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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을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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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희 Jun 14. 2018

을의 연애9

주환이가 복희를 신고한 이유

복희는 낮잠을 자고 있는 주환이 옆에 누워있었다. 주환이의 핸드폰 화면이 밝아졌다. 복희는 자연스레 핸드폰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주환이 제대로 잠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녀는 그의 얼굴을 몇 초간 응시했다. 그가 금방 깰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을 하자마자 핸드폰으로 손을 뻗었다. 낯선 여자에게 온 카톡이었다. 복희는 그 여자의 프로필을 눌러봤다. 프로필 사진을 눌러보기도 전에 그녀는 눈치를 챘다. 주환이 그 여자랑 연락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주환이 복희랑 사귀는 중에 새롭게 알게 된 여자라는 사실을. 복희가 주환의 친구 목록에서 처음 본 이름이었고, 그 전의 대화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주환이 미리 정리를 하고 난 뒤였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대화방을 정리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복희는 자고 있는 주환을 한 번 째려본 뒤 그 여자의 번호를 자기 핸드폰에 저장했다. 그녀는 아주 짧은 시간 주환을 깨울지 말지 고민했다. 깨우지 말고 일단 기다리는 게 낫겠다는 이성적인 판단은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았다. 복희는 주환을 깨워댔다.


“최주환. 너 여자 생겼냐?”

“하. 또 너 내 핸드폰 뒤졌냐?”

복희에게 너무나도 익숙했지만 상처받기에도 충분한 대답이었다.

“역시나 넌 그게 중요하지? 그따위로 대답할 줄 알았다. 얘 누구냐?”

“아 진짜 나 너랑 못 만나겠다. 왜 그렇게 내가 하지 말라는 짓을 해? 왜 내 핸드폰을 만져?”

“나랑 장난해? 누구냐고.”

“야. 너 나가.”


주환은 복희를 밀며 집 밖으로 쫓아내기 시작했다.


“누군지 제대로 말할 때까지 안 나갈 거니까 제대로 말해. 누구냐고.”

“아 진짜 정신병자 같아. 제발 좀 꺼져.”

“그래? 너 후회 안하지? 그럼 내가 알아내야겠네.”

“마음대로 하세요.”

주환의 태도는 복희를 자극시켰다.


“내가 얘 누군지 못 알아낼 거 같지? 후회나 하지마.”


그녀는 주환을 쳐다보며 비웃었다. 그러라는 주환의 얼굴을 보자마자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다.


“주환아. 나 걔 번호 저장했다? 내가 전화해서 물어보면 되겠다. 그치? 재밌겠네. 넌 밖에서 잘 들어.”

“야 이 미친년아!! 너 나와. 미쳤어? 너 전화 걸지마. 걸기만 해. 진짜 죽여버릴거야.”

“왜? 왜 걸면 안 돼? 남자친구가 내가 모르는 여자랑 연락해서 미쳐 돌아버릴 것 같은데 너는 누군지 말을 안 하잖아. 그럼 내가 알아내야지. 그니까 내가 대답하라고 했잖아. 항상 이런 식으로 나를 미친 사람으로 만들더라. 너는.”


복희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저기요. 최주환 알아요?”

“누구세요?”

“저 최주환 여자친군데요. 왜 얘랑 연락해요? 둘이 어디서 만났어요? 무슨 사이예요? 여자친구 있는 건 알고 연락하는 거예요? 몇 살이예요? 어디 살아요?”

“지은아. 전화 끊어!! 걔 미친년이야. 듣지마. 그냥 끊어!”


밖에 있던 주환은 화장실 문을 부숴버릴 것 같이 두들겨댔다. 주환의 그런 모습과 대답 없는 통화는 복희를 더욱 자극했다.


“야!!! 너 누구냐고. 너 누구야. 똑바로 말해. 누군데 연락해? 둘이 어디서 만났어?”

복희는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언니 그게 아니고요. 저희 게임에서 만났고요. 여자친구 있는 거 알았어요. 저희 정말 그런 사이 아니에요. 죄송해요.”

“어디서 만났냐고.”

“게임이요. 근데 진짜 이상한 사이 아니에요.”

“몇살인데?”

“저 19살이예요.”


나이를 들은 복희는 기가 찼다. 어이가 없는지 웃기 시작했다.


“고3이야? 최주환 저게 미쳤구나. 하다하다 고딩이랑 연락하는 거야? 게임은 같이할 수 있다고 쳐. 근데 게임 같이한 사람이 번호까지 교환하고 카톡하는 게 말이 돼요? 누가 먼저 번호 알려달라 그랬어요?”

“오빠가 먼저 알려달라고 했어요.”

“왜요?”

“잘 모르겠는데 근데 진짜 이상한 사이 아니에요.”

“내가 이따 전화하면 다시 받아요. 알았죠?”

“알았어요.”


전화를 끝낸 복희는 밖으로 나갔다.


“주환아. 난 너 취향이 이런 줄은 몰랐네. 미성년자 좋아해?”

그녀는 주환을 경멸하듯 쳐다보며 비꼬기 시작했다.

“미친년아. 너랑 나는 그냥 끝이야. 나가 정신병자야.”


주환이 군인이었을 때 복희가 보냈던 편지와 사진이 가득 들어있는 상자에 손을 댔다. 그러더니 같이 찍었던 사진을 꺼내 찢어버렸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너 돌았니? 지금 화내야 될 게 누군데 네가 지금 그 사진을 찢어? 빌어도 모자랄 판에. 네가 사람이냐?”


찢어진 사진을 보고 복희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주환은 그런 복희를 보곤 더 자극하고 싶어졌는지 찢어진 사진을 변기통 안에 넣고는 물을 내렸다. 그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복희가 이성을 잃을 때마다 더 잃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마치 그녀가 자기 때문에 괴로워하길 바라는 사람처럼. 주환의 그런 행동은 복희가 이성을 잃기에 완벽했다. 그녀는 부엌에 있는 식용유를 집어 들었다.


“그 사진을 그렇게 쉽게 찢어? 오늘 한 번 이거 닦느라고 고생해봐.”


복희는 식용유 뚜껑을 열더니 무차별하게 뿌리기 시작했다.


“진짜 미친년이야 너는. 미친년. 제발 좀 꺼져.”

“그냥 사과를 하라고! 아니면 변명을 하든가. 그냥 넌 내가 너 핸드폰 봤다는 이유 하나로 사진 찢고 이러는 게 말이 돼? 이 일이 지금 왜 일어났는데? 너 때문이잖아 아니야?”

“응, 아니야.”

“진짜 미친새끼.”

“네 말대로 미친 거 맞으니까 좀 나가라. 아니다 그냥 경찰에 신고해줄게.”


누가 봐도 주환은 복희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어보였다. 그는 112를 누르더니 전화를 걸었다.


“네 저 신고 좀 하려고요. 어떤 여자애가 저희 집에 왔는데요, 안 나가서요. 얘 좀 내보내주세요. 네 주소가요 서울 관악구”

“정신병자는 누가 봐도 넌데? 어떻게 잘못을 해놓고 이렇게 당당하고 신고까지 해?”


몇 분 지나지 않아 경찰 두 명이 초인종을 눌렀다.


“신고하셨죠?”

“네. 얘가 안 나가서요.”

“무슨 사인데요?”

“아무 사이도 아닌데요.”

“아무 사이 아니라고? 그럼 내가 애초에 여길 어떻게 들어왔는데? 저 얘 여자친구고요. 제가 집에 쳐들어온 것도 아니에요. 싸우니까 얘가 신고한 거예요.”

“그래도 집 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돼요.”

“와 진짜 재밌다. 너네집이라서 신고할 거면 보증금 반은 왜 내가 낸 거야?”

“일단 나오세요.”

복희는 가방을 메고는 경찰을 따라 나섰다. 주환도 같이 따라 나왔다.

“근데 저는 쟤랑 말도 제대로 안 끝났어요. 이야기 하다 갈게요.”

“아뇨. 저는 얘랑 할 얘기 없으니까 그냥 데리고 가주세요.”

“그래도 여자분이 얘기하고 싶다는데 얘기만 하세요.”


원치 않았지만 주환은 복희와 얘기를 하게 됐다.


“그 여자애랑 왜 연락했어?”

“그냥 했어.”

“왜? 여자잖아. 왜? 여자랑 왜?”

“여잔 줄 모르고 했어. 남자앤 줄 알고 카톡하자고 했어.”

“거짓말도 생각을 좀 하면서 해. 프로필 사진이 여잔데 무슨 남잔 줄 알아?”

“하. 그냥 할 얘기 없어. 가. 당분간 시간 좀 가지자.”

“시간? 무슨 시간? 헤어질 시간? 네가 반성할 시간? 네가 잘못해 놓고 너 진짜 당당하다.”


복희는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 여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까 소리 지른 거 미안해요. 둘이 왜 연락했어요?”

“처음에는 게임 같이 하게 됐고 그러다가 친해져서 번호 알려달라고 해서 연락하게 됐어요.”

“연락한 지 얼마나 됐어요?”

“2주 정도 됐어요. 언니 근데 진짜 저희 이상한 사이 아니고요, 오빠도 언니 얘기 많이 했어요.”

“무슨 얘기요?”

“그냥 힘들다고요.”

“뭐가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자주 싸운다는 말 했어요.”


평소 주환은 자기의 속마음을 복희에게 잘 말하지 않았다. 그런 주환의 태도는 복희를 외롭게 만들었다. 그런데 만나본 적도 없는 고등학생에게 그런 얘길 했다는 사실에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주환이 시간을 가지자고 한 2주가 흘렀다. 이번에도 복희가 먼저 연락을 했다. 그녀의 예상대로 주환은 뻔뻔했다. 누가 보면 복희가 남자친구 몰래 다른 남자와 연락하다가 걸린 상황인 줄로 착각할 만한 태도였다. 복희는 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받지 못했다. 그저 핸드폰을 몰래 뒤져본 죄인일 뿐이었다.


이것이 주환이 복희를 경찰서에 신고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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