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항상 주말에는 청소를 한다. 주말 집 청소는 생활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 쭉 그래 왔던 것 같다. 매일 가볍게 청소를 하지만 주말이면 선반의 먼지를 닦아내고 장식품 하나하나 먼지를 닦아낸다. 청소를 하는 것은 귀찮지만 어차피 누군가는 할 일이기에 하는 것이다. 그 누군가가 나일 경우가 많으니까. 나는 청소를 하고 난 후 그 깨끗한 그 느낌을 좋아한다. 이것이 내가 청소를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고, 또 다른 이유는 다음 청소까지 편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 오고 나서는 아이들과 함께 집안 청소를 같이 한다. 각 방 정리를 한 후, 청소기로 1차 먼지 제거하고 2차로 걸레질을 한다. 거실과 화장실, 주방과 베란다의 공동 구역은 구역을 나눠서 청소를 한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했고 재미있어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오래가지 못해 귀찮은 일이라는 것을 느꼈고 그 후부터는 하기 싫어했지만 그땐 이미 우리 집에선 청소가 의무가 되어버렸다.
내가 생활하는 곳은 내가 청소한다. 자신의 공간은 뒷정리를 잘한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곳은 더 깨끗이 사용한다.
싱가포르에 와서 제일 처음 유혹에 흔들린 것이 헬퍼 고용에 관한 것이었다. 가사 일을 도우는 도우미로 이곳에서는 헬퍼, 안티, 메이드 등으로 불린다.
싱가포르는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합법적으로 가능하다. 에이전시를 통해 도우미를 채용하게 되며 그 시스템은 체계적인 편이다. 게다가 고용할 수 있는 가격이 저렴하다. 한국돈으로 50만원에서 70만원 정도이고 환경과 노동 정도, 도우미의 경력에 따라 차이가 있다.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세금은 별도로 고용주가 정부에 내야 한다.
에이전시를 통해 이곳으로 오는 도우미들은 신원이 정확한 것은 물론이고 교육도 받는다. 도우미의 수요가 많기 때문에 쇼핑몰 안에서 에이전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싱가포르가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수입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다. 출산율이 급감하자 여성의 육아 부담을 줄여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도입이 되었다.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에서 젊은 여성을 가사도우미로 받아들였다. 그 후 지금은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20만명이 넘을 만큼 이곳에서 가사도우미는 보편화되었다. 그로 인해 싱가포르의 여성 경제 참여율도 높아졌다고 한다.
이런 제도에 덕분에 싱가포르에 와서 일하는 외국인 직장인들은 적어도 가사와 육아에 대한 부담은 덜면서 일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고용이 체계적이고 편리하다 보니 주위에 주재원으로 와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맞벌이를 하는 부부는 거의 집에 도우미가 있다.
집에 실외 베란다 스토리지가 도우미의 방이 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옆에 화장실이 붙어있는 구조가 많다. 한국의 구조로 말하자면 아파트 뒷베란다에 창고 같은 곳이 그들의 방이라고 보면 된다.
환경은 집마다 차이가 있으나 대체적으로 그들이 지내는 곳은 좁고 덥고 열악하다. 대부분 실외에 있는데 선풍기로 더위를 지낼 수밖에 없는 데다가 기온이 높고 습하니 위생적이기는 어렵다. 에이전트 말에 의하면 그들의 모국에서 지내는 환경은 이것보다 훨씬 좋지 않기 때문에 이런 환경은 그들에게 좋은 환경이라고 얘기를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아, 그렇구나......
에이전시에서 도우미를 통해 소개받은 후 무슨 문제가 발생 시 한 달 안에는 추가의 비용 없이 세 번까지 교체 가능하고, 한 달이 지나 6개월 안에는 추가 요금이 발생한다. 이는 에이전시마다 횟수와 가격이 다르다. 도우미의 계약은 2년을 기본으로 한다. 도우미는 건강검진을 한 후 건강하다는 것을 확인하여야 한다. 고용주는 도우미의 2년의 계약이 끝나면 비행기표를 사서 도우미의 고향에 보내줘야 한다. 도우미가 아플 시에도 고용주는 도우미를 치료해줘야 하는 의무도 따른다. 비용 부담은 대체적으로 고용주가 하나 병명이 무엇인지 치료비가 얼마가 나오는지에 따라 도우미의 고용주가 합의하여 금액을 부담한다.
일을 원하는 나라의 사람들이 있고 적절한 일자리를 만들어 그들을 고용하는 것은 경제의 선순환을 위해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싱가포르에서 도우미 고용의 가장 큰 장점은 육아와 가사일을 분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많지 않은 돈으로 고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월50만원에서 70만원정도면 된다. 세 번째는 영어권 도우미는 아이의 영어 회화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곳에 와서 사는 사람들을접하면서 느낀 것은 웬만하면 도우미를 고용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어쩌면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일 수도 있으니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수 있다.
일단 아이가 어리면 맞벌이로 일하지 않아도 도우미를 고용한다. 그 생활이 익숙해지면 아이가 성장해도 도우미의 같이 생활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등하교할 때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도우미의 한 손에는 양산이나 우산을 쓰고 해와 비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며, 한쪽 손에는 아이의 가방을 들고 아이와 나란히 걸어가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아이는 핸드폰을 할 뿐이다.
정말 드물긴 했지만 도우미와 고용 가족과 잘 지내서 도우미가 일을 그만두지 않고 10년 이상을 같이 지낸 가정을 보기도 했고, 도우미가 일을 그만두었지만 여행을 같이 가는 사람을 보기도 했다.
잘 지내려면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어야 하고 서로 이용하지 말아야 하며 거짓이 없어야 한다. 그 밖에도 잘 지내기 위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나는 싱가포르에서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면서 잘 지내지 못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Episode1도벽
아내가 싱가포르에서 직장생활을 먼저 시작하였고, 얼마 후에 남편도 이곳으로 이직을 하였다. 이곳에서 아들을 출산하면서 도우미를 고용했다.
맞벌이로 집안일을 꼼꼼히 챙길 수 없었던 아내는 몇십 달러의 돈이 분실되는 일이 여러 번 일어났다. 혹시나 의심을 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신경 쓰지 못해 그런 것이려니 생각하고 넘겼다. 그래서 아내는 여행 가기 전에 옷장에 돈을 일부러 넣어두고 여행을 갔다. 여행에서 도착한 날 그 돈을 확인하니 그 돈은 어김없이 사라졌었다. 아내는 도우미에게 사실여부를 확인하였지만 도우미는 계속 부인을 했고, 급기야 경찰을 부른다고 하니 도우미가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아내는 며칠을 고민 끝에 도우미를 해고하였다.
Episode 2 바람
이 곳의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지인은 초등학생의 아이가 한 명 있어서 집에 도우미를 고용하였다. 그 대학 안에 관사 같은 곳이 있는데 교수로 재직하는 사람들이 일반 콘도보다 저렴한 시세로 렌트를 한다. 대학교가 넓고 외곽에 있다 보니 외부와의 접근성이 떨어졌다.
직업 특성상 출장도 많고 집을 비울 일이 많았던 지인은 모든 일을 도우미에게 맡겼다.
집안일을 곧 잘하고 싹싹했던 도우미는 지인의 집에 종종 드나들던 직장 동료와 바람이 났다. 도우미는 사랑이었다고 얘기하고 직장동료는 사랑이 아니었다. 도우미는 이 사실을 알려지면서 스스로 그만두었다.
Episode 3 건강
지인은 건강검진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하는 절차를 거친 도우미를 소개받았다. 몇 달 되지 않아 갑자기 도우미가 쓰러졌고, 급하게 병원으로 옮겨서 검사를 했는데 가슴 부분이 엑스레이 상으로 검게 나오고 좋지 않았다. 그 후 그 도우미는 암을 진단받았으며 도우미가 돈이 없어서 검사의 모든 비용과 자기 나라로 다시 되돌아가는 비용을 지인이 대신 내주었다.
Episode 4 배신
평소 아이를 잘 대하고 지인에게 '마미'라 부를 정도로 싹싹했던 도우미는 지인이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부터 연락을 끊었다. 그런데 자신의 옷이나 용품은 놓아두었길래 외출한 줄 알고 밤까지 기다렸는데 오지 않았다. 지인은 도우미가 월급을 늘 놓아두는 곳에 몇 달의 월급도 있길래 돌아올 거라 생각하던 차에 싱가포르 가사도우미를 위한 인력부 MOM(ministry of manpower)에서 연락을 받았다. 도우미가 지인을 몇 달치의 월급을 안 주고 일만 시켰다고 MOM에 신고를 한 것이다. 지인은 일단 그 일이 사실이 아님을 밝혀야 했기 때문에 평소 도우미가 아이를 데리고 다녔던 유치원과 그가 갔었던 마트 등에서 그녀가 말하고 다녔던 것들이 거짓이라는 것을 인터뷰하고 그것을 MOM에 증거로 제출하였다. 월급 체납은 사실이 아니며 도우미가 자기의 고향에 가고 싶어 거짓말한 것임이 밝혀졌다. 그 후 도우미를 자기의 나라로 보냈다. 믿었던 도우미에 대한 배신감에 지인은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었다.
Episode 5 아동 방치 및 학대
저녁 5시 이후가 되면 취학 전 아동을 둔 부모는 아이들을 놀이터에 자주 데리고 나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더위가 좀 가시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저녁 먹기 전까지 나와서 놀다 들어가서 저녁을 먹는다. 도우미들은 아이를 데리고 나와서 다른 도우미들과 이야기를 하느라 아이를 잘 돌보지 않은 경우가 있고, 핸드폰을 하느라 아이를 못 보기도 한다.
도우미는 고용주의 아이인 유치원에 다니는 쌍둥이의 벌거벗은 모습을 자신의 페이스북이 올렸다가 고용주에게 발각이 되기도 했었다.
몇 달 전에는 재벌 회장님이 도우미를 폭행하고 소위 말하는 갑질을 해서 뉴스에 오르내리는 기도 했었다. 이는 우리나라 다음 뉴스에도 보도가 되었었다. 파르티 리야니(왼쪽사진 중간)는 전 싱가포르 창이그룹회장인 리우문롱을 상대로 4년간 법정투쟁을 하였으며 무죄를 선고받았다.
가사도우미에 대한 고용주의 갑질도 쉽게 접할 수 있다.
1년 동안 임금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먹을 것을 주지 않는 경우, 폭행과 폭언이 일어난다는 얘기도 들었다.
어차피 사람을 고용하는 일이라 안 좋은 일은 생기기 마련이다.
가사와 육아를 가족이 나누어 감당할 수 있으면 그것이 최고의 해결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그러기에 선택의 여지없이 가사도우미를 고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가사도우미가 관한 것을 나라에서 법적으로 보장해주고, 고용주와 고용인 서로에게 책임과 의무를 정해주는 것은 서로 간에 갈등을 최소화시켜준다. 그것을 서로 악용하면 안 되고 최소한의 인권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싱가포르에서는 가사·육아 도우미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양성화•체계화된 방안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고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한 번쯤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다. 가사도우미가 나에게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지...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보기도 하는데 그것은 결국 내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