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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바라보는 백 개의 시선_2

알아차림의 여정

by 곰고미

한 아이를 바라보는 백 개의 시선

백 명의 시선 사이에서


수십 명을 만나는 환경에서,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그러한 녀석들을 문제 있는 녀석으로 바라보는 순간이 있다.


단순히 수십 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있는 선생이 아니라,

그 학생들 뒤에 있는 부모까지 더했을 때,


때로는 "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화가났어요"라고 하는,

그 조부모까지 고려해야 하는 현실에 맞딱뜨렸을 때,


그러니까 내가 한 백명쯤 상대를 하고 있는거구나, 싶을 때.


그렇게 선생으로서 한 백명쯤 상대하고 있는데다가,

교사에게 주어진 업무는 또 업무대로 해내야 하는

슈퍼울트라캡숑멀티플레이어로서..

녀석이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는 일이 너무 버거울 때가 많다.


(와, 이런. 울컥 눈물이 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행복해질 때가 많았는데.

그냥 녀석이 하고 싶은 대로 두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제지하고, 시간표에 따르도록 강제했던 상황들이 싫었고, 미안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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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녀석은 어떤 사람인가?


정말 창의적이고, 배꼽 빠지게 웃기기도 하고,

놀라운 발언을 통해 사람 뒷통수를 치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 너무 힘들고 미치겠다 싶기도 하고,

이 시스템 속에서 적응하기 위해 참 힘들겠다 싶기도 하고

또 어쩌겠나, 받아들이고 적응해나가면서 크겠지 싶기도 하다.


신기하고, 복잡하고, 웃기고, 어려운 친구라고 바라보고 있는 '나의 시선'은

어떤 전제를 깔고 있는가, 묻고 또 묻는다.


녀석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에 깔린 전제야, 그냥 넘어가도 괜찮겠지만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뒤엔


'누군가를 방해하는 것은 나쁜거야'

'전체를 위해 개인이 존중받지 못할 때도 있는거지'

'다른 학생이나 학부모님들께 항의를 받으면 어떡하나'


여러 가지 판단과 평가, 그리고

'두려움'이 깔려있다.


어떤 두려움?


'녀석이 계속 이렇게 하면서 욕을 먹고, 부정적인 꼬리표를 받은 채 학교 생활을 하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것도 있지만,

더 근원적으로는


'내'가 제대로 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항의를 받으면 어떡하지?'

'해야 할 걸 하지 않고 있는 선생이라는 비난을 받으면 어떡하지?'

'... 그러한 컴플레인으로 인해 시간과 에너지를 더 많이 들여서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또, 또, 또 생기면 어떡하지?'


'나'라는 것을 실체로 여기고 있기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두려움,

'좋은 교사'라는 이미지에 반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버거움이다.


(할 일이 너무 많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떤 녀석이 말했다.

"선생님은, '최고의 선생님'이에요"


예전엔 그런 말을 들으면 뿌듯하기도, 고맙기도, 으쓱하기도 했었으나

지금은 '나를 최고로 바라봐주는 그 시선'에 더 마음이 간다.


'나'라는 사람은, 누군가에겐 '최고의 선생님'이지만

누군가에겐 '최악의 선생님'이기도 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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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발견한 채로 끝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근원적인 입장에선,

그 실체 없음을 '진짜로 아는' 여정을 밟아가는 거고.


현실적인 입장에선,

그래서 내 상황과 내 깜냥으로

지금 여기에서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1인분이 무엇인가?

묻고, 실천하는 수밖에 없는 거다.



1. 알아차림


지금, 이 순간 들여다보기


지금 나는, 무엇이 불편한가?

이 사람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길래?

그런 판단이 일어날 때 내 몸과 마음의 상태는 어떠한가?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나에 대한 이미지'를 내려놓고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허용한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고, 그런 감정을 느끼면 안 되는 '좋은 사람인데'라는 생각 없이 말이다.

그러한 쓰레기같은 말과 감정, 생각, 그렇게 바라보는 시선 모두 그냥 안에서 떠오를 뿐.


그렇게 하고 나면, 비로소, '조건'들을 탐색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2. 나의 조건 들여다보기


이 판단이 일어나기 직전에 어떤 일이 있었나?

나의 피로도, 스트레스, 업무 부담은 이 판단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내가 이렇게 판단하게 된 배경에는 어떤 기대나 가정이 있었나?



'나의 조건'을 이해하는 것과 함께, 다음 과정은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내가 (너때문에) 이렇게 힘들어 죽겠는데!!'라는 걸 주장하고 싶은 녀석이 내 안에서 활동할 땐,

이녀석을 먼저 풀어줘야 하니까 말이다.

내 안에서 올라오는 것에 투명하게, 정직할 뿐.



3. 그리고 비로소, 상대방을 향해


이 '문제적' 행동이나 태도가 나타나게 된 그 사람의 맥락은 무엇일까?

내가 모르는 그 사람의 어려움이나 도전은 무엇일까?

만약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었다면 어떠했을까?



왜 이렇게까지 하려고 하는가?


인간 또한 그 실재reality는 공(空)하다고 하니까. 그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보고 싶기 때문.

그 사람에게 내재된 가능성을 - 시간과 무관하게 보는 눈을 갖추고 싶기 때문.

이렇게 바라보는 일은, 실제로 어떤 영향이 있는지, 정말로, 내 삶에서. 알고 싶기 때문.



무엇보다, 사람을 '개념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만날' 때의 기쁨을 알기 때문.



이러한 목적과 의도가 분명하지 않다면, 다음 과정은 공허한 시험문제일 뿐일거다.



과거에 내가 이 사람에 대해 다르게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나?

내가 이 사람의 어떤 긍정적인 면들을 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의 관점이 바뀐다면, 이 관계는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나'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을 벗어나,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바라보는 것은 어떻게 보일까?



- 더 근원적으로는, 그렇게 바라보는(바라보고자 하는) 그 '나'는 누구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진지하게 써내려가다 보면, 보통은

내 안의 상처를 발견하고 치유하게 되는 선물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고 나면,


지금 이 순간, 이 사람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결국,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무엇을 배울 수 있었는가?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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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고싶을땐안해도된다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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