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해서 더 사랑하는 돼지고기 목살 가득한 김치찌개

by 수리스타 KM

만약에 김치가 조선시대 사람이었다면 그는 아마도 모든 이에게 이름을 떨치며 혁명을 일으키는 대단한 사람이 되었을 거다.

김치라는 요 대단한 녀석은 그 오랜 세월을 거쳐 사람들 입맛의 평가를 받으며 한국인의 대표음식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 긴 세월을 한국인과 함께 하는 동반자의 음식이 되었다.
이러한 김치는 시대에 따라 자손을 퍼뜨리듯 여러 종류의 김치로 파생된 음식을 탄생시켰다. 그중 나에게 단연 으뜸은 나의 사랑 돼지고기 김.치.찌.개

김치찌개는 아주 요란한 녀석이다. 이 녀석은 어찌 요란한지 요리가 완성되기 전부터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사람들에게 인식시킨다. 맵고 짭조름한 맛에 돼지고기의 고소함이 뒤범벅이 된 강렬한 냄새. 보글보글 끓는 중간에도 눈으로 코로 나를 사로잡는다. 군침이 돌면서 나의 미각도 요동친다. 나의 식욕은 그 카리스마에 금세 현혹이 된다.
김치찌개가 완성되면 그는 식탁의 가장 중심자리로 옮겨진다. 그 냄새만큼이나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내면서. 그 카리스마는 밥상 위에서도 계속되는데 펄펄 끓고 있는 채로 밥상에 놓이며 뚜껑을 여는 순간 뜨거운 김을 한 순간에 내뿜으며 모든 식구의 눈길을 단 숨에 집중시킨다.
새로운 맛, 건강한 맛, 상큼한 맛 등으로 다른 음식들이 식탁 위에서 저마다 매력 발산을 하지만 나에게 김치찌개는 묵직한 한 방으로 늘 일인자 자리를 지킨다. 내 마음에 변함이 없다. 돼지고기 김치찌개가 나에게 항상 일인자인 이유는 그에게는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근하다. 김치찌개는 나와 세월을 함께 했기에 나는 그 어떤 새로운 맛에 있어서도 그에게 당당하게 내 마음속의 일인자의 자리를 줄 수 있다.
조금은 뜨거운 채로 숟가락 위에 올려진 찌개 속 김치, 돼지고기와 국물은 삼위일체가 되어 입 속으로 들어간다. 바로 이 맛! 내가 알던 그 맛! 나에게 익숙한 요 맛! 국물이 혀 안을 감돌다 목으로 넘어가면 김치와 고기가 그 맛을 유지시켜주면서 나를 만족시켜준다. 김치와 어우러져 국물이 적당히 밴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 참을 수 없이 나댓던 식욕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진다. 첫 숟갈에 입꼬리를 올라가게 만들고 표정을 부드럽게 만들며 나의 몸을 무장해제시킨다. 그 위력이 어찌나 큰지 온 몸을 열이 나고 땀이 나게 만들지만 배가 부를 때까지 숟가락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아주 열정적인 음식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사랑하고 사랑하는 돼지고기 김치찌개이다.




나는 이런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결혼을 하고 난 후에도 줄 곧 해왔다. 아이들의 입맛이 곧 엄마의 입맛이라는 말처럼 나의 남편과 나의 아이들도 자연스레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너무너무 좋아하게 되었다. 남편이 출장 다녀오면 제일 먼저 찾는 음식이 되었고, 아이들도 일주일에 몇 번씩 찾는 음식이 되었다.
내가 먹고 자란 우리 엄마표 김치찌개. 우리 엄마도 아빠와 결혼을 하면서 아빠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하시기 시작했다고 말씀하셨다. 아빠와 엄마의 식성이 달랐지만 자연스레 아빠의 식성에 맞춰진 식단으로 밥상을 차리면서 입맛도 세월에 따라 변하게 되었다고…...

나의 친할머니께서 해주시던 돼지고기 목살이 들어간 김치찌개를 아빠가 기억하시고 엄마가 만들어주시면서 자연스레 나도 길들여진 것이다. 음식은 입에서 입으로 기억에서 기억으로 전해졌다. 우리 엄마표 김치찌개는 돼지고기 목살이 듬뿍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나의 김치찌개도 똑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국물보다 돼지고기와 김치가 많아서 냄비 안의 공간이 좁아 보일 정도로 가득 채워지게 끓이는 것. 재료가 가득 들어있다 보니 항상 국물이 자박자박하는 그 정도이다.
신혼이었을 때는 알콩달콩한 맛으로 요리를 했던 것 같다. 늘 정성은 다했지만 가득한 맛은 덜 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식구가 하나 둘 늘고 아이들이 커 가면서 그 양도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나의 사랑이 마치 음식의 양인 것처럼 가득가득 주고 싶은 나의 마음이 그 양을 점점 푸짐하게 만들었다.
내가 가족을 위해 김치찌개를 할 때면 우리 엄마가 그러셨듯이 뭉턱뭉턱 썰린 돼지고기 목살을 가득 넣고 김장김치와 함께 냄비가 꽉 찰 정도로 넣었다. 가끔은 그 국물이 끓다가 냄비 밖으로 넘쳐서 냄비 밖 국물이 타는 듯한 냄새를 풍기기도 했다. 그런 김치찌개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식사를 할 때면 식구들은 오랜만에 먹는 음식처럼 맛있다는 말을 연신했다. 숟가락 질을 할 때마다 감탄사를 맛있다는 말로 대신하면서 먹는 식구들을 보면 흐뭇했다. 그런 행복함에는 가득함이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허기가 가시고 마음도 채워지는 것 같은 느낌.
나에게 ‘가득’이란 것은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었고, 상대방의 마음을 느끼게 해주는 또 다른 하나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가득함은 나에게 푸근함과 행복감을 주곤 했다.

몇 년 전 어느 날, 푸드코트에서 식사를 하던 중에 아이는 내게 물었다.
“엄마, 왜 여긴 고기가 많이 없어?”
나의 아이의 메뉴는 김치찌개였다.
“여긴 음식점이어서 그래.”
별다른 의미 없이 대답을 하고 나니 갑자기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나의 아들이 기대했던 김치찌개가 있었을 텐데…... 비록 9살이지만 수년 동안 먹고 자랐으니 김치찌개에 대해 본인만이 기대하는 맛이 있었을 텐데. 나의 아들이 기억하는 맛. 가 기억하는 맛.




내 어릴 적이 생각난다. 갑자기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쏟아져 내린다. 그 어릴 적에 옹기종기 밥상에 모여 앉아 찌개를 담은 냄비채로 올려놓고 밥을 먹던 기억, 연탄불에 구운 들기름 바른 김을 밥에 두 장씩 싸서 먹던 기억, 숟가락 가득 뜨거운 밥을 떠서 입 안을 한 가득 채웠던 기억, 식구 모두 모여 다 같이 밥 먹는 시간을 하루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기억.
갑자기 추억이 소환되면서 나의 가슴을 아련해졌다. 어스름한 저녁, 퇴근하고 오신 부모님, 김치찌개 냄새, 따뜻한 아랫목, 행복한 웃음……
그 시절 밥상을 찍은 사진 한 장 없어도 내 마음이 그 어린 시절 소소했던 일상을 기억한다.
나에게 김치찌개는 특별한 음식이 아닌 평범한 음식이다. 단순히 음식이 아닌 어릴 적부터 가져온 나의 정서를 말해 주기도 하고, 나의 추억을 말해 주기도 한다.
내가 가득한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어릴 적부터 쌓아온 나의 소중한 감정이기에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그 속에는 나의 8살도 있고, 나의 15살도 있고, 나의 26살도 있었다.

돼지고기 김치찌개는 나에게 옛날을 생각나게 하듯이 나의 아들도 곧 머지않아 그것을 맛볼 때면 나의 맛을 기억 속에서 꺼낼 것이다. 그렇기에 10년, 20년 후가 지나도 나는 그 돼지고기 목살이 가득한 그 김치찌개를 지금처럼 식탁 중간에 자리를 내어 줄 것이다. 그 안에 우리 할머니도 있고 우리 아빠, 우리 엄마, 나의 가족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묻어져 나오는 행복을 나에게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일상이 아니어서 더욱 잔잔하게 기억될 소중한 음식이고 우리 식구가 나를 기억할 음식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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