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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을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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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희 Jun 28. 2018

을의 연애 10

최악의 롯데월드

주환이 전역한 지 일주일 쯤 지났을 때였다. 복희와 주환은 밤늦게까지 놀았다. 그날은 둘이 롯데월드에 놀러가기로 한 바로 하루 전이었다. 그녀는 주환과 놀고 있는 중에 살짝 불안감을 느꼈다. 왠지 주환이 다음날 피곤하다며 못 놀러가겠다고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입밖으로 그런 말을 뱉지 않았다. 말로 꺼내면 정말로 놀러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집에 조심히 들어가.”

“응. 내일 봐.”


왜 항상 복희의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건지. 이번에도 예상이 맞았다. 오후 4시가 되었지만 그에게 연락 한 통 오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계속 복희는 주환을 기다렸다. 물론 조용히 기다리진 않았다. 계속해서 톡을 보내고 전화를 했다. 하지만 그는 응답이 없었다. 그녀는 화가 날 대로 나 있는 상태였다. 복희가 ‘오늘은 롯데월드로 놀러갈 수 없구나’ 하며 체념할 때쯤 전화기 너머로 주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졸음을 못 참겠다는 너무나도 태평한 목소리였다.


“아 지금 뭐하는 거야?”

복희는 주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언성을 높였다. 그녀의 미간은 있는 대로 찌푸려졌다.


“하....”

주환은 오늘이 복희와 롯데월드를 가기로 한 날이라는 걸 전혀 모르는 사람 같았다.


“하?”

똑같은 ‘하’였지만 전혀 달랐다. 복희가 꺼낸 한 글자는 그에게 ‘너 미쳤니?’하고 물어보는 듯 했다.


“아, 그니까 어제 너무 늦게까지 놀았잖아.”

주환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고의였든 아니었든 사과를 해야 하는 입장이면서도 매번 여유로웠다. 이런 모습은 복희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너만 놀았어? 나도 같이 놀았어. 너랑 나랑 둘 다 늦게 잤어. 어제 늦게까지 논 우리가 잘못한 거야? 아니면 오늘 늦게 일어나서 약속 못 지킨 네가 잘못한 거야?”

아침부터 오후 4시까지 주환에게 연락하며 참던 화가 터진 듯 했다.


“아니, 롯데월드 가고 싶었으면 어제 빨리 집에 보내줘야 되는 거 아니야? 나는 우리가 어제 너무 늦게까지 놀아서 당연히 오늘 안 놀러가는 줄 알았어.”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로 복희에게 잔소리하던 주환은 이럴 때마다 당연한 걸 찾아댔다. 그의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은 복희의 화를 더욱 돋구기에 충분했다.


“당연히? 나랑 장난해? 그럼 내가 피곤하니까 나중에 가자고 말을 했을 거 아냐. 근데 내가 그랬어? 내가 오늘 롯데월드 가지 말자고 했어?”

“아, 진짜. 복희야 왜 사람 일어나자마자 스트레스를 주냐? 내가 뭐 죽을 죄를 지었냐?”

“누가 너 죽을 죄 지었대? 그게 아니라 약속을 어겼으면 미안하다고 해야 할 거 아니야? 충분히 좋게 풀 수 있는 일을 항상 왜 이따위로 만들어? 전화 받자마자 어제 너무 늦게까지 놀아서 늦잠 잤다고 미안하다고 하면 내가 바로 화부터 내? 아니잖아.”

복희의 표정은 화난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슬픈 표정이었다.


“복희야. 나 진짜 너랑 통화하기 싫어. 사람 피곤해 죽겠는데 화부터 내고 난리야. 네 목소리 듣기도 싫다. 그냥 전화 끊는다.”


끝까지 당당한 태도로 일관하던 주환은 급기야 전화를 끊어버렸다. 복희는 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둘은 대화를 할 수를 없었다. 그가 전화를 넘기거나, 받은 지 1초도 안돼서 끊어버렸으니까.


둘의 싸움 패턴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그녀는 쫓아가고 주환은 도망가고. 주환은 시간이 필요했고 복희는 대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는 매번 그녀를 거부했다. 거부하는 방법은 다양했다.


1. 복희의 연락처를 아예 차단을 한다거나

2. 무음으로 해놓은 핸드폰을 그저 뒤집어 놓고 신나게 롤을 한다거나

3. 초록색과 빨간색 사이에서 빨간 버튼을 눌러 복희의 전화를 거절하거나

4. 한 번만 더 전화하면 ‘헤어질 거야’라는 말로 협박하거나


그 중에서도 4번이 복희에겐 가장 타격이 컸다. 하지만 그 말을 들어도 복희는 전화를 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잘못은 상대가 했는데 왜 자기가 헤어지자는 말을 들어야 하는지 억울했기에. 그렇게 싸우다보면 헤어지자고 했던 주환도 알았다며 그럼 헤어지지 않는 대신 자기의 말을 제발 들으라고 다그쳤다.


“제발 말 좀 들어.”

“잘못은 네가 다 했는데 왜 나는 너한테 말도 못해?”

“안 그러면 우리가 사이가 안 좋아져. 그러니까 내 말 좀 들어.”

“그건 그냥 네가 편하고 싶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복희야. 이러는 내가 싫으면 헤어지면 되는 거잖아. 근데 네가 안 헤어지는 거잖아. 그럼 당연히 네가 내 말 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말은 그럼 너는 나랑 헤어져도 상관없다는 거야?”

“응, 맞아. 난 너랑 헤어져도 상관없어. 그러니까 지금 정해. 내 말 들을래 아니면 헤어질래?”

“그래 말 들을게.”

항상 싸움의 마무리는 이런 식이었다. 이상한 걸 알면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복희와 헤어지지 못하는 그녀의 마음으로 장난치는 주환이었다.


결국 몇 주가 흐른 뒤에야 둘은 롯데월드에 갈 수 있었다. 복희는 어디를 갈 때면, 항상 어떻게 해야 저렴하게 갈 수 있는지 알아봤고 웬만하면 예매를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녀는 할인 이벤트를 알아보고 바로 예매했다. 그리곤 롯데월드에 도착하자마자 발권기에서 티켓을 뽑았다. 티켓을 넣을 수 있는 귀여운 목걸이도 샀다. 복희는 핑크색, 주환은 하늘색으로 골랐다. 그녀가 이렇게 준비할 때까지 주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복희가 이미 다 알아서 해놨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 같았다. 그래도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들어온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놀이기구 달랑 두 개만 타고 싸우면서 롯데월드를 나가기 전까지는.  


주환은 복희 팔에 딱 달라붙어 무섭다고 어떻게 하냐고 칭얼댔다. 그녀는 그런 그를 보며, 괜찮다고 안 무섭다고 재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그는 계속해서 ‘무섭다’는 말을 반복했다. 들어가서 어떤 놀이기구를 탈지 둘러볼 때도, 매직 아일랜드로 가기 위해 탄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놀러온 기념으로 같이 사진을 찍을 때도. 점점 복희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기분 좋게 놀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일은 바이킹 줄에서 시작됐다.


“난 끝에서 타고 싶어.”

복희에게 바이킹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바이킹을 타면서도 셀카와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 싫어. 가운데에서 타자.”

주환은 질색을 했다.


“기다렸는데 왜 가운데에서 타? 끝에서 타자.”

“진짜 싫다고. 나 무서워 가운데에서 타자.”


복희는 주환이 놀러와서까지 자기의 말을 들어주지 않자 짜증이 났다. 그를 째려보며 어쩔 수 없이 가운데로 갔다. 타면서도 주환은 무서워 죽겠다는 말을 반복했고 복희는 아무런 감흥이 없다는 표정으로 일관했다.

그녀는 바이킹을 다 타고 난 후에도, 충분히 스릴을 즐기지 못했다는 불만이 있다는 것을 티내지 않았다. 어차피 타고 난 후였고, 다른 놀이기구를 타면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주환은 아니었다.


“넌 왜 사람이 무섭다는데 그렇게 행동해?”

“내가 뭘?”

“아니 토닥여주지도 않고 진짜 짜증나네.”

“그래서 가운데에서 탔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내가 내려서 너한테 뭐라고 한 것도 아니고.”

“너 진짜 내 여자친구 맞냐? 아니 너는 네 남자친구가 무섭다는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반응해?”

“대체 뭘? 난 솔직히 네가 들어와서 지금까지 무섭다고 말하는 거 짜증나 죽겠어.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달라붙어서 계속 무섭다고 발 동동 구르고 그게 뭐야? 아무것도 타기 싫다고 나한테 눈치를 주는 거야 뭐야?”

“진짜 너 제정신이냐? 아 어이없네. 그냥 집에 가자.”

“뭐? 집에 가자고?”

“그래, 가자고.”

“하... 너 나랑 장난쳐? 야 나는 오늘 여기 오려고 다 예매하고 했더니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집에 가자고?”

“돈 줄게.”

“내가 언제 돈 달랬어?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예매하고 이런 게 고마우면 그렇게 쉽게 집에 가자는 말은 안 하지 않겠어?”

“그럼 어떻게 이런 기분으로 너랑 놀아? 여기서?”

“알았어. 네가 무섭다고 했는데 내가 성질 낸 거 미안해. 그래도 너 전역하고 처음으로 놀러온 곳인데 그만 싸우고 재밌게 놀다 가자. 내가 미안해.”

“아니, 난 집에 갈 거야.”

“내가 미안하다고 하잖아. 이런 날엔 그냥 너도 화 좀 풀고 즐겁게 놀다 가면 안 돼?”

“어, 싫어. 집에 가자 그냥.”

“너는 나한테 이러고 싶어? 내가 사과도 했고, 너 전역하고 놀러온 건데 이렇게 해야 돼?”

“그럼 네가 처음부터 내 기분을 상하게 하질 말았어야지.”


복희가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둘은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주환은 복희와 데이트를 하는 도중에도 기분이 나쁘면 복희를 내버려두고 집으로 가버렸다. 그때마다 복희는 주환을 쫓아갔지만 더욱 멀어질 뿐이었다. 길에서도 마음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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