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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희 Nov 29. 2018

백의 그림자

잔잔함은 계속될까?


사실 이 책을 읽고 대체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알지 못했다. 이 사실은 글을 쓰고 있는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때문에 책을 다 읽은 후에 인터넷에 올라온 다른 사람들의 감상문을 봤다. 다른 사람들은 은교와 무재 이외에도 다른 등장인물들을 언급하며 사회 현실과 함께 묶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 둘을 제외한 다른 등장인물들에 대해 설명하고 싶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1. 이 소설에서 사회 현실과 비슷한 부분을 생각할 만큼 시간이 많지 않았다. 

2. 은교와 무재가 함께 나오는 부분만 흥미로웠다. (드라마를 볼 때도 특정 인물이 등장하는 부분만 보기도 한다.)

3. 다른 인물들이 나오는 부분에서 어떠한 느낌도 받지 못했다. 

4. 남녀가 만나는데 ‘이렇게 잔잔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으니까.


따라서 나는 오늘 은교와 무재의 이야기만 하려 한다.


은교 씨는 갈비탕을 좋아하나요.

좋아해요.

나는 냉면을 좋아합니다.

그런가요.

또 무엇을 좋아하나요.

이것저것 좋아하는데요.

어떤 것이요.

그냥 이것저것을.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 씨를요.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그렇게 되나요.

p.39



은교와 무재가 등장한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연인관계가 되어 조용한 만남을 이어간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랑 이야기라고 확언할 수는 없다. 사랑에 관한 책이라고 말하기엔 달달하지도 시끄럽지도 않다. 잔잔하다. 남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기승전결이 분명하다. 처음엔 달달하고 따뜻했던 상황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차가워지기도, 권태로워지기도, 시끄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은교와 무재의 사랑은 다르다. 너무나도 잔잔해서 이 둘이 연인사이가 맞나? 싶기도 하다. 


책에서는 그림자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모습의 그림자가 아니다. 책 속의 그림자는 사람처럼 서 있거나, 사람을 감싸는 형태로 등장한다. 숲속으로 들어가는 그림자를 사람으로 착각한 은교는 그림자를 쫓아간다. 그 모습을 본 무재는 “그림자 같은 건 따라가지 말라”고 말한다. 무재가 그림자의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말렸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은교가 그림자를 더 이상 쫓아가지 않도록 만든 무재가 그녀의 운명이 아닐까.


책 속의 인물이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는 꼭 그림자가 등장한다. 가끔 그림자를 따라갔다가 죽는 사람도 있다. 때문에 그림자를 따라가던 은교를 무재가 말리지 않았다면 은교도 그렇게 됐을 것이다. 죽음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녀의 상황은 부정적으로 흘렀을 것이 뻔하다. 책 속의 그림자는 긍정적인 매개체가 아니라고 읽혔기 때문이다.


갑자기 은교에게 고백을 하는 무재. 그 모습을 보고 당황은 했지만 크게 놀라거나, 무재의 마음에 의구심을 갖지 않는 은교. 처음부터 잔잔했다. 이 잔잔함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덮는 순간까지도 계속된다. 은교와 무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까워진다. 그럴수록 웃음이 많아지고 이야기 거리도 늘어나지만 시끌벅적하지는 않다. 여전히 잔잔하다. 좋지 않았던 가정사를 이야기하면서도 우울하거나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서로를 심하게 위로하지도 가엾게 여기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잔잔하지 않았을까. 둘이 만나면서 큰 이벤트가 있지도 서로가 없으면 죽을 것 같지도 않았지만 둘의 사랑은 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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