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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스타 KM Apr 22. 2022

그 날 나에겐 투명타월이 있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이글거리는 뙤약볕!

요즘 싱가포르는 더위에 머리가 벗어질 정도로 덥다. 비라도 내리면 괜찮지만 후루룩 내리는 소나기는 지열을 안고 빗물이 증발하면서 후덥지근함이 더해져 목을 콱콱 다. 나는 그 태양을 머리 위에 이고 피트니스로 향했다.

낮 12시 30분.

태양이 절정을 향해가는 그 체감온도는 땅도 갈라놓을 것 같은 더위.

작은 노란 양산은 걸어가는 10분 동안에 나에게 그늘을 만들어 그때만큼은 나에게 가장 고마운 존재가 된다. 빠른 걸음 재촉하지만 마음과 몸은 따로 논다.




나 같은 초보자 들은 빨리 가서 자리 선점을 해야 된다. 요가 수업은 자리가 중요하다. 25명 정도가 한 클래스이기 때문에 뒤에 앉으면 강사의 디테일이 잘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강사에 따라 다르지만 강사의 말을 잘 못 알아들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강사는 요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인도어와 영어의 중간 발음으로 말을 하는 강사도 있고, 어떤 강사는 B발음을 혀의 윗니와 아랫니 사이로 튕겨 가면서 하는 강사도 있다.    정직한 발음이 아니라 cobbbbbbbra 이렇게 발음을 한다.

요가에 혼을 다하는 그 강사의 발음. 나를 웃게 만든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웃지 않는다. 그래서  최대한 슬쩍 웃는다.

출처 다음 학습백과 네이버 블로그

이런 강사들의 특징은 나의 웃음 코드를 자극해 요가에 대한 나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그 때문에 내가 강사를 잘 볼 수 있는 그렇지만 내 존재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 무대 중앙을 바라보는 둘째 줄 오른쪽 선호한다.


정각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미 20명도 더 와 있었고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강사의 바로 앞자리가 비어 있어 어쩔 수 없이 부담스러운 그 자리에서 요가를 시작했다. ‘다른 요가 수업 15회쯤 했으니 이쯤은 뭐’

이런 생각을 하며 거울 속 비친 내 모습에 뿌듯해하고 있을 때, 강사는 바로 자세를 바꾸어 타월을 준비하라고 했다.

‘아참, 바쓰 타월’

락커에 넣어 고 몸뚱이만 들어왔다.

순간 몇 초 생각했다. 나가서 가지고 온다고 얘기할까, 아님 강사 꺼 빌려달라고 할까,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나 말고 안 가지고 온 사람 있을 테니 그냥 하자. 어차피 몇 동작할 거 같은데’

나는 전면 거울로 사람들을 훑어보았는데 모두 타월이 있었다.

‘오 마이 갓. 웬일이야. 나만 없네’ 

안 가지고 온 사람은 강사 앞자리 바로 나 하나였다. 오늘따라 형광색 티셔츠 입은 나는 강사 앞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능숙하게 타월을 두 손으로 잡고 머리 위로 올렸다. 난감했지만 난 그냥 하기로 했다.

'투명 타월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냥 하지 뭐

 

내 딸 콩이(애칭)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다.
리코더 준비물이 있었던 날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깜빡하고 챙겨주지 못했었다. 나는 출근하고 그것이 생각났고 아이가 준비물을 못 챙겨 보냈다는 미안함에 퇴근하자마자 콩이에게
“오늘 리코더 안 가지고 가서 어떻게 했어?”
라고 묻자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 괜찮았어. 나 투명 리코더 불었거든. 나는 투명 리코더가 있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잘 불었어.”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셨니?”
“어 선생님이 괜찮대. 재밌대. 그래서 눈감고 불었지.”


콩이처럼 나도 이번 시간에는 투명 타월 사용하자. 최대한 타월을 든 사람과 똑같이 포즈를 취하고 쭈뼛거리지 말고 진지하게.

나는 양손으로 타월을 잡은 것처럼 머리 위로 뻗고 따라 했다. 거울에 비치는 형광색티셔츠. 타월 없는 내 모습이 뻘쭘했지만 최대한 요가해본 사람처럼 투명 타월을 만들었다. 타월을 머리 뒤로 넘기고 그랬다. 순식간에 요가에서 마임이 되었다.


자세가 바뀌어 양다리는 일직선으로 뻗어 땅에서 20cm 정도 바닥과 닿지 않게 하고, 상체는 뒤로 젖히고 눕지 않는 자세였다.

힘들면 타월을 이용해하면 되는 동작인데 나의 투명 타월은 여기서 너무 쓸모가 없어졌다. 아무리 내가 투명 타월로 다리를 감싸고 양손을 쭉 뻗어 그 투명 타월을 잡고 상체를 뒤로 눕히려고 배와 등, 목에 힘을 주지만 목에 핏줄만 설뿐 10초도 안되어 나는 바닥에 눕는 자세가 되었다. 복근의 통증. 도저히 투명 타월로는 안 되는 동작들이 나왔다.

내 모습에 내가 우끼다고 으면 안 돼.'

진지한 사람들 속에서 실실 웃는 이상한 사람 될까봐 웃음기를 쫙 빼고 버둥거렸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눕는게 아니라 그냥 자빠지는거였다. 자빠졌다가 앉았다가를 반복하고 있는 사이 자세 바뀌었다. 


무릎 꿇는 듯한 자세에서 오른쪽 다리 앞으로 뻗고 왼쪽 다리 뒤로 뻗어 뒤로 뻗은 다리 굽혀 발목 잡는 동작이었다. 발목 잡을 때 수건으로 감싸서 잡는 동작이었다.

이번엔 복근의 고통이 아니라 다리 사이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었다.

그러나 멈출 수가 없었다. 이미 자세를 취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거울로 보였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나도 비슷한 동작을 만들어 가야 하는데 타월이 없으니 뒤에 꺾여 있는 발은 거릴 뿐 나의 손이 닿진 않았다.

나는 거울 속 내 모습을 힐끗힐끗 보면서 발을 최대한 등 쪽으로 가져와 손으로라도 터치하려던 나 동작을 마친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다.

행여나 눈이도 마주치면 웃어? 말어? 어찌할까도 생각하 머리는 뒤죽박죽 몸은 엉망진창이었다.

오늘 요가 수업은 타월이 없는 탓에 버둥거림과 파닥거림의 연속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1시간 요가 수업이 이렇게도 길었나 싶게 시간은 더디갔고, cobbbbbbbra 자세도, 그 발음도 그 날은 들을 수 없었다. 


투명 타월은 동심에서만 존재했던 것인가.


요가

투명 타월

성공적?


Oh~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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