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복희 Jul 19. 2019

일하다 만난 꼰대들

아저씨는 딸 없어요?

그동안 엄마 가게에서 나를 화나게 하는 손님 같지도 않은 손님은 참으로 많았다. 


1. 반말을 찍찍하는 경우 (상냥한 반말은 예외)


2. 자기가 말 한 물건을 찾아서 갖다 주면 이게 아니라며 화내는 경우


3. 카드를 검지와 중지에 끼워서 주는 경우


4. 돈을 던지는 경우 (동전 던질 때면 멱살 잡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5. 욕하는 경우


처음에는 화가 많이 났지만 대처하지 못했다.

1. 저 인간이 미쳤나 생각했지만 나는 존댓말로 대답했다.


2. 이거라고 하셨잖아요?라고 하며 다시 물건을 찾아다 줬다.


3. 너무 기분이 나빠 그 카드를 던지고 싶었으나 상상으로 마치곤 결제한 뒤 소심하게 한 손으로 건네줬다.


4. 돈을 얼굴에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고 거스름돈을 내어줬다.


5. 욕은 못 들은 척하고 참았다. 그러나 참은 나를 우습게 알았는지 더 심하게 화를 내길래 그 날은 그 손님이 있는 상태로 문을 잠갔다. 나가지 못하게.


그 날은, 근로자의 날이었으나 우리 가게는 문을 열었다. 할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셔서 엄마는 시골로 내려간 상태였다. 그곳엔 나와 남자 친구 둘만 있었다.


그 날따라 아침부터 생리통이 심했다. 배가 찢어지는 것 마냥 아팠다. 10분만 기다리면 점심시간이라는 생각에 조금만 참아야지 생각했다. 그러던 중 어떤 손님이 들어왔다.


그 손님은 우리 가게에서 물건을 사자마자 뜯었는데 고장이 났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럼 산지 얼마 안 됐겠구나'라는 추측을 했으나 추측과는 다르게 그 손님은 '저번 주'에 샀다고 했다. 왜 저번 주에 산 걸 이제야 뜯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정확한 날짜를 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모른다며 결제했던 카드만 보여줬다. 그렇게는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카드로 결제한 거면 문자에 카드 기록이 있을 텐데 한 번 봐줄 수 없냐고 물어봤다.


그의 대답은 참으로 신박했다. '나는 그런 거 오면 바로 삭제해요.' 그의 어이없는 대답에서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사자마자 고장 난 게 아닌 것 같다는 의심이 들었다. 지지 않고 그러면 카드 어플에서 조회해보라고 답했다.


내 말을 들은 그는 뜻대로 되지 않자 짜증을 냈다. 그는 내게 왜 그쪽이 해야 할 일을 나한테 떠넘기냐며 언성을 높였다. 같이 화가 난 나는 내가 하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며, 우리 가게에서 하루에 물건 한 두 개 파는 것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찾겠냐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자기한테 시키는 거냐는 말 뒤에 씨발을 덧붙였다.


'씨발? 미친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못 들은 척했다.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배가 너무 아팠고, 손님이 들어오기 전에 옆에 있던 남자 친구는 배가 고프다고 했으니까. 싸우지 않고 넘어가려 했다. 그래서 나는 화가 난 말투로 나중에 엄마가 오면 해결하라고 하겠다며 연락처와 이름을 받아놨다. 저 인간이 나가면 옆에 있는 남자 친구랑 저 사람 험담이나 하면서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손님은 연락처와 이름을 남기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나가려고 문을 열던 그는 나를 쳐다보며 "빨리 처리해요."라며 굉장한 명령조로 화를 냈다. 인간이 여기서 또 한 번 입을 열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 언제 안 해준다고 했냐며 오늘 근로자의 날이라 그 판매처 본사도 쉬는 날이라고 짜증을 내며 대꾸했다. 내 말을 들은 손님은 나가지 않고 또 무슨 일을 이런 식으로 하냐며 약을 올렸다. 결국 폭발했다.


앉아있던 나는 벌떡 일어나 "저기 아저씨!!!!!! 아까 나한테 욕했죠? 얻다 대고 욕지거리야. 적당히 해야 될 거 아니야? 내가 만만해요?"라며 악을 썼다. 그런 모습을 처음 본 남자 친구도 덩달아 놀라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이성의 끈을 놓친 지 오래였다. '너 오늘 잘 걸렸다'는 생각으로 나에게 사과를 하라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밖에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까지 가던 길을 멈추고 가게 안을 쳐다봤다.


그 손님은 언제 자기가 욕을 했냐며 되받아쳤다. 그 말에 더 화가 난 나는 내 앞에 있던 모니터에 부숴버릴 듯이 계산기를 던져버렸다. 그러곤 그 손님이 고장 났다고 맡긴 물건까지 집어던져 박살을 냈다. 그러고서도 이성을 되찾지 못한 나는 나한테 사과하라며 체육대회에서 우리 반을 응원할 때보다 더 큰소리로 악을 악을 질렀다. 그래도 그 사람은 내게 사과하지 않으며 욕한 적이 없다고 억울해했다.


옆에 있던 남자 친구에게 너 들었어 못 들었어? 하니 남자 친구는 들었다고 대답했다. 그래도 욕한 적 없다며 사과를 하지 않는 손님을 보고 있으니 나는 더욱 미쳤다.


"말로 해선 안 되겠네. 이 아저씨?"라며 나는 엄청난 속도로 카운터에서 벗어나 그 아저씨에게 돌진했다. 놀란 남자 친구는 내 팔을 잡아 제지하려 했으나 이미 나는 그 아저씨 앞에 있는 상태였다.


사과하라며 계속 악을 쓰는데도 그 아저씨는 절대 욕한 적이 없다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미쳐버릴 대로 미친 나는 그 사람을 밀어 벽으로 몰아버린 후 달력을 쳐다보라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손님은 달력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손님의 어깨를 휘어잡고 달력으로 몸을 돌려 "보라고!!" 소리를 지르며 오늘은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라 본사가 안 여는데 내가 어떻게 해결을 해주냐며 죽일 듯이 째려봤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꾸미지도 않고 옷도 막 입고 가게에 나와 앉아있으니 우스워 보이는 건가? 아니면 내가 어린 여자라서 무시하는 건가? 처음에 씨발이라는 소리를 듣고 참아서 더 만만해 보였던 건가? 생각할수록 화는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었다.


그 아저씨는 끝까지 욕한 적이 없다며 나가려 했다. 그럼 대체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거냐며 따져 물었다. 그러곤 그 아저씨 얼굴 가까이에 다가가 성난 호랑이처럼 화를 냈다. (나중에 CCTV로 상황을 돌려봤는데 정말 호랑이 같았다.)


남자 친구는 나를 그 손님에게서 떼어내려 내 팔을 붙잡았다. 잡지 말라고 화를 내며 남자 친구의 손을 뿌리쳤지만 힘이 달려 남자 친구의 등 뒤로 강제 이동하게 되었다. 분에 못 이긴 나는 의자를 집어던지고 엄마가 구워 놓은 죄 없는 계란을 다 집어던졌다. 계란은 테이블 아래로 속절없이 떨어졌다.


남자 친구를 사이에 두고 그 아저씨를 째려보다가 나는 가게 문을 잠그기 시작했다. 앞문 두 개를 잠근 후 옆문 한 개를 잠갔다. 잠그자마자 빈틈을 타 그 아저씨에게 여기서 못 나간다며 달려들었다. 당당했던 그 손님은 점점 표정이 변해갔다. 놀랐는지 처음에 비해선 꽤나 고분고분했다.


어디서 욕 짓거리냐며 내가 남자고 등치가 컸어도 욕을 했을 것이냐고 물어봤으나 맘에 드는 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 있지도 않은 오빠를 거들먹거리며 내가 2층에 잠깐 올라간 오빠를 데려올 건데 나한테 한 것처럼 오빠한테도 욕을 해보라며 아마 한 대 얻어맞을 것이라고 했더니 그 아저씨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내가 여자고 어려 보여서 욕했냐고 물어보니 그 아저씨는 정말 골 때리는 대답을 했다. 내가 어린 지 안 어린 지 어떻게 아냐는 대답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또 죽일 듯이 그럼 내가 할머니 같냐고 아저씨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냐고 딱 봐도 그쪽보다 어린데 이상한 대답 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번에도 그는 묵언 수행 중이었다.


속이 터진 나는 아저씨 딸이 있냐고 물어봤으나 또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더 큰 목소리로 아저씨 딸 있냐며 소리를 지르니 민망해하며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며 아저씨 딸이 모르는 아저씨한테 씨발이라는 소리 듣고 그러면 기분이 좋겠냐 물었더니 그제야 정말 미안한 얼굴로 사과를 했다.


결국 악을 쓰며 사과를 받아내기까지 30분이 걸렸다. 그 아저씨는 미안하다는 말을 끝으로 내가 집어던져 눕혀있는 의자를 제대로 세워놓곤 다 터진 계란을 줍기 시작했다.


분명 방금까지는 누구 하나 죽어보자는 마음이었는데 제대로 사과를 하며 계란을 줍은 모습을 보니 내가 너무 심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나도 또라이다.


계란을 줍는 그 아저씨에게 내가 주울 거니 내버려두고 나도 화내고 소리 지른 건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도 어디 가서 씨발이라는 소리는 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날의 일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2주 뒤 그 손님은 맡겼던 고장 난 물건을 다시 찾으러 왔다. 그때와는 다르게 굉장히 상냥했다. 들어오면서도 나가면서도 꾸벅 인사를 했다. 그 손님이 나가고 나니 상황을 모르는 엄마는 저 사람 저거 사 갈 때는 되게 진상 부리더니 오늘은 왜 저럴까라며 의아해했다.


이후 그 손님이 한 번 더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조용하게 물건만 사고 나갔다. 나는 이런 경우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이 가게에서 씨발은 뭐 거의 감탄사 수준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Prologue 내가 만난 꼰대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