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를 만나면 눈물이 나지

by 곰고미
진짜를 만나면 눈물이 나지.
우리가 어떤 언어로도 지칭할 수 없는 그런 것들도 있어요.



상담자의 이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그날 온 몸으로 알게 되었다. 평생 찾아 헤맸던 것이 무엇인지를.


*

학부모 연락을 받고 나서야 뒤늦게 알아차릴 때가 있다. 항의하려고 연락한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이렇게 방어적으로 응대했을까?

교사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비난받는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교사라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당했던 수많은 사건들. 그 경험들이 내 안에 이미 있던 방어적 태도를 더욱 강화시켰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씁쓸했다.

무엇보다 속상했다.


학부모에게 연락할 때도, 사진을 찍어 보낼 때도,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하며 움직이는 내 모습. 왜 이렇게 속상할까? 이 감정이 뭘 알려주려는 걸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상담자와 오래 대화하다 보니 답이 보였다. 나는 '품는 교사'가 되고 싶은데 '방어자'로 살고 있으니까 속상했던 거였다.

아이들을 보호하고 안내하는 어른이 되고 싶어서 그토록 열심히 공부했는데, 정작 내가 하는 일은 가상의 공격까지 방어하려 무장하고 어깨에 힘 주며 사는 것. 그 모습이 너무 속상했다.

품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음을 확인하며 기쁨을 맛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느낌이 찜찜함과 답답함의 이유였다.


살아오면서 얼마나 '어른'을 찾아 헤맸던가. 학교에서도, 학교 밖에서도, 대학원에서도. 그 스승을, 어른을, 안내자를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멀리서 보면 멋있는 어른 같아 다가갔다가, 가까이서 마주한 실체에 당혹스러워하고 실망하기를 반복했다. 결국 '붓다'라는 실제로 확인할 수 없는 인물을 붙잡게 된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상담 이후 며칠간 먹먹한 가슴을 그냥 품고 있었다. 시험 감독을 하며 열심히 문제 푸는 학생들을 바라보다 자꾸 눈물이 나려 해서 꾹 참았다. 다시 상담실에 들어가서야 펑펑 울 수 있었다.


평생 얼마나 안내받고 싶었는지, 그 마음에 닿은 눈물이었다.

이제는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을 만나 내 속도대로 품을 키워갈 수 있다는 안도의 눈물이기도 했다.

더 이상 인상 쓰고 싸울 태세로 살 필요 없이, 마음 열고 있는 그대로 만나며 살아가면 된다는 깨달음의 눈물이기도 했다.


'안내자가 되려면 안내받은 경험이 필수'라는 말이 오롯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그 '진짜'가 전부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언어로 표현하면 이런 것들이었다.


계속 울다가 우리 반 한 아이가 떠올랐다. 울고 있는 내 모습과 그 아이가 겹쳐 보였다.


그 아이가 실수로 친구를 다치게 한 후 "내가 친구를 아프게 해서 나도 아프게 해야 돼"라며 자신을 처벌하려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따뜻하게 대해주는데도 오히려 스스로를 처벌하려는 그 모습, 실수에 대한 두려움과 자기 처벌.


어떻게 나를 키워갈지 모르니 어른이 필요했구나. 그 아이도 그랬구나. 겁에 질린 그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등을 쓸어주며 함께 걸었다. 내 안의 아이를 치유하는 시간이었다.


통찰 이후에도 몸으로 익히는 수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안다. 그래서 그냥 묵묵히 걸어가기로 했다.


이제는 안다. 내가 왜 그토록 어른을 찾아 헤맸는지. 그리고 이제 내가 누군가의 어른이 되어야 하고,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방어자가 아닌 보호자로, 품는 교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