로 다시 볼 수 없었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내 부족함 때문이었다. 이후에도 아이들은 늘어났지만, 나는 선생님들 관리의 어려움과 번아웃, 체력상의 한계로 결국 학원 운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입시학원에서 부원장 겸 상담실장으로 일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늘 K 선생님이 남아 있었다.

미숙했던 20대의 운영자는 그 뒤 여러 경험을 쌓고, 배우고,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나이를 채워감과 함께 인격도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 사실 나 또한 본래는 K 선생님처럼 유한 사람이었으나, 그것을 조절하지 못하고 욕심만 앞세우며 주변을 돌아볼 줄 몰랐던 것이다. 이제는 남의 부족도 이해할 수 있고, 상처를 보듬을 수 있으며, 누군가가 잘한 일 앞에서는 마치 내 일처럼 기뻐하며 아낌없이 박수와 응원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만약 지금 K 선생님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다. 운영자로서의 미숙함과 오만함으로 너무 큰 상처를 드린 점, 정말 죄송했다고. 지금은 마음이 단련되었고 사람을 아끼고 챙기는 마음도 커졌다고. 언젠가 다시 뵐 수 있다면 그때는 정성껏 언니처럼 따뜻하게 대하며, 진심을 다해 따스함을 나누고 싶다고 전하고 싶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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