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일방통행일까
오랜만에 상담을 받으며 겪는 이 과정을 글로 풀어낼 수 있을까.
지진을 겪고 있는 중이다.
논문을 마치고.. '과제를 해치우던 삶'에서 '삶 속에서 과제를 묵묵히 해 나가는 삶'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왜 해치우듯이 했을까? 언제부터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중학교 때,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라는 걸 보기 시작했을 때부터다. 시험이 끝나기만을 바라며, 시험공부를 몰아서 해치우듯 했었던 게 가장 '초기 기억'이었다.
그때 그렇게 해왔던 게,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하는 건 좀 억지스럽지 않은가 싶었지만, 그 정도로 시험 보는 것이 부담이었고, 괴로운 일이었던 거다.
근데 그건, 다들 그러지 않은가? 다들 그러면... 괜찮은 일인가?
결과만 보고 '달리던' 삶에서, '절차를 맛보는 삶'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거구나. 그걸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 거지? 일상에서 어떻게 지내야 하는 거지? 에 대한 지금의 답은 '몸의 감각에 주의를 두는 것'이었다.
머리로 빠르게 계산된 것을 별다른 의식 없이 행동으로 차자작 - 해내고 결과물을 '해치우듯' 해내는 것이 몸에 배었으니, 몸의 감각을 느껴보면서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아차리면서 지내는 것이 매우 필요한 시점이구나 했다.
그런데, 그 과제를, 누가 하는 거냐고?
과제를 누가 하는지는 알아야죠.
정체성은 늘, 내게 화두다. 아직 명료하게 탁 정리되지 않는 부분이다.
박사논문 이후의 삶을 계속 고민하고 있었고, 삶의 새로운 챕터를 구상하면서 여러 가지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설레고 신나는 동시에, 부담감과 책임감, 그리고 이것 또한 해치우려는 추동을 느끼며 우선순위 배열과 시간 확보의 문제라고만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상담에선 '나한테 이런 면도 있구나' 싶었던 면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욱욱 치고 올라오는 분노를 행동화하기도 하고, '하, 이렇게 치미는 마음도 있구나'라고 웃으며 알아차리고 행동화하지는 않는 면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 끝에, 내가 얼마나 '현실 감각이 없는 사람인지'로 귀결되었다.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삶이 어느 정도 안정된 궤도로 올라왔다고 생각했고, 그 어느 때보다 '괜찮게' 살고 있어서 그냥 주욱 공부를 해나가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면 되겠구나 했는데, 응? 현실 감각이 없다고? 내가?
다른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집을 사고, 차를 사고, 아이를 낳고... 이런 과업들을 수행해갈 때 나 역시 그런 삶을 꿈꾼 적이 있었으나 구체적으로 상상이 되지 않거나, 내면의 정신적인 것들에 더 관심이 갔었다. 뭔가 잡히지 않는 괴로움들을 명료화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고, 그러한 과정에서 괴로움의 근본을 꿰뚫는 불교를 만났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으로부터의 탈피, 정체성의 해체를 과제로 삼고 적용했었다. 느낌, 감정, 생각, 욕구, 욕망, 의도 등이 떠오를 때 사로잡혔었던 게 문제였으니 그걸 알아차리고, 그것의 동일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 속에서 실제로 내가 하게 됐던 건 '탈동일시를 빙자한 회피와 소외, 억제 혹은 억압'이었다.
눈물이 나면 그냥 울면 될 것을, 상담실 안에서도 남은 시간이 5분뿐임을 알고 지금 울지 않고 집에 가서 울 계획을 짜고 있는 [!] 내게 상담자는 말했다.
'울고 싶으면 5분간은 울 수 있을 텐데, 진짜 일방적이죠. 조급한 사람들은 일방통행을 하려고 그래요.'
꺼이꺼이 울다가, 집에 와서 마저 울었다.
도대체 '누구의' "일방통행"일까.
나의 있는 그대로의 경험을 외면하고 소외시키는 그 녀석은 도대체 누구일까.
5년 전, 상담 기록을 찾아보았다.
"그때부터 자신을 속이기 시작했군요."
느낌과 감정은 비효율적이고, 혼란을 키운다고 여겼기에 내면을 가장 무시하고 살았던 건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때, 나는 내면에 어떤 성향을 혹은 인격을 발달시켜서 그 시간들을 견뎌왔을까?
다시 그 교실에 앉아있던 나를 떠올려보았다. 가슴이 답답해졌고, 죄여오는 느낌을 계속 따라가 보았다. '수능'이라는 목표를 향해 죽어라 공부는 하지만 더 나아지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함,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함 속에 일단 할 수 있는 건 그날 하기로 한 것들을 해내는 것뿐이었던 시절...
다른 친구들에 비해 능력도 실력도 점수도 부족한데 가정 형편상 과외 등을 꿈꿔볼 수도 없었던 그때, 좋은 학교에 왔다는 자부심의 몇 배만큼 열등감에 시달리며 늘 소화불량과 두통에 시달렸던 때는 내 스토리를 구성하는 '에피소드' 일종의 '영웅담' 같은 걸로 남게 된 줄로만 알았다.
나만큼이나 답답하고 제자리에서 맴도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한껏 자신을 꾸미고, 여고생의 시절을 그답게 보내는 친구들은 너무나 부러웠고, 그런 걸 누리는 건 사치라 여기며 나를 더 몰아붙이며 모든 걸 '수능 뒤'로 미뤘었다.
수능 잘 못 보고, 원하는 대학에 못 가면, 아니 '별로'인 대학에 가면 '죽는 줄로만' 알았던 시절 - 진짜 인생 끝나는 것처럼 여겼던 그 시절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던 거였다.
공부하는 게 힘들 때마다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떠올리며 결핍과 열등감을 동기 삼아 다시 일어났고, 그렇게 살았던 고작 몇 년의 삶이 이후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모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 내면아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치유'하는 접근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라고 여겼다.
5년 전 이런 얘길 했을 때, 상담자는 내게 '그런 세상을 살게 해서 미안하다'라고, 어른의 대표로서 이야기하셔서 꺼이꺼이 울었고, 그래서 내가 만나는 학생들이 이런 경험들을 할 때 숨통을 트여주는 어른이 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를 거슬러, 중학교 때까지 다시 거슬러 올라가 보기 시작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았기에 '또 그걸 끄집어내야 하는가'라는 마음을 저항으로 인식하고, 마음의 결을 따라 다시 올라가며 내 몸의 감각과, 느낌과, 감정들을 무시하기 시작한 때가 언제였을까를 찾아보았다.
안정된 실력과 능력을 바탕으로 얻어낸 '1등'이 아닌, '어쩌다 얻어걸린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를 몰아붙였던 중학교 시절도 상황은 똑같았다. 작은 동네 학교에선 1등이었지만, 아버지는 시내 학교 아이들에 비해 평균점수가 한참 부족하다며 늘 더 노력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에게 한 번도 인정받은 적이 없다'고 서러워 울길 한두 번 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를 원망하던 것을 넘어, 나중에는 자만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한 문제를 틀렸다고 나를 비난하고 자학하며, 신경질적으로 시험지를 구겨버렸던 일은 귀여운 장면처럼 남아있기까지 하다. 평소엔 신나게 놀더라도, 시험 기간만 되면 눈에 안약을 넣어야 할 만큼 나를 몰아세우며 공부했던 것이 신경증이었음을 나중에 알았다는 것으로 나는, 과거를, 웬만큼 다 다루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그러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달시켰던 나의 어떤 부분, 어떤 정체성, 어떤 인격을 제대로 만나본 적은 없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꽤나 자율적으로, 주도적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가, 에릭슨의 발달과업 공부를 다시 했을 때 그렇게 움직인 나[自]가 누구였는가를 다시 물으며, 스스로에게 충격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자율성에 근거한 삶을 살았더라면, 나를 움직이는 버튼이 내 안에 있고 그 세세한 감각들을 알아차리며 나를 살리는 길로 갔을 거라는 데 동의가 되었었다.
번아웃될 만큼 나를 착취하게 하는 그 무언가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 그리고 고성취를 경험했거나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그냥 '있을 수 있는 일' 정도로 여겼다. 임용을 다시 보고 쉬어주고 몸을 살리면서 번아웃이 극복되었고, 박사논문을 집중해서 끝내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다시 달래주면 될 일이라 여겼다.
그러니까 내 역사 속에서 전면에서 활동하던 기능, 그걸 내면아이라 부르든 인격이라 부르든 자아라 부르든 뭐라 하든... 그 녀석이, 늘 '더, 더, 더'를 외치는 걸 알아차릴 때마다 '그것이 진정한 내가 아님을' 관찰자적 입장에서 주시하고, 그 추동을 지켜보다가, 뭔가 '끝'을 보지 못하고 이도저도 아니게 지나온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나다,라고 완전히 동일시된 상태에서 끊임없이 나를 몰아붙이거나, 탈동일시를 유도하며 그것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려고 할 때... 결국 나는 또 다른 방식으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탈동일시하는 나'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그것에 또다시 매달리고 있었던 것, 감정이 올라오면 '이건 내가 아니야'라고 하며 밀어내고. 욕구가 생기면 '이런 건 집착이야'라고 하며 억누르고... 결국 나는 감정도, 욕구도, 진짜 내 목소리도 듣지 않는 또 다른 형태의 '일방통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느끼지 말고 해내야 해"라는 생존 전략이 "동일시하지 말고 관찰해야 해"로 포장만 바뀐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