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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스타 KM May 16. 2023

너의 감각적 불균형을 이용할게

중도 자폐 스펙트럼의 수업 두 번째


그녀는 헬퍼와 함께 늘 센터에 온다. 헬퍼는 그녀의 분신과도 같다. 그녀의 모든 행동을 헬퍼가 지시하거나 대신해 주는 일이 많다.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아동의 가족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다. 장애 정도에 따라 다르나 보호자가 필요한 것이 대부분이기에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다 보면 지친다.

싱가포르는 헬퍼를 비교적 적은 금액에 구할 수 있기에 장애가 있거나 유아나 노인이 있는 경우에 헬퍼를 고용한 가정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녀도 그러한 경우다.  

그런데 헬퍼가 그녀를 여러 부분에서 케어해 줄 수 있었지만 그리고 그 가족이 육체적으로 좀 덜 힘들 수는 있었으나 그녀가 자립할 수 있는 기능들이 늘 제자리거나 그 기능의 역할을 하기가 힘들어졌다. 연습하면 할 수 있는 기능들이 많은데 안타까웠다. 가족의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 그녀의 지나버린 시간이 안타까운 나의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나는 네가 교육을 통해 스스로 옷을 입고, 신발을 신을 수 있을 수 있을 거라 믿어.”

 

그녀는 나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듯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복도를 걸어 치료실에 입실했다. 다행히 그녀는 사람 손에 대한 거부감은 덜했다. 그녀가 손에 들고 온 비닐을 나는 달라고 했다.

그녀는 고무줄이나 비닐로 감각 자극을 한다. 그녀가 비닐이나 고무줄만큼 좋아하지는 않지만 실로폰으로 그녀의 환심을 샀고, 소리를 두드리며 그녀에게 모방해 볼 것을 하며 동시에 비닐을 달라고 했다. 그녀는 실로폰 채를 쥐기 위해 비닐을 내 손바닥에 주었다. 실로폰을 두드리고 그녀에게도 해보라고 했다. 그녀는 한 손에 쥐어진 실로폰 채로 실로폰을 두드리다 멈췄다.

“잘했어.”

나는 실로폰 건반을 두드리다가 문지르기 시작했다.

“세아야(가명), 해 봐.”

그녀가 실로폰 건반을 두드리다가 문질렀다.

“잘했어. 세아, 잘하네.”

그녀는 한 번의 언어지시에 따르지는 못했으나 행동모방을 했다.

‘그래, 넌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어.’

내가 또 한 번의 확신이 들면서 그것은 내가 수업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자폐 스펙트럼을 보이는 아이들 중에 숫자알파벳에 관심이 많고 어느 순간 이것들에 대한 암기를 놀랍도록 하는 것과 비슷하게 그녀는 이 비닐봉지의 소리와 위치에 기가 막히게 반응했다.

평소 사물에 따라 눈 맞춤이 따라가지 못하는데 비닐봉지와 고무줄은 예외였다. 봉지소리를 내지 않아도 기가 막히고 위치를 찾아 눈을 옮겼다. 나는 머리 위아래로 방향을 왔다 갔다 하며 위치를 바꿔가며 그녀의 눈의 변화를 관찰했고, 그녀는 위아래 좌 우 할 것 없이 봉지를 따라갔다.


‘그래, 난 너의 감각적 불균형을 이용해서 너의 인지 능력을 향상시켜볼게.’


나는 파란 플라스틱 컵 세 개를 준비했다. 컵의 바닥은 엄지손톱만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 비닐을 구겨서 넣고 컵을 엎어 놓은 다음 그녀에게 찾아보게 하였다. 구멍 사이로 약간씩 보이는 비닐을 그녀가 감지하고 찾아냈다. 10번 중 10번. 모두 맞췄다. 그 활동을 하는 동안 그녀는 놀랍도록 주의집중이 됐다.

“세아야. 잘했어.”

‘다음 시간에는 내가 구멍이 뚫리지 않은 컵(단서가 없는 컵)으로 할 거야.’



아주 커다란 비닐을 돗자리처럼 바닥에 깔았다. 일상생활훈련 중 옷 입기를 하려면 바닥에 앉아서 해야 하는데 그녀가 좋아하는 것으로 안정감을 주면서 활동하기 위함이었다.  

첫 시간에 연습했던 고무줄 치마를 연습했다.

“세아, 치마 입어봐.”

두세 번의 언어 지시에 따라서 발을 치마 안으로 집어넣었다. 첫 시간에 수업 후 부모상담하면서 치마 입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어느 부분이 안 되는지. 그녀는 균형감각이 어렵기 때문에 앉아서 치마를 입어야 되고, 그렇게 되면 몇 단계를 거쳐야 한다.

첫 번째, 두 다리를 낀다.
두 번째, 손으로 치마 윗부분을 잡고 치마를 무릎 지나 허벅지까지 당겨 올린다.
세 번째, 일어난다.
네 번째, 일어난 후 허벅지까지 와 있는 치마를 허리까지 올린다. 이런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그녀는 세 번째 단계에서 수행의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일어나”언어적인 지시를 했지만 그녀는 꿈쩍하지 않았다. 나는 양손을 그녀 앞으로 가져갔고, 여러 번의 언어 지시와 나와 있는 손을 잡고 그녀는 일어났다. 그리고 치마를 올렸다.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했다.


외투에 달린 커다란 지퍼 올리기 내리기도 반복적으로 연습했다. 소근육, 눈손협응 모두 이루어져야 했다. 그녀는 언어지시와 상관없이 올리기 내리기를 하여 오른손으로는 내리기만 하고, 왼손으로는 올리기만 하는 연습을 반복하였다. 지퍼 올리기는 일주일 만에 많이 향상되었다.


양말 벗기는 너무 잘했다. 양말을 신는 것은 어려워했다. 이유는 이것도 단계를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양말을 신는 것의 핵심은 발을 약간 들어서 양말을 발목까지 오게 하는 것이었다. 이 또한 반복 연습이 필요했다.


수업시간은 50분이지만 나는 그 안에 그녀에게 초집중한다.

하나하나의 활동을 할 때마다 내 마음이 좋았다 말았다 춤을 춘다. 뭐가 될 것 같으면 너무 좋다가 어느 순간 사소한 것에 실망도 한다. 어쩔 수 없는 나의 감정이다. 그중에 그녀의 근육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고 힘 조절이 안될 때가 그러했다. 힘 조절이 안 돼서 신발을 신을 때  발가락에 힘이 들어가니 생각처럼 신발 끝으로 발가락이 움직여주질 않았다.


그녀의 수업은 우리가 평소에 잊고 있던 미세한 온몸의 모든 근육의 감각까지도 인지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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