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무음이 아니었어도 내 전화는 받지 않았을 거잖아.
주환은 복희의 전화를 자주 무시했다. 분명 부재중 알람을 봤을텐데도 주환은 절대 그녀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참다 참다 화가 난 복희는 주환을 만나 따져 물었다.
“도대체 왜 전화를 받지 않는 거야? 그래 바빠서 못 받았다고 치자. 근데 왜 다시 걸지를 않아? 그냥 나랑 연락하기가 싫어?”
“무음이야.”
너무나도 간결한 그의 답변은 그녀를 또 비참하게 만들었다.
“무음이면 나중에 전화 온 거 보고도 무시하는 거야?”
“아, 그만 좀 해.”
복희는 ‘나도 진짜 전화 걸지 말아야지’라며 결심했다. 하지만 그 결심은 하루도 채 가지 못 했다. 이런 일을 계속 겪고도 틈만 나면 전화를 걸었으니까.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인지 그저 애정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인지 그녀 자신도 헷갈렸다. 받지 않는 전화를 걸면 걸수록 마음은 상처투성이가 됐는데도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통화연결음이 끝나고 나오는 여성의 멘트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나는 날도 있었다. 새벽에 집에 가는 길이 무서워 그에게 전화를 걸 때면 그는 끝내 받지 않았다. 방금까지 같이 있었는데도 그는 잠이 든 건지 게임에 빠진 건지 그녀의 전화를 무시했다. 늦은 새벽에도 그녀는 전화를 한 통으로 마무리 하지 않았다. 화가 난 마음에 열 통 넘게 전화를 했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니, 이 새낀 도대체 정신머리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여자친구가 새벽에 밖에 있는데 어떻게 전화를 안 받을 수가 있냐고. 진짜 어이가 없네.”
화가 난 복희는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연 뒤 주소창에 op.gg를 검색했다. 그러곤 주환의 아이디를 빠르게 입력했다.
“미친놈. 이럴 줄 알았어. 무음이라 못 받아? 그냥 게임에 미친거지. 게임중독자 새끼. 아 진짜 스트레스 받아.”
아무도 없는 길거리에서 분에 못 이겨 소리를 지르던 복희는 주머니에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집어넣곤 집으로 들어갔다.
자꾸만 복희는 자기의 결심과는 다르게 행동했다. 절대 그에게 연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아무런 연락 없는 핸드폰을 쳐다보다 또 주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정말 지긋지긋해 죽을 것 같아. 이 새끼는 내가 새벽에 살인을 당했다고 해도 눈물도 안 흘릴 새끼야. 나 죽었다고 전화해도 안 받을 새끼다 이건. 아휴 짜증나.”
짜증이 다 풀리지 않았지만 복희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 다음날 아침에도 화가 가득한 채로 핸드폰을 째려봤지만 그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결국 화가 난 복희는 당장 주환의 집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문을 때려 부술 듯 두들겨댔다. 주환은 익숙하다는 듯 ‘또 왔냐’라는 표정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진짜 뭐하는 짓이야?”
“또 뭐가?”
“아니 왜 연락이 안 되냐고.”
“나 잤어.”
“잤어? 언제부터?”
“너 가자마자.”
“거짓말 치지마. 너 게임했잖아.”
“뭐라는 거야? 나 진짜 잤어. 너 그렇게 사람 의심하는 거 병이야.”
롤 전적검색을 해봤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녀는 억지로 삼켰다. 그 사실을 그가 알게 되면 그녀를 소름끼친다고 생각할게 분명했으니까. 대신 다른 질문을 했다.
“최주환. 너는 나 걱정 안돼?”
“걱정 하지. 왜 안해.”
“하는데 왜 새벽에 전화를 안 받냐고.”
“복희야. 잤다니까? 잤다고. 잤는데 전화를 어떻게 받아?”
그가 거짓말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그녀가 말하지 않는 이상 둘의 대화는 진전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복희는 그냥 알겠다며 다음부터는 전화 좀 제대로 받으라고 하고 넘겼다.
그녀는 그의 태도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을 때마다 화가 났고 소리를 질렀고 싸웠다. 몇 년간 반복한 결과 복희는 정말로 익숙해졌다. 익숙을 넘어서서 그냥 주환은 저런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린 듯 했다. 정말로 더 이상 그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으니까.
그녀가 주환에게 전화를 걸지 않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복희는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에 중독 된 거냐는 말을 수도 없이 들을 정도로 그녀는 친구도 만나지 않았다. 틈만 나면 헬스장에 갔다. 몰두할 만한 일이 생기니 자연스레 주환은 그녀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이 뚝 하고 끊겼다. 뛰고 있던 복희의 발걸음도 멈췄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주환의 전화였다.
“아이씨. 노래 듣고 있는데 왜 전화질이야? 걸지 마라.”
“뭐? 미쳤어?”
“뭘 미쳐 이 새끼야. 너 목소리 들을 바에 노래 듣는 게 내 정신 건강에 훨씬 나아. 끊어.”
“와, 김복희 진짜 너무한다.”
“그니까 네가 행동을 똑바로 했어야지. 내가 이렇게 되기까지 네가 참 고생이 많았다. 주환아 꺼져~”
헤어진 사이의 대화가 아니었다. 연인 사이가 맞았지만 복희는 주환에게 그동안 당한 화를 풀고 있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