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A레벨
‘고3 별거니, 뭐 어쩌라고’로 치부해 버리기엔 고3은 인생에서 특별한 의미로 기억되나 봅니다.
그때를 기억해보면 특별히 기억이 없고 잔잔하면서 그냥 ‘고3’으로 한 해가 기억되는 것을 보면 그렇게 느낍니다.
어느 누군가에겐 인생의 첫 번째 허들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느 누군가에겐 누구나 다하는 같이 겪는 경험 정도로 기억되기도 하고, 어느 누군가에겐 인생에 있어 가장 최선을 다해 산 순간으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통만 주신다고 교회 다니는 내 친구는 종종 얘기를 하곤 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고3의 시간은 때론 견디는 고통의 시간이 되기도 하고, 때론 버티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때론 희망에 부푸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가 가끔은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생활은 더는 못하겠다 서로 인내심의 한계를 느낄 때 입시는 끝나고 부모와의 관계가 회복되는 듯합니다.
지칠 때로 지쳐 9시가 넘어 집에 온 딸아이는 하루 일과를 이야기하다 눈물을 흘리며 나중엔 울음을 터트린다.
그녀의 감정은 가끔 컨디션에 따라 널뛰기를 한다. 좋은 마음으로 공부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것은 나의 욕심. 잘 알고 있다.
가끔 그녀의 무뚝뚝한 말투에 ‘공부밖에 하는 것이 없는데 어디서 유세를 떨어’ 마음속에서는 울화가 치밀지만 그 옛날 나도 그랬다. 그래서 할 말이 없다.
8년 전 아이를 싱가포르 로컬 스쿨에 보내 차근차근 교육과정을 밟아왔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나는 국제학교에 보낼걸 하는 미련이 종종 들었었다.
이곳에서 국제학교 보내는 부모들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접한 대다수의 부모들은 이런 이유들을 말하곤 했다. 국제학교는 아이들이 학업에 대해 갖는 스트레스가 적다는 것이 대표적 이유였다. 그들도 싱가포르의 교육 환경을 잘 아는지라 그 경쟁을 시키고 싶지도 않고, 치열하게 그곳에서 아이가 서바이벌할 가능성도 적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렇지만 국제학교를 보내고 싶어도 보내지 못하는 대다수의 이유는 학비이다.
학비가 4만 불 이상이다(한국돈으로 환산하면 3천5백만 원 이상) 많은 국제학교가 생겨나면서 학비는 학교마다 다르지만. 이 많은 학비에 학원비 그리고 제일 중요한 집값(렌트비 또는 대출이자)을 내는 건 소수의 직장인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다.
소수의 사람 안에는 주재원, 고소득 연봉, 외동 자녀, 자가가 있는 경우 등.
주재원은 몇 년 동안 학비지원이나 집 값 지원이 되기 때문에 대부분 국제학교를 보낼 수 있다. 고소득 연봉은 말할 필요도 없고. 외동 자녀인 경우는 아이 한 명이기 때문에 경제적 형편에 무리가 돼도 보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리고 집이 있는 경우엔 집값의 지출이 없기 때문에 국제학교를 택할 수 있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너무 치열한 싱가포르의 교육을 접할 때마다 국제학교에 대한 미련이 생기곤 했다.
한국으로 말하면 고3! 이곳 싱가포르에서는 JC2. 나의 딸이 고3이다.
한국에 있었으면 진작에 수능을 치렀을 테지만 이곳 싱가포르로 오면서 PSLE 중학교 입시와 겹쳐 초등학교 6학년으로는 전학이 불가능해서 학년을 낮춰 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남들보다 학창 시절이 길어졌다. 인생을 놓고 보면 1,2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되지만 본인이 느끼는 중압감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처음에 아이는 적잖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후 8년 뒤인 지금 입시생이 되었다.
이번 주 수요일 딸아이가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 어땠냐는 물음에 잠시 쭈뼛거리더니
“엄마, 나 최선을 다해보려고….”
“어? 어. 알았어.”
나는 딸아이의 말에 공부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었지만 단 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리둥절 얼떨떨했다.
“듣던 중 반가운 얘기네.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해?”
예상치 못한 말들은 사람을 당황시킨다.
나는 뜻밖에 아이의 말에 입꼬리가 올라가고 내 말투에서 최대한 친절함이 느껴졌다. 갑자기 왜? 궁금하기도 했다.
“아니, 나 그냥 후회 없이 해보려고…. 여기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았으니까…. 해보려고….”
딸아이는 많은 말을 이어가진 않았지만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다짐과 오랜만에 보는 확고한 눈빛에 나는 아이에게 어떠한 말로 지지와 응원을 보내야 할지 몇 초 동안 생각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어차피 거의 다 왔다. 누구나 겪는 과정이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면 네가 공부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될 거 같아. 그래도 건강 생각하면서 해야 하니까 잠자는 시간은 최대한 지키고. 알았지? 고마워. 엄마한테 말해줘서 고마워.”
나는 고3 엄마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말들로 아이의 말해 응해 주었다.아이가 방으로 들어간 후에도 난 궁금했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좋은 변화지만
그런데 문득 내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이 있었다.
얼마 전 딸아이는 피아노를 치고 난 후 피아노 의자에 책을 올려놓으려 몸을 숙였다가 일어나다가 피아노 모서리에 머리를 박았다. 아주 세게 박아서 왼쪽 이마 위에 멍이 들었다.
설마 머리를 부딪혀서 정신을 차린 걸까. 아주 짧게 스친 생각이지만 내 생각이 정상이 아닐 정도로 이상한 상상도 했다.
과거에 아이가 진짜 정신을 못 차릴 때는 머리에 징이라도 울려주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제발 너의 마음속에 경종을 좀 울려다오~’를 마음 속으로 외치던 시간들은 이제 나에게 과거일 뿐인가. 그동안 힘들었던 과거여 안녕~ 그 순간 나의 마음은 그랬다.
어느 옛날 영화나 코미디 영화에나 나올법한 상상이었지만 ‘머리 부딪히고 제정신 돌아오고 정신 차리기도 하는구나’를 쇼파에 앉아 생각하며 나는 한동안 멍때렸다.
나는 남편과 통화를 하면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둘이 한참을 웃었다.
머리를 부딪히든 스스로 정신을 차리든 어쨌든 지금은 세상에 모든 입시생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을 입학한다는 같은 목표로 앞 만을 보고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 어떤 말로 그들을 격려해주고 지지해줘도 모자란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우리도 다 겪어봤으니까.
빠르게 3월이 지나갔듯이 지나고 보면 올해도 빨리 지나간 거 같다고 생각될거다.
세상에 모든 입시생 자신의 원하는 결과로 올해 겨울은 행복한 겨울을 맞이하길 바란다.
올해는 잠시 잃어버릴지도 모를 봄, 여름, 가을이니까.
싱가포르 A레벨이란?
A레벨이란 영국을 비롯해 영연방 국가들의 학생들이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보는 입시 시험이다. 우리나라로 이해하자면 대학 수학능력시험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싱가포르는 역사적으로 영국의 지배를 받았적 적이 있었기 때문에 영국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교육이다. 따라서 그 시작은 영국에서 온 대학입시제도인 것이다. 그러나 싱가포르와 영국은 A레벨 조금은 다르다. 2002년부터 싱가포르에서 독립적으로 운영을 하기 때문이다.
정식 명칭은 GCE A level이며 시험을 주관하는 곳은 케임브리지 대학 부설 기관, 시험평가청, 싱가포르 교육부이다.
싱가포르는 학교가 피라미드 형태로 초등학교(primary) 중학교(secondary) 고등학교로(junior college) 갈수록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학교가 성적순으로 구분되기 때문에 이미 좋은 JC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그 실력이 뛰어나다.
싱가포르 A레벨 과목
수학(Math) 전 학과 필수과목
심화수학(Further Math)
생물(Biology) 의대진학 및 이공계
화학(Chemistry) 의대, 이공계
물리(Physics) 의대, 이공계
경제(Economics)
아트 (Art)
역사(History)
지리(Geography)
문학(Literature)
영어(English) 인문계 진학
* 과목들 중에 자신이 전공에 따라 이과 문과, 하이브리드로 나뉨
싱가포르 A레벨 일정
11월부터 12월 초 (문과 이과가 시험 일정에 차이가 있음)
(6월 말에서 7월 초 학교 학기말 시험을 끝내고 나면 8월 말 모의고사 9월 중순 모의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