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뭔지 좀 고민스러운 요즘이었다.
몇몇 주위 엄마들은 한글에, 영어에, 수학에, 뭔가를 이것저것 가르치기 시작하는 것 같다. 5, 6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의 판단 아래 ‘성공’ 혹은 미래의 ‘나은 삶’ 이라는 목표를 등에 달고, 의심없이, 부모님의 손짓아래 그것이 정답인 양 자연스레 흡수하며 경쟁의 세계로 떠밀려 들어가고 있다.
인생은 어차피 원치 않아도 해야 할 일들이 가득인데, 그리고 유치원에서도 이미 ‘규칙’ 과 ’의무’의 역할들을 몸소 체험하며 사회적 활동과 지식을 교육받고 있을 터인데, 굳이 또 그 이외의 뭔가를 서둘러 빨리 노출시켜줘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
그런데 요즘 뭔가를 배우고 싶어하는, 특히 영어 알파벳에 큰 관심을 보이는 둘째 아이를 보며, 뭐라고 얼른 시작해줘야 할 것 같은 압박감과 불안감이 느껴졌다.
요즘은 영어유치원이다, 영어독서학원이다, 원어민 방문교사다, 아니 간난쟁이 때부터 영어를 노출시켜주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난 뭐, 영어를 6살에 배우나 좀 더 늦은 10살 넘어 배우나 그게 얼마나 큰 차이가 날까 했다. 어릴 때 배우면 스트레스 없이 자연스레 흡수하는 장점이 있겠지만 좀 더 커서 배우면 좀 더 효과적으로 이해력을 높이며 빠르게 배울 수 있는 이점이 있지 않나 싶었다. 그리고 영어의 습득보다 중요하건 아이의 사고능력이라 생각했다. 한글도 아직 제대로 습득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어를 배우기 보단 한글 책을 많이 읽으며 어휘력을 늘려주며 아이가 폭넓게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더 중요하다 봤다. 갈수록 영어교육 대상 시작 연령이 앞당겨지고 있긴 하지만, 영어를 10살에 처음 배운다 쳐도 10살은 여전히 어린 나이 아닌가.
그럼에도 갈수록 더 심화되는 경쟁사회 속 깊어지는 부모들의 불안감과 욕심, 그리고 그것들을 이용해 이익을 착취하려는 상업성 안에서 교육의 정답은 이미 한쪽 방향으로 정해져 있는 게 현실이다. 사실 나도 뭐가 더 효율적이고 맞는 방향인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문제는, 이 방식이 우리 아이에게 맞는 방식인지, 아이의 마음은 어떤지, 아이에게 현재 무엇이 중요한지 등등 여러 생각, 고민 없이 무턱대고 시키고 본다는데 있지 않나 싶다. 남들이 다 하는 방식을 부정하기엔, 나의 지식이 짧아 무척이나 불안하고, 블라~블라~ 영어로 대화하는 아이들은 잘나고 똑똑하고 멋지고 있어 보인다. 괜히 내가 잘못해서 우리 아이들 기죽이나 싶어 서둘러 시작하고 본다. 교육비는 또 얼마나 비싼가.
어쨌든, 아직은 괜찮다며 한글 책이나 열심히 읽어줘야지 하며, 아이들 영어 공부에 사실 좀 태평했는데, 이런 태평했던 엄마 마음과는 달리, 영어에 흥미를 보이는 아이의 의욕을 느끼곤, 그래도 아이의 마음에 맞춰 뭔가는 해줘야 싶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알아보기 위해 검색을 시작했는데, 얼마나 많은 정보가 있는지, 이것도 참 정성이 필요한 일이다.
암튼 이것저것 알아보던 중, 게임처럼 재미있게 영어에 노출될 수 있는 영어 앱을 발견, 설치해서 보여줬더니 쌍둥이 둘이 번갈아 가며 엄청 재미있어 했다. 깔깔거리며 흥미를 보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좀 고민스럽기도 했다. 핸드폰으로 게임처럼 하는 공부가 흥미를 돋우기에는 좋겠지만 단순히 게임, 놀이로만 끝나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좋아하니 한번 정기구독이나 해볼까. 핸드폰 화면은 너무 작으니 아이들 교육용으로 화면이 좀 더 큰 태블릿을 사줘야겠구나.
그렇게 어젯밤 아이들은 신나게 새로운 놀이를 접하다가 잠이 들었고,
난 정말 우연히도 책꽂이에 꽂혀왔던 이지성 작가의 에이트를 읽기 시작했다. 내가 인지하진 못했지만, 무의식적으로 아이들 교육의 답을 좀 찾고 싶었던 걸까. 읽다 보니 다가올 미래의 예측 속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 지에 대한 작가의 답이 들어있었다.
아직 반 밖에 읽지 못했지만,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있는 2040년의 세상에서는 곧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며,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공감능력과 상상력, 창조능력이란다. 그것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 IT 사용을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것. 그것을 통해 IT, 인공지능에 중독되지 않고, 구속당하지 않는 통제력을 키우며 이용자가 아닌 창조자, 관리자의 입장에 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사랑하는 쌍둥이 아이들의 엄마로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가치 있는 요점이었다.
그러면서 문득, 아이들 교육과는 별개로,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과거에 비해 충만해진 지금의 내 마음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단순히 회사를 다니지 않는 지금의 환경에 만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회사를 다니며 바쁜 사회생활 속 충분히 사색하거나 답을 찾지 못해 어지러워 잿빛으로 변해버린 마음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많은 질문들을 휴직기간 동안 내게 던졌었는데, 그것들의 정답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하는 과정과 훈련 아래 나의 마음은 안정되고 행복해졌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로 인한 영향 중 가장 신기한 것은 남들과의 비교에 시큰둥하진 내 모습이다. 예전에는 누가 성공하고, 승진하고, 돈을 많이 벌고, 뭔가 좋은 일이 생기면, 사실 배가 아팠다. 나를 자책하고, 현실과 남을 탓하며, 어떻게든 단점과 좋지 않은 이유를 찾으며, 맘 속에서 뾰족하게 반응했는데, 지금은 남들의 기쁨과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왜냐면, 나는 내 인생의 행로가 따로 있으며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있고, 그것을 향해 내 페이스대로 한 발짝 씩 옮기면 되니까. 내 길에 대한 믿음이 내 안에 쌓이면서 부터 나는 좀 더 자유로워지고 여유가 생겼다.
모든 부모는 불완전한 인간이지만, 그런 부모의 경험과 생각과 가치관을 기반으로 아이들은 교육받고 양육되어 많은 부분을 그대로 흡수한다. 사실, 부모들 역시 선택의 여지는 없다. 무엇이 바르고 옳은 방식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니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럼에도 기본 목표는 동일할 것이다. 바로 아이들의 행복한 삶. 우리 부모의 삶보다 밝은 미래.
나 역시, 나의 경험아래 배운 레슨, 나의 가치관으로 아이들을 양육한다. 그리고 육아휴직 동안 변화된 나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에 변화가 생겼다. 단순히 돈, 좋은 교육 환경 이런 것들이 아니라, 내가 40살이 되서야 깨달은 것들을 아이들이 미리미리 자연스레 경험할 수 있도록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아이들이 본인의 감정, 마음을 무시하지 않고 대화하고 이해하며 스스로를 알아 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가장 중요하게는 나와, 그리고 친구들 및 가족들과, 세상 속 나의 소중한 가치를 이해하며, 상상하고 꿈꾸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나는 진심으로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보다는 진정 행복했으면 좋겠다.
앞서 이지성이 말한 인공지능에 굴복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공감능력, 상상력, 창조력을 키우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도 바로 나란 존재에 대한 사색, 사색할 수 있는 능력 아닐까.
그럼에도 앞서 고민했던 우리 쌍둥이를 위한 영어공부 방법이 뭐가 좋을 지는, 좀 더 찾아볼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at the same time, 무엇을 어떻게 시켜야 할지 너무 어렵게 고민할 필요가 사실은 없지 않나 싶기도 하다. 효과적이다 말하는 많은 방식들이 있겠지만, 6살 꼬마로부터 얼마나 큰 효율을 기대하길래 구글링을 열심히 해가며 베스트 방법을 찾으려 드나.
요즘들어, 지금의 내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돈’으로 대체할 수 있는 무언 가가 아닌, 부모의 시간, 부모의 참을성과 인내력, 긍정적인 태도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아이들의 육아는 너무나도 힘들고 가끔 도망치고 싶을 만큼, 울고 싶을 만큼 힘들지만, 그 안에서 나 역시 깨닫고 배우고 행복을 느끼며 성장할 수 있는 게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잘 바르게 성장하고 있다.
매일 아침 유치원 등원 시 전쟁이 벌어지곤 하는데, 솔직히 내가 힘들다는 이유를 핑계로, 차를 타고 휙~ 아이들을 유치원에 떨궈주고 싶은 마음이 항상 굴뚝 같다. 이와 반대로 아이들은 항상 걷는 것을 고집한다. 차로 가면 3분인 거리를 걸으면 20분이 넘는다. 아이들은 걸으며 날씨를 이야기하고, 동네를, 송충이를, 반이 잘려진, 말라 비틀어진 지렁이들을 관찰하며 호기심과 흥분으로 방방 뛴다.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소유하며 그렇게 즐겁게 세상과 소통하려 문을 여는데 어른인 내가 기회가 될 때마다 그 문을 마구 닫으려고 한다. 그러고서는 다른 걸 걱정한다.
원래는 그런 기회에, 내가 아이들에게 감사하며 세상을 향한 나의 소통의 문 역시 함께 활짝 열어 제쳐야 하는데 말이다.
사실, 이렇게 말은 쉽지만 육아는 어렵다.
그럼에도, 곰곰이 생각해보며 내가 고마운 것이 더 많다. 시간이 날때마다 책을 자주 읽어주고 대화하고 대답을 존중해주고. 지금 이 시점에서는 이것만 기본적으로 해줘도 부모로서 아이들 교육에 대한 죄책감과 불안감을 굳이 가질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인공지능은 지식은 있지만 지혜는 없다고 한다.
지식이 아닌 지혜가 목적인 교육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정답인 것 같다.
당연히 나를 위한 정답이기도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