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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스타 KM Apr 17. 2022

아들은 아빠의 연애스타일을 닮는다

'아직까지 택시 안 왔나'

중국어 선생님을 마중 나간 아들이 집에 올라올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올라오지 않아 나는 콘도 현관으로 내려갔다. 아들과 선생님은 현관 앞에 여전히 서 계셨다.

나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아직 택시가 안 왔니?”

몇 걸음 걸어 그들의 곁으로 가려는 순간 나의 눈에 포착된 것은 바로 선생님의 가방이었다. 아들은 분홍색 핸드백 윗부분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쥐어 잡고 앞으로 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몇 초의 찰나에 선생님과 나와 아들은 눈빛이 몇 번 오고 갔고 나의 당황함을 선생님은 눈치챘는지 선생님도 멋쩍어하시면서

“James is polite.”

“Your son is good mannered. kind- hearted. Good boy.”

여러 번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아… 그래… 고마워.”

나는 어색하게 대답을 했다. 그리고 그 핸드백을 들고 있는 아들과 나 그리고 중국어 선생님 그렇게 셋이 나란히 서서 택시를 2,3분가량 더 기다렸다.


그 사이 나의 머릿속에선

‘아니~ 예의 바른 것은 나도 알아. 그래도 그렇지, 얘는 왜 선생님의 핸드백까지 들어주고 있어. 분유통만한 작은 핸드백을’

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중에 택시는 우리의 앞에 왔고, 선생님은 핸드백을 아들에게서 건네받고 택시를 타고 가셨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쏭쏭(집에서 부르는 아들의 애칭), 선생님의 핸드백은  들어준 거니?”

나는 물어보는 듯한 지적하는 듯한 애매한 말투로 아이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이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선생님은 나이가 많잖아. 당연히 내가 들어야지.” 

(헐~ 무슨 나이가 많다는 거지)

선생님이 나이가  세인데? 60 정도 되셨어도 핸드백은   있어. 그러니 중국어도 가르치러 다니시지.”

엘리베이터는 두 세 마디 나누는 동안 금방 집에 올라왔고, 나는 여기서 얘기를 끝냈어야 했다.




쏭쏭, 나중에 여자 친구 사귀면 핸드백은 네가  들고 다니겠네.”

나는 방으로 들어가는 아들 뒤통수에 대고 평소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얘기를 했다. 본심이 나왔던 걸까?

아들은 그런 나를 향해 뒤돌아 서더니

여자 가방 들어주는 것은 당연하 아냐. 아빠도 엄마 가방 들어주잖아.”

아들의 팩폭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헐~ 이건 또 뭐지)

고작 5학년인 아들이 뭘 안다고 얘기하는 걸까 싶다가도 이 상황은 뭔가 싶었다.

(잠깐 생각을 가다듬자. 침착하자. 침착해)


생각을 가다듬는 몇 초 사이 나는 안국동 왕팔뚝’이 생각났다.

나는 안국동 왕팔뚝 아니었던가!  

몸에 비해 팔뚝이 실해서 고등학교 때 친구 불렀던 별명이었다.

그래 맞다. 오늘날 내가 아들한테 저런 팩폭 듣고 싶지 않았다면 팔뚝 실한 내가 그 옛날 연애할 때부터 내 핸드백 내가 들었어야 됐는데…. 갑자기 나는 과거 회상까지 하였고, 감정과 이성이 왔다 갔다 하며 이해를 하려던 찰나

‘아니 그래도 그렇지….’

‘아빠가 나에게 해주는 것은 당연한 거지. 엄마 아빠는 결혼한 사이잖아. 너도 나중에 결혼하면 아내한테 잘하고 살면 돼.’ 이렇게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못했다.

그렇게 얘기를 하면

‘연애를 잘해야 결혼을 하지.’라고 받아칠 거 같아서.

그럼 난 할 말이 없을 테고.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마음속으로만 얘기했다.


아니 무슨 상관이야. 나중에 여자 친구 가방을 들고 다니던, 메고 다니던, 이고 다니던


애써 나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들에 대해 마음 비우기를 했었다.


무척이나 고. 맙. 구. 나! 엄마 마음을 일찌감치 비우게 만들어줘서. 너 덕에 꼰대 시어머니는 안 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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