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신경끄는 기술은 어디에 나와있죠?
남자친구가 자꾸만 내가 하지 말라고 했던 행동을 반복한다. 헬스장 탈의실에서 머리를 말리는데 옆에 있던 아줌마가 나를 밀치며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한다. 다이어트 중이라는데 이모는 자꾸만 내게 밥을 먹으라고 강요한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데 어떤 아줌마가 자꾸만 날 쳐다본다. 길을 지나가는데 모르는 사람이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씩 비웃는다. 마감기한을 지켜 기사를 넘겨줬건만 받아야할 돈은 제때에 들어오지 않는다. 조용한 카페에서 어떤 사람이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한다. 어떤 사람은 영화관에서 스마트폰 액정을 오랫동안 쳐다본다. 어떤 손님은 왜 내게 화장하지 않고 출근했냐며 다짜고짜 화를 낸다. 나에게 돈을 던진다. 지폐를 던져도 화가 나는데 동전을 던졌을 땐 정말이지 그 사람 얼굴에다가 동전을 던져버리고 싶다. 처음 본 사람이 반말을 찍찍 한다.
누구는 이러한 상황을 가볍게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하지 말라는 행동을 반복하는 전 남자친구에겐 참다못해 욕을 날렸다. 나를 밀친 아줌마에겐 여기가 아줌마 땅이냐며 따졌다. 나만 보면 자꾸 밥을 먹으라는 말을 기계적으로 하는 이모에겐 제발 밥 먹으라는 소리 좀 그만하라며 짜증을 냈다. 날 계속 쳐다보던 아줌마에게 다가가 “저 아세요? 왜 자꾸 쳐다보세요? 할 말씀이 있으면 하세요.”라고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훑으며 비웃었을 때는 내가 너무 바빠서 속으로 욕하고 가던 길을 갔다. 아마 시간이 남아돌았다면 쫓아갔을지도 모르겠다. 마감기한을 지켜서 다 보내줬더니 5주가 넘게 돈을 안 주고 있는 그곳의 대표에게는 이게 대체 뭐하는 것이냐고 따졌다. 조용한 카페에서는 “저기요. 지금 통화소리 시끄럽거든요?”하고 퉁명스럽게 처리했다. 제발 그 핸드폰 불빛 좀 어떻게 하라며 말을 건넸다. 그럼 아저씨는 왜 화장을 하지 않냐며, 여기 오는 손님들이 잘 생겼으면 나도 화장을 했을 것이라며, 내가 왜 화장을 해야 하냐고 인상을 팍 쓰며 대꾸했다. 던진 돈을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그 사람 얼굴을 오랫동안 쳐다보며 “네가 미쳤구나. 감히 돈을 던지냐?” 라는 표정으로 똑같이 던져줬다. 예전엔 처음 본 사람이 반말을 하면 얻다대고 반말을 하냐며 성질을 냈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나도 같이 반말을 한다. 속으로는 내가 만만한가? 왜 자꾸 반말을 하는 거지? 의문을 품은 채.
어떤 사람은 이런 내 성격을 보고 부럽다고 한다. 자기는 화를 낼 상황에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넘어간 적이 많다며. 소심한 자기의 성격이 싫다며. 그런데 복희씨는 따져야 할 상황에 잘 따진다며. 화를 내니 화병이 없겠다며. 두 발 쭉 뻗고 잘 수 있겠다며. 하지만 전 남자친구는 아니었다. 그냥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왜 그렇게 항상 싸우냐고 물어봤다. 처음에는 분명 걱정 어린 물음표였는데 마지막엔 더 이상은 나에게 공감할 수 없다는 마침표를 찍었다.
나를 열 받게 하는 뭔가를 마주하면 미쳐버릴 지경이다. 나는 몸에 화가 가득하다. 따라서 내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거나 누가 봐도 이건 아니다 싶을 상황에 할 말은 꼭 하는 편이다. 그게 상사든, 선배든, 부모님이든, 어른이든 항상 그랬다. 특히,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을수록 그랬던 것 같다.
따지고 나면 속은 시원했다. 그런데 어느새부턴가 이런 내 자신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졌다. 같은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사람들이 멋져보였다. 예전에는 저렇게 살면 답답하지 않을까 궁금했던 사람을 내가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을 보면 여러 가지를 물어봤다. 화가 나지 않냐고,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넘어갔냐고, 그러고 나면 진 것 같은 기분이지 않냐며. 각각 다른 사람이었지만 대답은 꽤나 비슷했다. 화는 나는데 굳이 엮이고 싶지 않다고, 무시하면 그만이라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나도 무시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역시나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무시하고 말지라는 생각으로 한 번 무시를 하면 상대는 내게 다시 한 번 시비를 건다. 방금 무시했던 탓인지 나의 화는 두 배로 늘어나 방금 화내지 않고 넘어갔던 것까지 쳐서 한꺼번에 화를 낸다.
인터넷에 ‘차분해지는 법’, ‘여유로워지는 법’, ‘무시하는 법’을 검색하기도 했다. 도움이 되는 글은 한 가지도 없었다. 그래서 난 제자리였다. 나는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사소한 것에 일희일비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로 명상을 시작했다.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눕거나 앉은 상태로 눈을 감고 몸에 집중을 하란다. 집중이 안 된다. 왜 갑자기 어깨 쪽이 간지러운 건지 어깨를 벅벅 긁는다. 왜 이렇게 눈 감고 있는 게 힘든 건지. 어휴, 차분해지긴 글렀다.
서론이 길었다. 오늘은 <신경 끄기의 기술>이라는 책을 소개하려 한다.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나한테 너무나도 필요한 기술이니까. 그래서 빌린 책이다. 내가 공감을 하며 깔깔대며 웃었던 부분도 있긴 했다. 작가의 말투가 직설적이고 재미있는 탓이 컸다. 나의 말투와 비슷해서 꼭 내가 남한테 말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신경을 끄고 싶은 사람들이 읽기엔 깊이 있는 책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작가 자신의 경험담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도 있다. 원래 어떤 글이든 경험담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생각이 든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경험담은, 만난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친구같다. 당신이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여기서 당신은 독자고 친구는 책이다. 그 친구는 당신이 알고 싶어 하는 기술에 대해 이미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갖고 실천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당신이 얘기를 하려고 하는 순간 그 친구는 당신의 얘기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와 지인의 얘기를 늘어놓는다. 당신은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내게 필요한 조언을 해주겠지 하고 기다린다. 시간이 지나도 친구는 도움 되는 말을 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자기의 얘기와 지인의 얘기만 반복한다. 혼자 신나서 떠들고 있다. 점점 집중력은 떨어진다. 이러려면 내가 오늘 이 친구를 왜 만났을까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내가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불친절함이다. 신경을 끄는 기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불안하기에 당신이 불안하다고 해서 우울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나는 이 말에서 위로를 받을 수 없었다. 신경을 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설명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너무 뻔한 내용들로만 가득 차 있다.
1. 건전한 관계를 지속하려면, 두 사람 모두가 ‘아니’ 또는 ‘안 돼’라는 말을 주고받을 줄 알아야 한다.
2. 한 사람, 한 장소, 한 직업, 한 활동에 몰입하면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깊이있는 경험은 할 수 있다.
3. 몰입하면 아주 중요한 몇 가지 목표에 집중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대단한 성공을 이뤄낼 수 있다.
4. 아주 하찮은 일일지라도 일단 뭔가를 하고 나면, 어려운 일이 금세 쉬워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5. 우리의 가치관은 불완전하다. 자신의 가치관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위험천만한 독단적 사고방식에 빠져 허세를 부리고 책임을 회피하기 십상이다.
6.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부정적인 감정이 더 깊어지고 오래가며 감정이 장애를 일으키고 만다.
위에 적은 글은 책에 나와 있는 일부를 옮겨 적은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에 1번부터 6번에 언급된 내용을 새롭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그 누구도 그동안 이런 건 전혀 알지 못했다며 새로운 것을 배웠다고 기뻐하진 않을 것이다. 누가 봐도 뻔한 말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그 누구도 할 수 있는 말을 굳이 책으로 만들어야 할까? 신경 끄기의 기술이라는 제목을 붙인 사람에게 상을 줘야 할 정도로 제목 버프를 많이 받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작가 마크 맨슨이 자기의 인생이 어떻게 변화하기 시작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배신감을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마크 맨슨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는 힘이 뭐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길 수 있는 기술은 뭐죠? 당신 제대로 알고 있는 거 맞나요?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좋은 이야기를 모아서 써놓은 책 같아요.
나처럼 신경 끄기의 기술이 엄청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가볍게 읽기엔 좋겠지만 제목을 보고 속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