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생물의 아바타일지도 몰라요
우울한 이유, 뚱뚱한 이유, 건강하지 않은 이유의 답은 미생물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울한 기분을 느낄 때면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은 나 자신을 탓하기도 한다. 뚱뚱한 사람은 게으르다는 편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규칙적인 식습관과 운동부족이라는 이유를 들이밀기 쉽다. 미생물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앞에 언급한 예시보다 나은 방법일 수도 있겠다.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첫째, 미생물에게 책임을 전가하면 기분이 조금은 괜찮으니까. 둘째, 내 탓을 하면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평생 이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미생물을 탓하면 미생물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화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내 몸속의 우주>는 미생물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우리의 몸속에는 얼마나 많은 미생물이 사로 있을까? 성인의 몸속에는 약1.3kg 미생물이 존재한다고 한다. 따라서 미생물총은 인간의 몸속에서 가장 큰 장기에 속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내 몸속에 미생물이 이렇게나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내가 이 책을 읽기로 결정한 이유는 목차 4장 <내가 화나는 건 미생물 때문일까?> 라는 질문 덕분이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화가 많은 사람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내가 참 신기하다. 화를 냈다가 막대한 손해를 입은 경우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유들유들한 사람을 만나면 저렇게 참고 살면 힘들지 않을까하는 동시에 부럽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궁금했다. 내가 화를 잘 내는 건 인성의 문제인지 미생물의 이유가 조금이라도 있을지. 아, 혹시나 나를 인성파탄자로 볼까봐 걱정돼서 말을 덧붙인다. 이유 없이는 화내지 않는다. 가령, 우리집 주차장에 쓰레기를 던졌다거나 교복을 입은 학생이 몰래 담배를 피우고 담뱃갑을 버린다거나 우리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내는 사람은 절대 참을 수 없다. 물론 모두 화낼만한 상황은 맞다. 하지만 내가 화내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 정도로 화를 낼 일이냐며 깜짝 놀란다. 나를 화나게 만든 사람도 당황하며 꼬리를 내리기도 한다. 그 정도로 화를 낼 필욘 없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로 화를 내야 풀린다.
그 부분이 가장 궁금해서 이 책을 읽었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따로 있다.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기와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의 미생물은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 몸속에 존재하는 최초의 미생물은 출산 과정에서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 이 말은 질 속 세균으로 가득한 모체의 산도를 빠져나오는 동안 몸속에 들어온다는 뜻이다.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신생아의 미생물은 산모의 질 속 미생물과 비슷하지만 제왕절개로 태어난 신생아의 미생물은 성인의 피부에 존재하는 미생물과 비슷하다는 연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천식, 비만, 식품 알레르기, 아토피 등 미생물총 유전자나 면역계와 관련된 다양한 질병의 발생률이 높다.
익숙한 부분도 나왔다. 요즘 아이들이 예전보다 면역력이 낮다고 한다. 옛날에는 놀이터에서 흙을 만지면서 놀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노는 아이들을 예전만큼 찾아보기 어렵다. 이 책에서도 이 부분을 언급한다. 인간이 깨끗한 환경에서 살게 되면서 흙속의 미생물들과 더 이상 충분히 접촉하지 않게 됐다. 이러한 현상은 당뇨병, 관절염, 우울증 등 염증과 관련된 질병 발생률을 높인다.
마지막으로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다. 미생물은 우리의 행동과 생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TLR5라는 유전자가 없는 마우스는 살이 찌기 쉽다. TLR5가 없으면 배고픔을 느끼게 하는 미생물이 생기기 때문이다. TLR5가 결여된 쥐의 미생물을 정상인 쥐에게 이식하면 정상인 쥐들도 과식하고 살이 찌게 된다. 반면에 TLR5가 결여된 쥐에게 항생제를 이용해 미생물을 없애버리면 식욕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식욕뿐만 아니라 기분까지도 통제한다. 미생물은 음식을 소화하고 약물을 흡수하고 호르몬을 분비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면역계와 상호작용을 통해 뇌까지 영향을 미친다. 오실리박터라는 세균은 뇌의 신경 활성을 가라앉혀 우울증을 일으키는 신경전달물질 GABA와 작용이 비슷한 천연 신경안정제를 생산한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미생물총 유전자와 인간의 우울증이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일부 학자들은 미생물을 이용해 스트레스나 우울증 예방주사를 개발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엄청나게 재미있진 않았다. 평균 이상 정도라고 하면 맞겠다. 생각보다 도움이 되는 부분도 꽤나 있었다. 프로바이오틱스의 효능이나 대변 이식, 독이 되는 항생제와 약이 되는 항생제 등 저자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언급했다.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화를 참지 못하는 이유는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과는 다르게 어떠한 다른 미생물을 갖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뚱뚱한 사람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TLR5가 부족해서 그럴지 모른다. 우울한 사람은 나태한 게 아니라 우울하게 만드는 미생물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런 나를 탓하기보단 미생물을 탓하자.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