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gabond Apr 17. 2023

인간의 모습, 삶의 모습


학교 과제로 읽어야 하는 책 한권이 있는데,

읽어도 읽어도 무슨 말인지를 도통 모르겠다.


가장 큰 이유라면야, 

내가 이 책 수준에 이르지 못해 이해 못할 가능성, 즉 나의 무식함이 넘버 원 원인이겠다만,

차라리 원서로라도 읽음, 오역이나 비문으로 인한 추가적인 난관은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철학자들이 꼭 국어를 잘 하는 건 아니니 그럴 수도 있겠다만

아무튼 읽어도 읽어도 모르겠는, 한 줄 한 줄 해석이 안되는 책을 붙잡고 있으니,

올라오는 격한 분노와 자책 아래

철학 초보자는 참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략 30페이지 정도를 읽고, Summary 를 하는게 과제인데,

어제 오늘 뭘 했는지 도통 모르겠다.

시간 날때마다 책상에 앉아 읽고 읽고 읽었음에도 머리에 남는게 없으니.

그 시간에 차라리 그냥 놀았더라면 이렇게 기분나쁜 불안과 허무감에 휩싸이지 않을텐데 말이다.


책도 돌같이 느껴지고, 내 머리도 돌같이 느껴지고 ㅎㅎ


암튼 지금에서야 이른 결론은,

괜히 머리에도 들어오지 않는 어려운 책을 가지고 끙끙거리는건 100% 시간낭비,

그러므로 과제는 대충하기로 했다.


차라리 끙끙거릴 시간에,

지금 내 수준에 맞는 더 적당한 책들을 읽고 공부를 하는게 똑똑한 태도겠거니.

나의 성장에 있어서 훨씬 효율적일 것 같겠다는 생각이 드네.



아무튼 이렇게 난

오랫만에 공부를 하며 이와같이, 지난 주부터 약간 불안한 상태에 있다.

다른 과목들은 모두들 괜찮은데, 앞서 언급한, 저 이해 잘 안되는 책을 가지고 공부해야 하는 과목.

다음달 쯤에는 책 내용을 바탕으로 발표도 해야 하는데,

책 자체 내용이 어려운 것 같진 않은데, 뭔가 문 안으로 들어가질 못하고 문 밖에서 꽉 막힌 느낌이라

답답함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 상태.


그러다,

오늘 오후, 가까운 가족의 가족 중 누군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건강한 체질이셨는데,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갔더니, 그쪽으로 암이 전이되어 아픈거라며

그렇게 암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이래, 항암 치료를 하며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들었다.


안면 없이 가끔 소식만 전해 들었던 분의 이야기지만, 그 분이 내 가족의 가족분이시기에 마음이 아팠고,

그럼에도 그 아픈 분의 고통을 통감하기 보다는, 그로인한 내 가족의 힘듦을 보다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걸 알아차렸다.


한 인간의 생사가 왔다 갔다 거리는데, 그 심각함을 마음에 담기 보단,

내 가족의 힘듦을 우선시하며 위로하려는 나의 태도가 순간 참으로 영악하게 느껴졌고,


솔직히 그런 와중에도

여전히 학교, 과제의 불안감에 쩔쩔매며 그것에 더 크게 휩싸여 있는 나를 다시 바라보며

참으로 이기적인 나의 모습이구나.

이렇게 사는 것이 우리 평범한 인간의 극도로 평범한 삶인 것인건지

우리의 삶은 그저 이렇게 이런 모습으로 죽을 때까지 흘러갈 뿐이다. 

몇 주일 전 읽었던 책의 문구가 생각났다.

영국의 철하자 흄이, 인간 본성에 대해 한 말 중 하나로,


"나의 손가락의 상처보다 전 세계의 파멸을 더 선호하는 것은 이성에 위배되지 않는다"..


현대를 살아가는 나로서, 그의 말을 부정 할 수 없는 것이,


전 세계 어디에서 전쟁이 있어나든, 지진이 일어나든, 기아로 고통 받던, 수많은 사람들이 죽든 말든,

나와 연결고리가 직접적으로 있지 않는 이상, 그것으로 인한 우리의 슬픔과 고통은 잠시 떠돌다가 잊혀질 뿐, 우리는 곧 별일 없다는 듯이 다시 밥을 먹고, 수다를 떠며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간다.


인간의 생명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임에도 누구나 죽으며,

그 죽음이 나와 직접 맞닿아 있지 않으면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며 헤아리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 삶의 영역은 한계지어져 있고, 또 그렇기에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거겠다만,


이런 나를 바라보며, 이런 세상을 바라보게 될 때 마다

인간의 본성은 무엇이며, 삶이란 무엇이고, 또 죽음이란 무엇인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고민하며 애쓰며 살아가는 것일까.

나의 것에 매몰되지 않고 큰 것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들.



어찌보면

우리는 우리 머릿속에서 나의 생각과, 내 자신과 평생을 싸우며 살아가고 있는 건 뿐 아닐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들을, 나에게만 중요한 것들을 우리 머릿속으로 기어코 끌고와

그것들과 지지고 볶고 싸우며

그 싸움을 현실과의 싸움이라고 착각하고 정신승리 하면서,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이고, 자책감과 괴로움에 힘겨워하며 

그럼에도 나를 위해, 나의 가족들을 위한 것이라는 동기부여에 큰 힘을 얻으며 앞으로 전진.


인간 본성 상, 이웃보다는 조카에게, 조카보다는 피붙이에 잘해주고픈 맘은 당연하겠다만은

나의 것, 나의 돈, 나의 건강, 나의 가족... 즉, '나'를 중심으로 내 것에 더 큰 가치를 두며 살아가는 삶.

이것이 당연한 것일까? 

내가 사는 세상을 위해 난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 걸까. 



당연시 여겼던 예전의 틀에서 벗어나 생각이 시작된다.

이렇게 조금씩 커가는 중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