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좀 가볍게 시작해야지

나를 오롯이 존중하기 위해서

by 곰고미


"아니야, 좀 가볍게 시작해야지.
브런치도 그렇고 글이나 블로그로나
자기를 표현을 하는 방식이 되게 많아졌잖아.
뭐 그렇게 처음부터 무슨 철학자의 대작처럼 그렇게 낼 필요는 없잖아"


자기표현.

맞다.

우리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 그걸 충족시키지 못해서 답답한 걸 친구는 콕 집어줬다.


박사논문을 쓰겠다고 1년간 완전히 몰입하고 나서, 논문을 마무리하고 나니

지향성이 사라진 마음이 마구 방황하던 때였다.


논문을 완성했다는 뿌듯함과 시원함, 기쁘고 들뜬 느낌 이후에 찾아온 이 기분은 뭔지 탁, 잡히지 않아

감정단어 목록을 훑어보기도 하고 멍 때리며 가만히 내면을 살피는 시간도 가졌었다.


석사 공부하기 시작한 이후론 10년,

닥치는 대로 마음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건 벌써 15년이 훌쩍 넘었다.

긴 여정을 마무리한다는 성취감과 안도감도 있었지만,

뭘 위해 이렇게 공부를 해온 건가,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는가(ㅎㅎ)싶어

허탈하기도 하고, 후회와 회의감 같은 것들도 있었다.



새로운 시작점에서


2025년 올 한 해는 그래서 (그동안 해 온 걸 가지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한 그림을 그려나가야 하는 해가 되겠구나 싶었다.


박사 논문을 쓰는 동안에는 생각했던 것들을 신나게 뱉어내며 정리할 수 있어서 기쁘고 통쾌했지만

이제부터는 논문으로 정리하지 못한 것들, 배웠던 수많은 것들을 통합하고

어떤 형태로 아웃풋을 내며 세상밖으로 나갈 것인가,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던 상태였는데

친구가 그걸 콕 집어 주는 거였다.


'내가 말하는 것과 내 삶이 일치되어야 말을 할 수 있는 거지'라는 나의 기준은

나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자, 안전한 도피처였다.


완전함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

사실은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게 부끄러웠다는 걸. 그래서 회피하고 있었다는 걸 마주하면서

그냥 묵묵히 적어나가 보는 것. 그것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박사논문도 계속 못 쓰고 있었을 때, 박사 동기 오빠가

"너 왜 논문 안 쓰고 있냐"는 전화 한 통화에, 그날부터 논문 주제를 구상하고, 논문 작업을 시작했던 것처럼.

친구와의 전화 한 통으로, 그동안 미루고 미뤄왔던 작업을 시작해야겠구나,

그럴 때가 되었구나. 싶었다.


(누군가 내게 해 주는 이런 말들이, 정말 딱 맞는 타이밍에 들려오는 말들이

나를 살려주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신의 손길이구나 싶은 순간이 있다.

궁극적 정체성*으로서의 내가, 나에게 해주는 말들 말이다.)


그래. 써 보자. 쓰자.


*궁극적 정체성: 불교상담학 박사논문에서 다룬 개념으로, 모든 존재가 근원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너'와 '나'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것. 즉, 타인이 해주는 말도 결국은 나 자신의 내면에서 오는 메시지라는 것.




... 그럼 뭘 쓸건데? 뭘 쓰고 싶은건데?


"맞아, 인간은 안 변해"

...


어제 사람들과 얘기하던 중 나온 말이다.


내 안에서도 그럴 때가 있다. 그냥, 적당히 타협하고 싶은 순간,

내 앞의 사람을 위해 더 이상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고 결정하는 순간,

시간과 에너지를 써 봤자 변하지 않을 거야,라고 다 놓고 싶은 순간.


그래, 인간은 변하지 않지.

라고 마침표를 찍고 나서도, 찜찜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 말이 그렇게도 찜찜했던 이유는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싶어

돈과 시간을 써서 닥치는 대로 공부했던 지난 15년 넘는 시간을 부정하는 것이자, 모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나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오롯이 존중하기 위해서.

그러한 무력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인간에 대한, 인간의 변화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싶어서.



그래도 믿어야 하지 않을까요?
음악이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왜냐하면 우린 음악을 하기로 선택했으니까요.

ㅡ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中



지금 내 상황에서 겪고 있는 것들을, 배운 것을 통합적으로 적용해 보는 글을 써 보기로 했다.

'일상에서 꽃피는 깨달음'**을 실천해 보기로 했다.


교사로서, 불교상담학 박사로서, 전문상담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만나는 현실과 내면을 꾸준히 기록하다 보면

또 어디엔가 닿아있을 테니까 말이다.



** 깨달음이 특별한 순간이나 장소가 아닌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개념.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깨달음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것.



내 안에서 올라오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여정이 될 것 같다.

(사실은 답이 나를 통해 드러나기 위해 질문이 올라오는 것이겠지만.)


- 불교상담에서 연구한 것들은 교실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 적용하면서 나의 내면은 어떻게 달라지고, 그것은 외부에 또 어떻게 반영이 될까?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질문을 또 발견하게 될까?


졸업, 그리고 새로운 시작.


#불교상담 #시작이반이야 #교실에서의불교상담 #존중 #믿어야하지않을까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