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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스타 KM Jun 18. 2022

꽃향기 가득한 휘파람 불었던 날

산타의 선물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온 몸에 긴장했던 마음이 안도와 함께 감사함으로 변해서 쏭이(아들의 애칭)를 붙잡고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나에게도 이런 꿈만  같은 순간이 오는 것이 한동안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학교 화단 한 모퉁이에서 한참을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7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21년 11월.

소중한 기억은 가끔 꺼내보기도 벅찰 때가 있습니다.

쏭이는 첫 입시인 PSLE에서 싱가포르 전체 최고의 성적을 받았습니다. 수능 같은 입시에서 만점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인 결과였습니다. MOE(싱가포르 교육부) 확인 결과 싱가포르 전체에서 한국인은 오직 쏭이 한 명뿐이었습니다.

싱가포르 전체에서 perfect score를 받은 아이들은 20명~50명 정도 된다고 들었습니다.


  

1년 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곳의 첫 입시인 PSLE는 앞서 글에서 설명했듯이 로컬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에게는 시험기간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길게는 3년 정도 시험을 위해 대비합니다. 좋은 학교에 가고 싶은 대다수의 아이들이 열심히 하고 또 열심히 공부합니다. 입시를 견뎌내야 하는 문턱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높고 치열합니다.


열심히 공부한 모든 아이들이 다 같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시험을 치르고 난 뒤에 가져오는 제일 큰 부담감인 것 같습니다.

나와 쏭이 또한 성적표를 받기 며칠 전부터 잠 못 이루었고, 그  하루하루는 즐거운 상상보다는 최악의 순간이 온다 하면 어떻게 행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에 지칠 때만 잠깐 생각의 휴식 차원에서 성적이 잘 나오는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본능적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했던 것 같습니다.


드디어 성적표를 받는 날.

꽉 찬 강당의 싱가포리언들 사이에서 핸드폰만 손에 쥐고 1분을 1시간처럼 기다리면서 아이가 성적표를 받고 나오기를 기다리던 순간, 학부모들은 자리를 강당에서 교무실 앞 공터로 이동해야 했고, 나는 키 크고 안경 쓴 쏭이와 비슷한 아이의 실루엣이 보일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까지도 괜찮다.. 괜찮다.. 예상보다 성적 안 나와도 괜찮다… 미련 없이 했다고 하니 격려해주면 되지. 괜찮다…. 수없이 되내인 말들.


아이들 무리 앞에서 나의 아들이 담임 선생님과 교장선생님과 걸어 나왔습니다.

떨리는 3초 4초.

쏭이는 나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 나 4 밴드에 하이어 차이니스 디스팅션 받았어.”

그 말을 듣고 파일에 꽂힌 성적표를 내 눈으로 보는 순간 삐이—삐이—- 모든 것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는 눈물이 콸콸콸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모든 과목 1등급에 심화 수준의 중국어도 최고점을 받은 것입니다.

그야말로 죽죽죽 흘러내리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어느 화단 모퉁이에서 아이를 부둥켜 앉고 반쯤은 주저앉아 ‘잘했, 수고했어’를 반복하면서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담임 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이 나에게 와서 축하의 인사를 건넸지만 뭐라 하셨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한국의 입시에서 싱가포리언이 한국 학교에 다니면서 최고의 성적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축하해주시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쏭이가 한국인의 자존심을 세워준 것 같아 너무 고맙고 대견했습니다.


매체에서 취재 올 수도 있으니 인터뷰를 준비해 두라는 말을 듣기도 하면서 가슴이 설레기도 했었다. 그 후로 수 십 번도 더 들은 축하인사지만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새로운 출발이 환한 꽃다발처럼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6개월이 흘렀습니다. 쏭이는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우수한 학생 사이에서 또다시 학교생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더위를 견디느라 학교생활에 지쳐 기진맥진 집으로 돌아올 때가 대부분인데 쏭이는 꿈이 있고 목표가 있다고 얘기합니다.

쏭이가 목표를 이루고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바래집니다.

때로는 인생에 선물 같은 시간이 주어지기도 하나 봅니다. 생각지 못한 힘든 시간을 주기도 하는 것처럼.

가끔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선물 같은 시간이 진짜 주어졌을 때, 예상치 못한 기쁨이 나에게 주어졌을 때 그것을 맘껏 누릴 그런 상상도 해봅니다.

오늘은 내가 쵸콜릿 상자에서 맛있는 쵸콜릿을 먹고 휘파람을 부는 날일 수 있습니다.

즐거운 상상으로 나에게 선물 주는 날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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