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굴에 들어오셨네요."
상담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상하긴 하다.
돈을 내면서 상담을 받는데,
결국 내가 하는 일은 '품을 키우는 것'이라니.
꺼이꺼이 울었던 날도 있었고
욱욱 치고 올라오는 화를 삼켰던 날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아,
이게 인욕수행이구나.
불교상담을 전공하는 동안, 어째 결론은 맨날
"결국 상담자는 보살이 되어야 한다." 아니,
"내담자도 보살 만드는 게 상담이다"로 흘러가는 것 같아
이 말이 너무 무겁고 막연하고 어렵게만 느껴졌었다.
근데 보살 같은 [!] 상담자를 만나 상담을 받다 보니
내가 그 길을 지금 가고 있는 거였구나 싶었다.
보살의 수행, 육바라밀 중 인욕(忍辱)은
국어사전엔 이렇게 나온다.
1. 욕된 것을 참음.
2. 마음을 가라앉혀 온갖 욕됨과 번뇌를 참고 원한을 일으키지 않음.
https://ko.dict.naver.com/#/entry/koko/e8b4137442c845a3aecfe6fdc172024a
참아내는 것. 견디는 것. 이걸 어떻게 현대적으로 풀어갈 것이냐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기다려주는 것.
묵묵히, 옆에 있어 주는 것.
그게 어마어마한 사랑인 거라고 했던 교수님 말에 끄덕여졌던 게 기억난다.
그런데 그걸 넘어,
'품을 키우는 게 인욕이구나' 싶었다.
"선생님은 품이 있어요?"
"없는 것 같진 않은데... 부족한 것 같아요."
품을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냐고?
"커지는 것 같아요.
다른 아이들을 키우면서 제가 많이 커진 것 같아요."
라고 답했다.
상담선생님은
'자기 품을 자기가 키워내는 게 책임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누군가를 품기 위해, 나를 키워내는 것을 해 내는 게
내가 나 자신에게 해 줘야 하는 일이고
그게 책임이라는 그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성숙하면, 중년이 되면 '나'로만 살지 않아요."
상담자의 말이 이어졌다.
"남을 품을 수 있는 그 품을 갖췄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우리 안의 나'가 돼.
'우리'를 만들고,
'우리' 속에 '나'도 있고 남들도 들어오게 하고..."
텍스트로 읽다 보면, 너무 쉬운 말,
도덕책에나 나올법한 당연한 말인데도 가슴에 와닿는 이유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살고 계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인 것 같다.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과 삶이 일치하는 삶을 살고 계신 분의 말씀이라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걸 헤아려주면서 가지,
자기 뜻대로 남을, 뭔가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 분이라서.
듣다 보면
'나도 그런 길을 한번 가보고 싶어'도 있지만,
'하기 싫어. 내가 왜 그걸 해야 돼?'도 올라온다.
'무아(無我)'가 뭔지 이론으로는 그렇게 떠들어 댔지만,
'우리 안에 있는 나'로 살만큼 내가 비워지지 않았구나.
유연하지 못하고, 딱딱하고, 엄청 커져있었구나를 계속 발견하고 있다.
모순된 마음들.
그게 다 내 마음이다.
상담자는 가끔 농담처럼 말한다.
정말 이상한 굴에 들어왔다.
그냥 성숙해지지 않는다.
품도 그냥 커지지 않는다.
돈 주고
시간 들이고
꺼이꺼이 울면서
들이받기도 하고
때론 욱하는 마음 삼키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가고 있다.
이상한 굴이지만
계속 들어간다.
오지 말라고 해도
간다.
매일매일, 도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