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을 자리를 내가 구하고 있었네

by 곰고미

글 안 쓰고 쉴 명분?! 이 생겼다고 좋아하고 있었는데(ㅋ)

도저히 지금 정리하지 않고는, 마음이 편히 쉬지 못할 것 같아서. 뱉어내고 싶었다.


뭔가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왠지 억울해하는 내게. 상담자는 물었다.


"그러니까, 뭔가 제일 좋은 자리, 좋은 몫을, 좋은 보상을 확보해야 되는 사람인데 나는 그게 안 돼서 속상해요?"


그래서, 나도 내게 묻고 또 물었다.

어떤 보상이 주어지면, 억울함이 덜어질 것 같은지.

이 억울함은 어디에서 오는 건지...


진짜 열심히 살았는데, 지금 내 자리, 위치, 내게 주어지는 내적 외적 보상에 대해 요목조목 돌아보았다.


뭔가 '잘 나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감각.

내가 내게 하고 있는 가치 평가가 — '뭔가 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서

'아, 내가 아직도 경쟁을 하고 있는 거구나[!]'를 알았다.

실체도 없는 누군가와.


그런데 상담자는 저렇게 물은 거였다.

제일 좋은 자리? 그게 뭔데? 내가 그걸 원한다고? 그런가?

좋은 몫? 그게 뭔데? 내가 그걸 원했던가?


좋은 보상? 어떤 보상을 받으면 비로소 '그동안 내가 겁나게 고생했던 게, 그 값을 했네'라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될까?

내가 나를, 뭔가 제일 좋은 자리, 좋은 몫을, 좋은 보상을 확보해야 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었던가? 그렇다면, 언제부터 그랬을까?


이 질문을 품다가, 내가 박사논문 챕터 2에 썼던 말들이 떠올랐다.


유마거사의 방에 찾아온 사리불은 방에 의자가 없자 불안해하며 '어디에 앉아야 하지?'라고 생각한다.

그러자 유마가 사리불에게 묻는다.

"당신은 진리(法)를 구하러 왔습니까, 아니면 앉을 자리를 구하기 위해 오셨습니까?"


그 '자리'는 자아가 불안정하다고 느낄 때 매달리는 기반이자, 참조점으로 — '내가 괜찮다'라고 느끼기 위해 고정시키는 무언가라고 생각했었다.


자아는 본질적으로, 실체(고정점)가 없는 것이기에

나를 지탱해 줄 자리, 기반을 찾고

그 자리를 찾았다고 느끼는 순간. 잠시 안정되지만, 다시 불안이 찾아오고 (고정되지 않았기에, 계속 흔들리는 것 자체가 기본 속성이니까)

그러면 또 뭔가 기댈 곳을. 앉을 자리를 찾는 것이구나, 라고 '이론적으로는' 정리가 됐었다.


그런데 상담자가 내게 유마거사처럼 묻는 거였다.

"그러니까, 뭔가 제일 좋은 자리, 좋은 몫을, 좋은 보상을 확보해야 되는 사람인데 나는 그게 안 돼서 속상해요?"


뭔가 제일 좋은 자리,

좋은 몫, 좋은 보상을 확보해야 되는 사람이라고 정한 '나'는 누구인가?


1등을 추구했던 학창시절,

1등까진 못하더라도 늘 상위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청소년 시절의 감각이 몸에 그렇게도 깊이 박혀 있다는 말인가?


'내'가 속했던 곳에서 1등이라는 자리에 앉았더라도 불안했다. 꼴랑 거기에서 1등이라고, 전체에서 1등은 아니었으니까.

늘 더 큰 조직과 범주가 존재했고,

그 조직 속에서 나의 위치는 1등일 수 없었음을 알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앉을 자리를 찾아 헤매고 다녔던 걸까?


유마의 방, 삶이라는 거대한 배움터에 들어와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흘러가는 대로, 인연 닿는 대로 배우고 겪는 게 아니라

내 자리는 어디지?

내 성적표는 몇 등이지?

내가 저들보다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나?? 를 끊임없이 두리번거리며 불안해하고 있었던 건가?! 싶어

안타까운 동시에 승질이 났고!

이론상이라도, "(니가 아는)그것을 '나'라고 여긴다면, 그럴 수밖에 없지롱"이라고 결론 지었던 과거가 있기에

하... 다시 여기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구나 싶었다.


논문을 머리로 쓰고 나서

가슴으로, 몸으로 다시 쓰고 있는 것 같다.


내게 '자리'는 단지 의자 하나가 아니다.

좋은 자리(사회적 위치), 좋은 몫(평가와 인정), 좋은 보상(성과의 대가)...


하나는 남들보다 앞서는 감각이다.

밀리지 않음, 뒤처지지 않음, 비교에서의 우위.


다른 하나는 내 기준에 정렬되는 감각이다.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잘 가고 있어"라는 자기 승인.


문제는 이 두 감각이 함께 켜질 때다.


내 기준으로 잘 가고 있는 것 같은데도, 몸은 100km/h로 달린다.

숨은 얕고, 가슴은 조이고, 시선은 어느새 남을 향한다.

방향이 아니라 속도가 삶을 지배하는 순간이 온다.


그 경쟁 모드가 너무 익숙해서,

그 속도로는 몸과 마음이 일치하는integrity, 이중성 없는 삶으로 향할 수 없음을 알아차릴 때...

이거는 이겨서 끝날 게임이 아니라는 걸 안다.


게임을 바꾸고 싶다.

나답게, 재미있게, 내 속도로, 내 방향으로.

그런데 몸이 따라오지 않는다.


지향점은 '함께, 천천히, 멀리'인데

몸은 여전히 질주하고 있다.


이 모순이 너무 선명하게 보여서, 속상하고, 화가 나고, 힘들다.



사리불은, '자기 혼자 앉을 자리'를 구하지 않았다.

‘이 여러 보살과 대 제자들은 어디에 앉아야 하나?’가 그의 질문이었다.


혼자 앉을 앞자리가 아니라

함께 앉을 수 있는 자리.

그 자리를 만들기 위해, 내 속도대로 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어? 제가 뭔가 제일 좋은 자리, 좋은 몫을, 좋은 보상을 확보해야 되는 사람이라고 정해놔서 속상했던 거였군요?!


나는 법을 위해 온 것이지, 앉을 자리를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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