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란 단어를 내뱉을 때는 새로움, 용기, 결심, 열정 등과 같은 긍정적인 단어가 함께 떠오른다.
시작이란 새로운 도전을 의미하고, 준비 단계에서 한 발 내딛기도 전에 벌써 모든 걸 이룬 양, 뿌듯한 마음에 가슴이 포근해지고, 희망에 벅차기도 하다.
태어나면서부터 인생은 새로움의 연속이다. 새로운 도전이 언제나 펼쳐지고, 도전은 나를 성장시켜주며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어른이 되어 버린다. 5살 우리 아이는, 시작이란 단어를 시작으로 결심을 하거나 마음을 다스릴 필요도 없이, 혹은 시작이란 단어가 주는 저편의 불안감을 느낄 새도 없이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인다. 공차기도 배우고, 존댓말도 배우고, 인사하는 법도 배우고 모든 걸 그냥 한다. 자연스럽게 배우고, 되풀이하고, 터득하고 그렇게 앞으로 쭉쭉 성장해간다.
그런데 40살이 된 나는, 시작이란 단어가 생소해졌다. 뭔가를 결심하고 시도해보려는 도전정신은 20대 중반 취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10년 이상 하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며 반복되는 일상생활 속에서 필수가 아닌 선택적인 옵션이 되어 버린 듯하다. 녹초가 되는 주중에는 잠이 보약이고, 일주일에 두 번 주어지는 자유의 황금주말엔 어떻게 서든 나름 가족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쓴다. 이러다 보면, 뭐든 나의 새로운 시작에 대한 계획은 머리 속 잠깐 멈칫 했다가 스쳐 지나가는 정도, 아침마다 회사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도 매일의 도전이라 위로하며. 그리고, 나의 새로운 시작보다는 아이들의 새로운 시작이 더 중요하다고들 하다.
태어나면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내 앞가림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나는 많은 선택을 했고, 그에 따른 시작을 했고, 노력했고, 결과를 얻고 배우며 성장해 왔다. 어렸을 때의 시작과 도전은 당연한 것이었다. 처음 자전거 타고 앙증맞은 손으로 피아노 치던 시절, 처음으로 사회 활동을 했던 유치원을 시작으로 대학교 졸업까지. 그리고 취업을 해서 돈을 번다. 지속되는 배움의 시작이 자의 든 타의 든, 재미 있으면 재미 있게, 재미없으면 재미없게, 그냥 그렇게 했다. 해야만 하는 줄 알았고, 결과에 대한 별다른 의심없이 그렇게 성인이 되었다.
어렸을 때는 희망에 차 있었다. 어렸을 때 하는 선택이 내 인생에, 내 미래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 채,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선택했고, 시작했고, 노력했고, 여기까지 왔다. 20대 사회에 첫 발을 내딛으며 회사라는 깨지지 않는 큰 바위를 앞에 두고, 이대로 버텨야 하나,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하나 수없이 고민했고 자포 자기했고, 그러면서 버텼다.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내 회사생활 끝자락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뭔가의 희망이 있었다는 의미다. 인생 제 2의 시작이라고 하는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며 부모로부터 독립한 삶은 소꿉장난 같기도 했지만, 돈을 모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결혼이란 제도가 주는 모호한 책임감에 후회와 힘듦도 있었지만, 어디서든 어떻거든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내 삶에서 희망이란 빛이 희미져감을, 현실이란 그림자가 드리워짐을 감지했다. 더 이상 나를 향한 새로운 시작, 도전이란 문은 자동으로 열리지 않고, 열려고 끙끙 댈 찰나면, 세상은 내게 교묘하게 훈계한다, 너의 인생의 길은 이미 짜여 있다고. 새로운 시작 이란 숙제는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고. 새로운 운동도 새로운 언어도 쉽게 포기하고, 중간에 포기해도 아무도 모라 하는 이 없어졌다. 새로운 도전은 점점 어려워지고, 기대하는 결과를 도출해 내기까지 쏟아야 하는 노력은 버거워진다. 결과에 낙담하거나 자책할 필요도 없다. 힘들게 살 필요가 없다고. 이제부터는 아이들 머리 위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희망의 빛만 쫓아가면 된다고. 그것이 곧 나의 새로운 희망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의 새로운 희망이 되어버린 아이들은 내가 놓아버린 내 머리 위 희망의 끈을 찾아서 다시 앞으로 나가라며 용기를 준다. 아이들은 참 신기한 존재이다. 함께 있으면 행복하고, 보고만 있어도 배부르고 미소를 자아낸다. 그들의 무한한 가능성과 싱그러운 미래는 희망차고, 밝음을 선사한다. 엄마, 나도 이렇게 미래를 향해 열심히 달려갈 테니, 엄마도 엄마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면서 든든한 모습을 보여주세요. 이렇게 내게 항상 속삭이는 듯하다.
인생이 뭔 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쳇바퀴처럼 구르다가 뒤돌아보니, 내가 여기 서 있다. 나는 나이가 들고, 더 이상 어리지 않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이미 다 했고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고들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새로운 길 위로만 갈라 치면, 도전이란 결심 속 희망이 보석처럼 빛나고, 한걸음 내딛는 노력안에는 젊음의 샘이 있는지, 다시 사회 초년생이 된 기분이다. 다시 젊어 지니 얼마나 좋아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는 옛말처럼. 세월의 흔적 속에서도 빛나는 희망의 눈빛은 참 매력적이다. 어린 아이 못지않는 생명력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고작 마흔 밖에 되지 않았다.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나란 존재와 함께 깊이 사색을 시작할 수 있는 매력적인 나이가 되었다. 오십이 되어도 육십이 되어도 지금보다 더 찬란하게 빛 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에 찬 이유는, 한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지만, 좀 더 정교하게, 내손으로 직접 그리며 살아갈 앞으로의 내 인생이 내 미래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나는 마흔이지만, 여전히 새 출발선 앞에 서 있다. 기억에 남는 도전기는 아직 없다. 하지만 이제부터 써 갈 것이다. 40 살부터 제2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