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인지,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이 어디인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무엇을 원하는지, 머리 속 오고가는 생각들과 감정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런 질문들에 답하며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삶이 무기력해지고 불행하다 느껴졌던 과거의 시간 속 난 이런 질문들에 쉽게 답을 찾지 못해 정처없이 헤매고 다녔던 것 같다. 답을 찾으려면 끈질긴 집중력이 필요한데 중간에 포기하기 쉽다.
아마도 저 질문들 중 몇 개라도 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별 생각 없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 비해 좀 더 높은 위치에 있거나, 좀 더 자존감이 높거나, 아님 좀 더 행복하거나 등등 뭔가 최소 하나 정도는 더 나은 면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난 회사원으로 내 주위는 대충 모두 회사원들이다.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직장인들을 나는 존중하고, 존경한다. 특히 20년 이상의 경력으로 업계에서 자리를 잡은 사람들. 괴팍한 성격에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고 아랫사람 존중할 줄 모르는. 술자리에서는 남들이야 어떻든 본인 이야기만 주구장창 해대는. 윗자리에 있으며 욕 하나 안 먹는 상사 없다지만 뭐 어쨌든, 손가락질 받을 뭐가 하나 혹은 둘, 셋 있더라도 어쨌든 그 위치까지 그 자리에 서 있는 자체로 난 그를 혹은 그녀를 존경하고 존중한다. 멋지진 않아도 그들의 노력을 높이 산다. 아무리 별로인 사람들도 명석함, 집중력, 통찰력, 승부욕, 성실함, 순발력 그 중 뭐 하나는 배울게 있다.
나는 나의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막막했다. 다른 일을 하면 훨씬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스스로 짓누르며 ‘현실’, ‘현실적’ 이란 단어 앞에 허우적거렸다. ‘돈’ 과 남들에게 지기 싫은 ‘경쟁심’과 ‘자존심’으로 버텨왔다. 시간보다 돈을 선택했는데, 시간의 중요성을 잘 몰랐었다. 그 시절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경력이 많아지면 연봉은 높아진다. 그러다 보면 돈 때문에 회사를 떠날 수 없어진다. 바로 ‘현실’ 이라 표현된다. 매월, 퇴사하기에 미련이 남을 만큼 ‘월급’을 받는데, ‘월급’ 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한다. 사람들의 잠재력을 끌어 올리기도 하지만, 한편 창창한 나의 미래의 잠재력을 과소평가 시키는 속임수를 발휘한다, 내가 있을 곳은 여기밖에 없다 하며.
최근, ‘마커스 버킹엄’의 ‘나이 들수록 멋지게 사는 여자’ 란 책을 읽었다. 책 제목을 잘못 지었다. 이 책은 내가 깨달은 많은 것들이 나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가 아님을 확인해줬다.
『행복한 삶이 반드시 부유한 삶, 일 중심적인 삶, 전업주부의 삶, 혹은 결혼한 삶을 뜻하지는 않음을 즉시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직업이나 분야, 소득 수준, 혹은 노동시간에 의해 규정될 수 없다. 행복한 삶이란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무엇을 느끼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것으로도 규정될 수 없다.
.
성공했다는 느낌, 자신이 유능하고 능력 있다고 느끼는 것. 자신이 잘하는 활동이 아니라, 자신의 강점을 표출할 기회를 주는 활동들. 우리 각자는 독특한 강점을 타고났고 그러한 강점들은 표출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행복한 삶이란 그러한 감정들을 정기적으로 배출하는 통로와 그것을 확증하는 수단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통로와 수단이 없다면 자신이 진정 누구이고 무엇을 잘하는지에 대한 감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
불행히도 꿈이 우리를 충족시킬지 우리는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꿈에만 맡겨서는 안된다. 돈이 가장 간단한 예다. 우리 중 다수는 더 많은 돈을 벌려고 안달하면서 수입 증가에 기반을 두고 인생의 많은 결정들을 내린다. 그러나 핵심은 돈과 행복 사이의 관계이다. 빈곤하게 살면 빈곤선 이상의 삶을 사는 사람들보다는 덜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빈곤선을 벗어나면 돈을 더 많이 번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모든 인간이 비극의 슬픔에 점차 무감각해지는 것처럼 꿈이 이루어진 기쁨에 대해서도 점점 무뎌 지기 마련이다.
.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은 바로 당신 안에서, 매일 당신에게 외치고 있다. 그것은 삶의 특정한 순간들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에서 찾을 수 있다.
.
충만한 순간들을 진지하게 생각하여 인생의 결정들을 이끌어 주는 지표와 인생 여정에 활력을 더해 주는 원천으로 활용해야 한다.
.
충만한 순간들에 귀 기울이는 것을 중단하면 감정적인 신호들은 점점 약해져서 마침내 고리가 끊어지고 신호들은 사멸한다. 무시와 태만은 충만한 삶의 적이다.
.
자신의 감정에 귀를 기울이라. 당신의 감정은 당신이 삶이 보내는 신호다. 이 신호들을 그저 보내기만 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의 목표, 계획, 주장, 의향들을 확인한 뒤 받기 시작해라. 그 신호들은 당신을 올바른 선택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반면 그런 감정들에 둔감하면 형편없는 선택을 할 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함께 신호들이 약화되면서 본영의 자기 자신과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
나 자신을 믿으라. 어떤 순간이 당신을 충만하게 해 주고, 어떤 순간이 아닌지는 그 누구보다 당신 자신이 더 잘 안다.
.
과감해지라.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낸 사실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요구하는 행동들을 끝까지 실천하라.
.
인생에서 무엇을 하기로 결정하든 간에 자신에게 적합하다고 짐작되는 것을 기반으로 결정을 내리지 말라. 감정이 나 자신에게 말하는 바를 알고 싶고, 질문을 던지고 싶고, 귀 기울여 듣고 싶을 정도로 당신 자신을 소중히 생각한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결정을 내리라. 그래야만 당신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충만한 순간들을 찾을 수 있다. 그래야만 당신이 타고난 역할을 발견할 수 있다.
.
늘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어라. 당신을 인도해 줄 세세한 순간들에 집중하라』
크면서 우리는 많이 듣는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라고. 사소한 것에 신경 쓰는 사람들은 소심하고 쫀쫀하고 치사하고 그릇이 작다는 인식이 있어서 항상 목숨 걸지 않는 척 행동한다.
그리고 우리는 평생 우리의 감정보다, 사회가 제시하는, 그리고 문화와 규율에 따른 의무, 당연히 배워야 하고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왜” 라는 질문을 하지 않고(혹은 못하고), 나의 감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가정을 그대로 사실로 흡수하며, 그렇게 교육받고 자랐고 사회생활을 한다.
그러기에 더욱 더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인생을 사는 것 아닐까.
직장은, ‘무엇을 하며 사느냐’는 한 인간의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과, 동료들과 보내기에 그것은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형성한다. 나는 미래에, 10년 후 어떤 모습의 내가 되고 싶은가.
열심히 해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며 진로와 삶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 삶도 살아보고 싶고,
걷지 못할 때까지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인생의 여러 사람을 만나며 글을 쓰는 용기 있는 작가의 삶도 살아보고 싶고,
사업을 하며 내 것을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하다.
어떤 길을 선택하실 건가요.
가끔,
노트북을 들고, 달리는 버스안에서 글을 쓰면 왠지 내가 예술가가 된 느낌이다. 예술가가 된 느낌으로 세상을 사는 것도 참 매력적이다. 좋다.
그런데, 감성적으로 살기에는 일 같은 일도 좋다. 분석적으로 사고하고, 원인과 결과를 찾아내는 방식, 흩어져 있는 정보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정리된 자료를 만들고 발표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이익을 창출하는 행위 자체도 매력적이다.
어렵다.
또 유혹에 흔들릴 것 같기도 하다.
..
아이들 유치원 보내고,
햇살이 너무 좋아서 아파트 공원 벤치에 나와 글을 쓴다.
즐거운 행위를 꼭 ‘일’로 할 필요가 있나. 생각도 든다.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