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토요일 새벽 시댁에 내려갔다가 어제 오전 집에 왔다. 나는 같이 가는 것을 거절하여, 아이들 두 명만 데리고 셋이 갔다 왔다. 혼자 있고 싶었다기 보다는 가기 싫어서 가지 않았다. 사실, 남편과는 별일 없는 12년차 부부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오랜 시간 툭하면 반복되는 감정싸움과 불만, 그리고 고된 육아를 겪으며,
아니,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오픈 마인드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하면서 남편이란 사람, 그와의 관계, 결혼이란 시스템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융통성 없는 속 좁은 시야를 고집하면 살아가게 되는 걸까.
삶에는 참으로 모순 점이 많다. 조금만 마음을 열면 삶이 훨씬 편안해 질 것도 같은데, 왜 이리 마음을 꽁꽁 둘러 싸매며 보호하려 하는 거니. 벽을 허물면 좀 더 밝고 편안한 시각으로 관계에 있어서 좀 더 여유가 생기고 융통성이 생길 것 같은데, 지속적으로 상대의 마음을 의심하며 거리를 두고, 그러다 보니 별것 아닌 것들에 연연해 하는 나를 발견하며,
아무리 명상을 하고, 수련을 하며 나의 마음을 훈련시키려 해도, 가장 솔직하지 못한 구석이 마음 깊숙이 숨어 있네. 가장 개인적인 곳이 가장 철통처럼 둘러싸여 있다. 마음이든 물질이든 가장 개인적인 것에 대해서는 손해보지 않으려는 욕심, 이기심, 마음 속 깊이 박혀 있는 피해의식. 자연스런 흐름안에 맡겨 두기 두려운 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불안한가. 움켜잡고 있으니 답답하다. 사실, 그러면서 겉으로는 밖에서는 행복한 척, 편안한 척 가면을 쓰고 앉아 있는 것이 일상이다.
암튼, 아이들과 남편을 보내고 주어진 하루.
아침나절에 끄적끄적 일을 하고 점심을 먹으며 티비 앞에 앉기 시작하게, 키득거리며 그 자리에서 세시간을 보냈다. 오후 4시를 넘기며 청소나 하자 먼지를 닦다가 급격히 다가온 뭔지 모를 답답함, 변화의 욕구가 밀려와 안방을 갈아엎기 시작했다. 엄청난 힘이 이럴 때면 솟구쳐 무거운 매트리스를 옮겨가며 가구 배치를 바꾸기 시작했고, 청소기를 돌리고 쓰레기를 갖다 버리며 쌓여 있던 책의 먼지를 닦고. 그러다 보니 어둠의 저녁이 되었고, 배가 고프지도 않았음에도 냉장고에 있는, 아무거나 손에 집히는 것들을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입에 꾸겨 넣고 우구적거리는 나를 발견했다. 체중계에 올라서니 몸무게가 이전보다 5키로나 불어 있는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며 오늘 밤 아무것도 먹지 말아야지. 순간 결심했지만 밤 10시, 또 다시 새우튀김과 맥주를 집어넣으며 ‘내일부터’ 라는 자기 위안을 달았다.
그렇게 밤을 흘려보내고 일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고프지도 않은 배에 또 다시 이것저것 집어넣고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툭툭 짧은 단답형의 말투로, 1분보다 짧은 통화를 했다. 아이들은 어떻게 잘 놀고 있는지, 남편입을 통해서가 아닌, 아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는데 노느라 정신없는 아이들을 붙잡아가며, 굳이 전화기에 입을 대며 억지로 듣고 싶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멍하게 앉아 있다가 순간 현타가 왔다.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거니. 햇살은 저렇고 좋고, 자주 오지 않는 소중한 자유 시간인데 왜 이렇게 멍청하게 앉아 있니. 지금껏 아이들 때문에 시간이 없어 뭘 못했네, 못하겠네.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이렇게 막상 시간이 주어지니 아무것도 못하고 있네. 시간에 대한 불만, 압박감 등은 모두 나의 합리화, 마음 속의 속임수였었나.
정작, 아이들이 없으니 아이들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가 필요해지고 그리워지다니, 어쩜 이런 모순이 있을 수 있는가. ㅎㅎ
후딱 세수를 하며 얼굴을 세게 툭툭 치고 밖으로 나왔다.
시간이라는 것이 참 오묘하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은 참, 변함없이 간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사실이라 믿으면 안 된다. 생각의 지배를 받고 있다. 자기 합리화를 무의식적으로 되풀이하며 너무 쉽게 매번 속아 넘어가는 것 같지 않니.
따스한 햇살 아래 밖으로 나와 동네 커피숍 아이스커피를 한잔 시키고 밖에 작게 마련된 테이블에 앉았다. 다시 여름이 왔는지 살짝 더운 햇살 아래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명상을 하며, 좋은 책들을 허구언날 읽고 배우고 깨달으며 어깨를 으쓱 한다 해도, 불완전한 인간인지라 배움과 깨달음은 금세 시간과 함께 거의 대부분 쉽게 날아간다. 방구석에 게으르고 멍하게 앉아있다가 밖에 나와 햇살을 보니, 그런 명상 훈련, 좋은 책들의 복습, 깨달음 등은 지속적으로 밖으로 나와서 바람을 느끼고 초록색의 나무들을 바라보며 사색을 통해 반복해야 하지 아닐까. 그늘 밖으로 뻗어 있는 종아리가 살짝 뜨겁지만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너무 좋았다.
아이들이 의사표현을 시작한 이래로, 아이들과 떨어져 밤을 보낸 적이 없었는데, 아이들은 잘 지낸다니. 별탈없이 잘 지낸다는 전화통화, 그리고 오후 내내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바라보며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져 옴을 서서히 알아채기 시작했다. 뭔지 모를 그 옴싹달싹 못하는 마음의 실체를.
어느 아이는 우리 아가들보다 3살이나 많은 9살인데도, 아빠와 단둘이 여행 갔다 밤새 엄마가 보고싶어 엉엉 우는 바람에 새벽녘에 다시 돌아왔다 하던데. 우리 아이들은 쌍둥이라 서로를 의지해서 그런가 너무 잘 지내고 있다는 남편의 말. 아 이 오묘한 감정.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6년 전부터 난 쌍둥이 엄마가 되었고, 육아가 힘들기는 했지만, 그때부터 마음에 가득함이 생겼던 것 같다. 태어나 혼자 걸을 수 없고, 먹을 수 없고, 말할 수 없기에 그 옆에 서있는 부모 밖에 아이들은 의지할 사람이 없다. 그렇게 아이들이 커가는 시간 속 사랑을 주고 받으며,
부모인 나는 도리어, 세상에서 이렇게 나를 의지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이렇게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또 있을까, 아이들이 전해주는 그 반짝거림과 사랑의 힘에 매료되어 마음에 충만감이 쌓이기 시작했고, 그런 행복감과 감사함에 육아의 힘듦을 극복함은 물론, 세상을 좀 더 잔잔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물론, 그 엄마란 타이틀이 주는 상징적인 이미지와 역할을, 사실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나름 즐기고 있었던 것 같다.
어둑어둑한 저녁.
산책을 하면서, 어둠이 깔리는 쓸쓸한 저녁. 섭섭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사실, 엄마인 내가 함께 가지 않겠다고 했잖니. 그리고 엄마가 없다고 적응 못하고 울고 불고 난리 치지 않는 대신, 둘이 잘 놀고 잘 지내는 아이들이 얼마나 대견하니 도리어 칭찬해줘야 하는 것 아니니. 우리 아이들은 쌍둥이라 엄마를 향한 보고싶은 마음을 서로를 향한 의지로 두텁게 서로를 보호하는 것일 수도 있잖니. 잘 지낸다는 말은 불안함 없이 엄마의 자리가 오히려 아이들의 마음에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 일 수도 있어.
그래, 머리로는 알겠어 ㅎㅎ 오히려 칭찬해 줘야 하는데,
아아 난 왜 이렇게 우리의 사랑에 연연하는가. 흑흑흑흑흑 ㅎㅎㅎ
무조건적인 사랑이겠거니 했는데 100% 무조건적인 상처 없는 사랑은 있을 수 없음을 찬라 인정하며,
그리고 직감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이런 일들과 이런 상황을 수두룩하게 맞닥트리게 되겠구나.
아이들을 향한 엄마의 사랑이 짝사랑이란 말도 있다던데, 아 이런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구나. 그런 말의 의미가 뭔지 희미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고, 이 모든 섭섭하고 아쉬운 감정들이 ‘엄마’란 타이틀 아래 숨겨져 있는 불완전한 한 인간의 이기적인 심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이 감정들을 맞닥뜨리는 것이 불편하기도 했다.
사실 아이들의 마음이 어떤 지는 알 수 없다. 아직 그 마음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고, 아빠란 매개체를 통해 전달 받을 뿐이었으니. 그런데 한가지 확실하건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 듯,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길 바라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보고싶으면 보고 싶은 것이고, 그것이 괜찮으면 괜찮은 것이다.
어른이 되기 전까지 아이들은 여러 상황안에서, 사회 속에 나를 적응시키는 것이 급급하고 그것을 우선순위로 받아 들이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게 적응하며 커 가면서 여러 상황 속에서 배우고 깨달음을 얻고.
나 역시 지금도 그런 자식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 우리 부모가 나를 보기엔 아직도 6살짜리 꼬맹이 같을 수도 있겠지.
뒤돌아보면 나 역시 나의 학창시절, 회사원시절, 아니 지금껏 부모를 제대로 생각할 겨를이 있었니. 나 혼자 커가는 것도 벅찼으니까. 지금도 역시 그러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벅차고, 돈 버는 것도 벅차고. ㅎㅎ
시간과 함께 커가며 세상속에 본인을 잘 안착하기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첫번째 의무이다. 아이들 역시, 지금 그들의 때에 맞게 아이들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내고 있을 뿐이다. 나 역시 그렇고.
어둠이 쫙 깔린 밤.
그럼에도 섭섭한 마음에 눈물이 또르르 흐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ㅎㅎㅎ
.......
월요일 오전 아이들이 집에 왔다.
엄마! 힘껏 안긴 후 자기들끼리 또 신나게 놀기 시작한다. 무사히 잘 갔다 올 수 있었음에 감사, 반가우면서도 사실 활짝 웃어주지 못했다.
엄마 보고싶지 않았어?
노느라 정신없어 대답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다시 한번, 너 엄마 안보고 싶었냐고 응응?
보고싶었지! 근데 엄마가 같이 갔었어야지!
할말을 잃게 만드는 정답이네 우리 아가들. ㅎㅎ
아이들이 커가면서 나는 사랑을, 엄마로서의 역활을 더욱 더 크게 퍼주는데, 되돌아오는 사랑의 깊이가 혹은 그것에 대한 보상이 부족하게 느껴져 섭섭한 경우가 이제 많이 생기겠지. 그럴 때 마다, ‘엄마’란 이미지에 빠져 허우적 거리지 말아야 할 것, 엄마이기전에 한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크게 넘실거리는 이기심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으로 이한 섭섭함과 아픔은 정상적인 것이고 그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의 마음을 떠보며 내가 준 마음과 사랑을 어떤식으로든 되돌려 받을 것을 기대하지 말고, 내 기대치에 상응하기를 바라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이라 하지만 엄마로서 상처받기 싫은 마음도 있다. 그리고 조금 더 솔직하게 바라본다면,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주는 사랑 역시, 애초에 그것이, 그 행위 자체가 엄마 본인 마음에 충만감을 안겨주기에 그 만큼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결국, 사랑에도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이 조금이라도 없을 수는 없지 않는가.
타임라인 상 자식들은 항상 한 발자국 뒤에서 느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뭘 느낀다 한 들, 그 대상이 부모이기에 이해해주겠더니 쉽게 넘긴다. 이번 상황을 계기로 나 역시,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키우며 이런 과정 속 힘드셨겠구나. 새삼 깨달으며 죄송스러웠다. 부모에게 잘해야 겠구나..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경험밖에 없다.
부모가 되어야 진정 어른이라는 옛 말들이,
이런 것들을 경험하고 깨우치고 극복하며 성장한다는 의미구나.
그리고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세상에 널려 있는 부모와 자식간의 다양한 관계를 이해 못할 것은 없다. 예를 들어 그 중 어떤 사유로든 부모와 자식간에 연을 끊은 경우들. 예전엔, 아니 서로에게 아무리 화가 난다 한들 어찌 저럴 수 있을까 했는데. 모든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 될 뿐이다. 큰 마음일수록 크게 실망하고 크게 섭섭하고, 견디자 그러나 그것의 가치를 보지 못하면 혹은 너무 힘들면 무너지고 버틸 수 없게 되는 거다.
반짝반짝 아무렇지도 않은 듯 활짝 웃는 아이들을 보며 이마를 콩~ 때리고 싶었다. ㅎㅎ
그렇게 커가면서 자기 가정을 이루며 아이들 본인들의 삶을 살 것이다. 나 역시 여지껏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이렇게 나도 엄마 교육을 받고 있나보다.
아이들을 키우는 맛, 그 행복은 내가 주는 사랑에 대한 보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하는 순간 순간의 느낌, 행복, 감사함에 집중해야 하는데.. ㅎㅎ
오늘 아침, 아이들을 깨워 유치원에 보내며.
아직 마음이 다 풀리진 않았나,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삐져 있긴 했다. ㅎㅎ
평소와는 달리 무뚝뚝한 말투로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빨리 일어나!
그래도 다음번의 혼자 있는 시간은 이보다는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