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환이가 복희를 신고한 이유
복희는 낮잠을 자고 있는 주환이 옆에 누워있었다. 주환이의 핸드폰 화면이 밝아졌다. 복희는 자연스레 핸드폰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주환이 제대로 잠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녀는 그의 얼굴을 몇 초간 응시했다. 그가 금방 깰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을 하자마자 핸드폰으로 손을 뻗었다. 낯선 여자에게 온 카톡이었다. 복희는 그 여자의 프로필을 눌러봤다. 프로필 사진을 눌러보기도 전에 그녀는 눈치를 챘다. 주환이 그 여자랑 연락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주환이 복희랑 사귀는 중에 새롭게 알게 된 여자라는 사실을. 복희가 주환의 친구 목록에서 처음 본 이름이었고, 그 전의 대화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주환이 미리 정리를 하고 난 뒤였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대화방을 정리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복희는 자고 있는 주환을 한 번 째려본 뒤 그 여자의 번호를 자기 핸드폰에 저장했다. 그녀는 아주 짧은 시간 주환을 깨울지 말지 고민했다. 깨우지 말고 일단 기다리는 게 낫겠다는 이성적인 판단은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았다. 복희는 주환을 깨워댔다.
“최주환. 너 여자 생겼냐?”
“하. 또 너 내 핸드폰 뒤졌냐?”
복희에게 너무나도 익숙했지만 상처받기에도 충분한 대답이었다.
“역시나 넌 그게 중요하지? 그따위로 대답할 줄 알았다. 얘 누구냐?”
“아 진짜 나 너랑 못 만나겠다. 왜 그렇게 내가 하지 말라는 짓을 해? 왜 내 핸드폰을 만져?”
“나랑 장난해? 누구냐고.”
“야. 너 나가.”
주환은 복희를 밀며 집 밖으로 쫓아내기 시작했다.
“누군지 제대로 말할 때까지 안 나갈 거니까 제대로 말해. 누구냐고.”
“아 진짜 정신병자 같아. 제발 좀 꺼져.”
“그래? 너 후회 안하지? 그럼 내가 알아내야겠네.”
“마음대로 하세요.”
주환의 태도는 복희를 자극시켰다.
“내가 얘 누군지 못 알아낼 거 같지? 후회나 하지마.”
그녀는 주환을 쳐다보며 비웃었다. 그러라는 주환의 얼굴을 보자마자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다.
“주환아. 나 걔 번호 저장했다? 내가 전화해서 물어보면 되겠다. 그치? 재밌겠네. 넌 밖에서 잘 들어.”
“야 이 미친년아!! 너 나와. 미쳤어? 너 전화 걸지마. 걸기만 해. 진짜 죽여버릴거야.”
“왜? 왜 걸면 안 돼? 남자친구가 내가 모르는 여자랑 연락해서 미쳐 돌아버릴 것 같은데 너는 누군지 말을 안 하잖아. 그럼 내가 알아내야지. 그니까 내가 대답하라고 했잖아. 항상 이런 식으로 나를 미친 사람으로 만들더라. 너는.”
복희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저기요. 최주환 알아요?”
“누구세요?”
“저 최주환 여자친군데요. 왜 얘랑 연락해요? 둘이 어디서 만났어요? 무슨 사이예요? 여자친구 있는 건 알고 연락하는 거예요? 몇 살이예요? 어디 살아요?”
“지은아. 전화 끊어!! 걔 미친년이야. 듣지마. 그냥 끊어!”
밖에 있던 주환은 화장실 문을 부숴버릴 것 같이 두들겨댔다. 주환의 그런 모습과 대답 없는 통화는 복희를 더욱 자극했다.
“야!!! 너 누구냐고. 너 누구야. 똑바로 말해. 누군데 연락해? 둘이 어디서 만났어?”
복희는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언니 그게 아니고요. 저희 게임에서 만났고요. 여자친구 있는 거 알았어요. 저희 정말 그런 사이 아니에요. 죄송해요.”
“어디서 만났냐고.”
“게임이요. 근데 진짜 이상한 사이 아니에요.”
“몇살인데?”
“저 19살이예요.”
나이를 들은 복희는 기가 찼다. 어이가 없는지 웃기 시작했다.
“고3이야? 최주환 저게 미쳤구나. 하다하다 고딩이랑 연락하는 거야? 게임은 같이할 수 있다고 쳐. 근데 게임 같이한 사람이 번호까지 교환하고 카톡하는 게 말이 돼요? 누가 먼저 번호 알려달라 그랬어요?”
“오빠가 먼저 알려달라고 했어요.”
“왜요?”
“잘 모르겠는데 근데 진짜 이상한 사이 아니에요.”
“내가 이따 전화하면 다시 받아요. 알았죠?”
“알았어요.”
전화를 끝낸 복희는 밖으로 나갔다.
“주환아. 난 너 취향이 이런 줄은 몰랐네. 미성년자 좋아해?”
그녀는 주환을 경멸하듯 쳐다보며 비꼬기 시작했다.
“미친년아. 너랑 나는 그냥 끝이야. 나가 정신병자야.”
주환이 군인이었을 때 복희가 보냈던 편지와 사진이 가득 들어있는 상자에 손을 댔다. 그러더니 같이 찍었던 사진을 꺼내 찢어버렸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너 돌았니? 지금 화내야 될 게 누군데 네가 지금 그 사진을 찢어? 빌어도 모자랄 판에. 네가 사람이냐?”
찢어진 사진을 보고 복희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주환은 그런 복희를 보곤 더 자극하고 싶어졌는지 찢어진 사진을 변기통 안에 넣고는 물을 내렸다. 그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복희가 이성을 잃을 때마다 더 잃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마치 그녀가 자기 때문에 괴로워하길 바라는 사람처럼. 주환의 그런 행동은 복희가 이성을 잃기에 완벽했다. 그녀는 부엌에 있는 식용유를 집어 들었다.
“그 사진을 그렇게 쉽게 찢어? 오늘 한 번 이거 닦느라고 고생해봐.”
복희는 식용유 뚜껑을 열더니 무차별하게 뿌리기 시작했다.
“진짜 미친년이야 너는. 미친년. 제발 좀 꺼져.”
“그냥 사과를 하라고! 아니면 변명을 하든가. 그냥 넌 내가 너 핸드폰 봤다는 이유 하나로 사진 찢고 이러는 게 말이 돼? 이 일이 지금 왜 일어났는데? 너 때문이잖아 아니야?”
“응, 아니야.”
“진짜 미친새끼.”
“네 말대로 미친 거 맞으니까 좀 나가라. 아니다 그냥 경찰에 신고해줄게.”
누가 봐도 주환은 복희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어보였다. 그는 112를 누르더니 전화를 걸었다.
“네 저 신고 좀 하려고요. 어떤 여자애가 저희 집에 왔는데요, 안 나가서요. 얘 좀 내보내주세요. 네 주소가요 서울 관악구”
“정신병자는 누가 봐도 넌데? 어떻게 잘못을 해놓고 이렇게 당당하고 신고까지 해?”
몇 분 지나지 않아 경찰 두 명이 초인종을 눌렀다.
“신고하셨죠?”
“네. 얘가 안 나가서요.”
“무슨 사인데요?”
“아무 사이도 아닌데요.”
“아무 사이 아니라고? 그럼 내가 애초에 여길 어떻게 들어왔는데? 저 얘 여자친구고요. 제가 집에 쳐들어온 것도 아니에요. 싸우니까 얘가 신고한 거예요.”
“그래도 집 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돼요.”
“와 진짜 재밌다. 너네집이라서 신고할 거면 보증금 반은 왜 내가 낸 거야?”
“일단 나오세요.”
복희는 가방을 메고는 경찰을 따라 나섰다. 주환도 같이 따라 나왔다.
“근데 저는 쟤랑 말도 제대로 안 끝났어요. 이야기 하다 갈게요.”
“아뇨. 저는 얘랑 할 얘기 없으니까 그냥 데리고 가주세요.”
“그래도 여자분이 얘기하고 싶다는데 얘기만 하세요.”
원치 않았지만 주환은 복희와 얘기를 하게 됐다.
“그 여자애랑 왜 연락했어?”
“그냥 했어.”
“왜? 여자잖아. 왜? 여자랑 왜?”
“여잔 줄 모르고 했어. 남자앤 줄 알고 카톡하자고 했어.”
“거짓말도 생각을 좀 하면서 해. 프로필 사진이 여잔데 무슨 남잔 줄 알아?”
“하. 그냥 할 얘기 없어. 가. 당분간 시간 좀 가지자.”
“시간? 무슨 시간? 헤어질 시간? 네가 반성할 시간? 네가 잘못해 놓고 너 진짜 당당하다.”
복희는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 여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까 소리 지른 거 미안해요. 둘이 왜 연락했어요?”
“처음에는 게임 같이 하게 됐고 그러다가 친해져서 번호 알려달라고 해서 연락하게 됐어요.”
“연락한 지 얼마나 됐어요?”
“2주 정도 됐어요. 언니 근데 진짜 저희 이상한 사이 아니고요, 오빠도 언니 얘기 많이 했어요.”
“무슨 얘기요?”
“그냥 힘들다고요.”
“뭐가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자주 싸운다는 말 했어요.”
평소 주환은 자기의 속마음을 복희에게 잘 말하지 않았다. 그런 주환의 태도는 복희를 외롭게 만들었다. 그런데 만나본 적도 없는 고등학생에게 그런 얘길 했다는 사실에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주환이 시간을 가지자고 한 2주가 흘렀다. 이번에도 복희가 먼저 연락을 했다. 그녀의 예상대로 주환은 뻔뻔했다. 누가 보면 복희가 남자친구 몰래 다른 남자와 연락하다가 걸린 상황인 줄로 착각할 만한 태도였다. 복희는 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받지 못했다. 그저 핸드폰을 몰래 뒤져본 죄인일 뿐이었다.
이것이 주환이 복희를 경찰서에 신고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