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을의 연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복희 Oct 04. 2018

을의 연애 11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들으라는 헛소리

주환은 복희와 싸울 때면 그녀의 전화를 아주 쉽게 끊어버렸다. 그녀에게 끊겠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분에 못 이긴 복희가 전화를 다시 걸면 주환은 아예 전화를 넘겨버렸다. 이성을 잃은 그녀는 연결이 되지 않는 전화를 거는 일에 긴 시간을 쏟아 부었다. 열에 아홉은 화를 주체하지 못한 상태로 주환의 집 앞까지 그녀가 찾아가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패턴은 반복되었다.


“여보세요.”

“아니 왜 자꾸 약속을 안 지켜? 내가 이 정도로 이야기를 했으면 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응, 미안.”

“그게 다야?”

“그럼 어떡하라고. 복희야, 나 좀 쉬게 제발 냅둬.”

“그러니까 제대로 대화를 마무리 짓자고.”

“미안하다고 했잖아. 제발 그만해.”

“있잖아, 네가 사과할 때마다 너는 잘못한 게 뭔지 모르고 그냥 사과만 하는 사람 같아. 미안하면 어떻게 이렇게 행동해?”    

“아 진짜 나 쉬고 싶어. 머리 아파”

“왜 항상 싸울 때만 머리가 아파?”

“아 진짜 아프다고.”

“이제 네 입에서 아프다는 말 나오면 짜증만 나.”

“나 쉴 거야.”

“잠이 와? 나는 네가 이렇게 하고 쉬면 내 할 일 잘 할 것 같아? 나는 답답하다고.”

“너 답답한 걸 나보고 어쩌라고? 전화 끊어라. 진짜로.”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주환의 목소리가 아무런 위로도 해결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복희는 전화를 끊지 못했다. 결국 화를 내면서 전화를 끊는 건 항상 주환이었다. 전화가 끊긴 핸드폰 액정을 보자마자 그녀는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주환의 목소리 대신에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라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핸드폰을 흘겨보던 그녀는 주환에게 ‘전화 받아’, ‘안 받아?’, ‘받으라고 말했다’라며 카톡을 보냈다. 읽고도 답장이 없는 대화창을 보던 그녀는 보이스톡을 걸었다. 걸자마자 주환이 거절을 누른 탓에 ‘응답없음’이라는 알림만 뜰 뿐이었다.  


짜증이 난 그녀는 전화를 받으라는 카톡을 계속 보냈다. 주환은 ‘한 번만 더 전화하거나 카톡하면 차단한다.’라는 매정한 답변만 할 뿐이었다. 대화를 하자는 건데 왜 매번 이런 식으로 피하기만 하냐는 복희에 물음에 ‘내가 분명 카톡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넌 역시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며 정말로 그녀를 차단했다. 


차단을 당한 그녀는 답답한 마음에 공중전화로 달려가 주환에게 전화를 걸곤 했다. 그마저도 귀찮았는지 주환은 공중전화까지 차단을 해버렸다. 그러면 그녀는 엄마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또 다시 차단을 했다. 이번엔 엄마 회사의 전화기로 연락했다. 제발 전화 좀 그만하라며 사무실 전화까지 차단했다. 대체 헤어지자는 건지 뭐하자는 건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답답함에 못 이겨 그녀는 주환의 집 앞을 찾아갔다.


그는 찾아온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웃으면서 왜 왔냐고 물어봤다. 그 웃음은 복희를 더욱 열 받게 하는데 충분했다. 


“왜 왔냐고? 네가 다 무시하잖아. 헤어지자는 거야 뭐야? 행동을 똑바로 해. 제발. 나 이런 거 진짜 싫어. 왜 싸울 때 마다 나만 힘들어야 해? 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게임하고 웃고 

있는데, 왜 나만 이러냐고 대체.”

“그니까 내가 전화 걸지 말라고 했잖아. 너는 왜 내 말을 안 들어? 제발 내 말 좀 들으라니까?”

“아니, 네가 답답하게 하잖아. 매번 내가 대화하자 그러면 나보고 말하지 말라고만 하고, 다 회피하고 그러면 뭐가 풀리는데? 이럴수록 우리 사이가 멀어진다는 걸 몰라?”

“‘이럴수록’이 아니지. 네가 내 말을 안 들을수록 멀어지는 거야. 그냥 너는 내 말만 들으면 돼. 내가 전화하지 말라 그러면 걸지 말고. 톡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면 돼. 넌 그게 그렇게 힘들어?”

“응, 힘들어. 난 너 때문에 힘들어서 대화를 하자는 건데 왜 그렇게 매번 회피만 하냐고.”

“아니 어차피 말이 안 통하는데 해서 뭐해. 그냥 넌 내 말만 들어. 그러면 우리는 싸울 일도 없어. 알겠지?”


알았다고 하지 않으면 주환의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올 것 같아 그녀는 마지못해 알겠다는 대답을 해버렸다. 그녀가 잘못을 하든 그가 잘못을 하든, 피해버리는 사람은 주환, 쫓아가는 사람은 복희. 항상 이런 식이었다. 


이러한 싸움 패턴을 3년 이상 지속하자 복희는 점점 이상해졌다. 차단을 당하면 전혀 관련 없는 친구들에게 전화해 주환에게 전화를 걸어서 ‘복희 전화 좀 받아줘.’라고 해달라고 부탁했다. 부탁을 받은 친구는 ‘너네 둘이 싸운건데 내가 왜 그래야 해?’라며 되물었다. 복희는 자기가 죽어야 주환이 잘못한 걸 깨달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소리를 질러도 욕을 해도 말이 통하지 않아 액정이 다 깨질 정도로 세게 핸드폰을 집어 던지기도 했다. 열어주지 않는 주환의 집 문 앞에서 9시간 동안 죽치고 기다리기도 했다. 네이버에 신점을 검색해 믿음직스럽지 못한 무당과 전화를 하며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그러다가 큰돈을 내고 부적을 쓰기도 했다. 


대체 왜 헤어지지 않냐는 복희 친구들의 물음에 ‘내가 해준 게 얼만데 아무것도 못 받고 헤어지냐? 억울해서 못 헤어져. 다른 여자한테 돈 쓰는 꼴 절대 못 봐. 나 너무 억울해’라고 대답했다. 일종의 보상심리였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시간이 지나 주환에게 보상을 받는다 해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래를 예상하고 있었다. 지쳐 나가떨어질 법도 한데 그녀는 억울한 마음에 더욱 주환에게 집착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복희가 정신을 차렸다는 것이다. 그때는 이미 그녀가 주환에게 마음이 다 떠나고 난 뒤였다. 신기하게도, 그때는 모든 것이 반대가 되어 있었다. 복희는 주환의 연락을 무시했고 주환은 제발 만나달라며 수없이 전화를 걸었다. 복희는 이러한 상황이 오면 좋을 것 같다면서 항상 바라왔다. 막상 반대 상황을 겪은 그녀는 더 이상 이 관계가 부질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자기와 비슷한 연애를 하면서 끈을 놓지 못하는 친구를 보면 ‘내 꼴 나지 말고 당장 헤어져. 갑질 하던 놈이 나한테 빌빌 기어도 행복하진 않더라. 솔직히 통쾌하긴 한데 그 정도까지 갔으면 이미 끝난 사이라고 봐야 돼. 갑질하는 사람은 만나는 거 아니야. 과거의 날 마주하면 똑같이 전해주고 싶어. 진짜 시간이 너무 아까워. 연인한테 사랑만 받고 살아도 모자랄 판에 뭣 하러 갑질 당해주면서 사냐. 너는 그러지마. 진짜 내가 겪어봐서 그래.’라며 말하곤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을의 연애 1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