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초보 시절은 있으니까

달려라하니

by 박기복

지난주였나. 비 내리는 출근길, 차선을 바꿔야 해서 깜빡이를 켰다. 우측 사이드미러에 보이던 차가 기다렸다는 듯이 속력을 키워 달려온다. 그럴 줄 알았지. 피식 웃음이 났다. 끼어들겠다는 신호에 대한 반응은 대개 이런 식이다. 전속력으로 달려들어 앞질러가기. 처음 운전을 하기 시작하면서는 이런 상황이 난감했다. 말하자면 도로 위의 문법을 이해하기 힘들었달까. 지금은 나도 마찬가지 행동을 한다. 차선 바꾼다고요? 잠깐 나 먼저 후딱 지나갈게요.


2006년 2월 운전면허를 따고 바로 다음날 아버지와 함께 중고차 매매 시장에 가서 차를 구입했다. 1년 된 소형차였다. 당시로선 내 돈으로 산 물건 중 최고가였으니 차를 갖게 됐을 때 얼마나 떨리고도 충만했던지. 애지중지 금지옥엽. 심지어 첫차를 향한 애정을 담뿍 담아 이름까지 지어주었으니 '하니'였다. 단순했다. '달려라 하니'라는TV 애니메이션의 제목에서 따왔다. 부디 씽씽 잘 달리라고.


하니와의 만남을 추억하려니 마치 잊고 지내던 전 남자 친구를 기억에서 끄집어낼 때처럼 추억이 주렁주렁 딸려 온다. 운전석에 앉아 하니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던 일(혼잣말), 처음으로 공중에 매달린 모습을 목격하고 수술대 위의 가족이라도 본 듯 마음 아파했던 일(첫 엔진오일 교환), 발레파킹 맡겼다가 오른쪽 문짝이 찌그러져 내 마음도 덩달아 한참 찌그러졌던 일들이 순식간에 떠오른다. 당시 나의 울적한 마음은 반 아이들에게까지 티가 났고, 조수석 문짝(당시 나는 오른팔이라 표현했다)에 '하니야 힘내, 오른팔 빨리 회복되길'이라 또박또박 적은 쪽지가 붙었을 때 미지의 아이가 보낸 따뜻한 응원에 찌그러진 내 마음도 쫙 펴졌었다.


차를 사자마자 출퇴근을 위해 운전연수를 따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도로 위에서 만나는 돌발상황마다 식은땀을 흘렸다. 한참 주행하다가 다소곳이 접힌 양쪽 사이드 미러를 발견하거나, 야간자습 감독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서야 내내 헤드라이트를 끄고 달렸음을 알아챘던 일은 애교 수준이다. 옆 차선에 있는 버스와 너무 붙어있었던 탓에 버스 몸체에 밀려 오른쪽 사이드미러가 서서히 접혀가는 장면은 슬로 모션처럼 생생하다.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돌았던 일, 길을 잘못 들었음을 알아채고 갑자기 핸들을 틀어 큰 사고가 날 뻔했던 아슬아슬한 기억, 차도와 인도 구분이 없는 길을 지나다 행인의 팔꿈치를 쳤던 일들은 어쩌면 인생의 큰 굴곡을 만들 수도 있었을 아찔한 기억이다.


생짜 초보 시절 운전대를 잡은 내가 맞닥뜨려야 했던 감정은 놀랍게도 외로움이었다. 도로 위 가득 찬 자동차들 속에 나 혼자만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바보 같은 소리인 줄 안다. 당연히 자동차마다 사람이 들어있을 것임이 분명한데 특유의 상상력 부족 탓일 거다. 내가 도로 위에서 위험에 빠지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움츠러들기도 했고, 저 기계들 속에서 소외된 이방인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우습게도 도로에서 일어난 작은 소란으로 운전자들이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목격하고 난 후로 도로 위의 외로움은 사라졌다. 저 안에 사람이 있다고 똑똑하게 눈으로 확인한 후로는 안심이 되었다.


운전을 시작하면서 동네 문구점에서 정직하게 '초보운전' 네 글자가 박힌 채 코팅된, 양 끝에 흡착판이 달린 알림판을 샀다. 마땅히 뒷유리 안쪽에 붙여야 했지만 강하게 선팅 된 유리 탓에 글씨가 눈에 띄지 않았다. 어느 날 순전히 안전하고 싶어서 흡착판을 바깥에 부착했다. 판단력이 그리 후졌을 수가. 당연하게도 운전 중 한쪽이 떨어졌다. 다행히 남은 흡착판 하나가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 마냥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물론 알림판은 심하게 한쪽이 기울었고 빠르게 주행하는 차의 진동 탓에 덜덜 거리면서 언제든 차에서 분리될 판이었다.


큰 도로를 쌩쌩 달리던 중이라 차를 세울 수는 없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룸미러로 뒤를 살피던 나는 기적 같은 광경을 목격했다. 내 뒤로 달려오던 차들이 일제히 나를 피해 양쪽으로 차선을 바삐 옮겼다. 홍해의 기적이 도로 위에 펼쳐졌다. 차이가 있다면 홍해는 모세의 눈앞에서 갈라졌지만 차들은 내 뒤에서 갈라졌다가 경주하듯 내 앞으로 추월해갔다.


이젠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왼다리를 운전석에 접어 올린 채 운전을 한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주행 중에 한참 딴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하고 놀랄 때도 있다. 무의식이 운전을 한 건가. 다시 초보시절로 돌아가서 떨리고 난감하고 식은땀 나는 일들을 겪으라면? 절대 못할 일이다. 남자들은 군대 두 번 가는 악몽을 꾼다던가. 나에겐 입시를 준비하던 수험생 시절만큼이나 수개월의 초보운전 시절이 그러하다. 열린 선택지가 탐난다 해도(입시의 경우), 이십 대의 젊음이 그립다 해도(초보운전 시절) 쩔쩔매며 아등바등하기가 싫다.


이럴 때면 스스로가 참 대견하다. 어쩌니저쩌니 해도 이런저런 수고를, 긴장을, 시행착오를 착실히 통과하면서 살아왔구나 인정해주고 싶다. 내일부터 명절 연휴가 시작된다. 시가에만 가면 뭐라도 하려고 스프링처럼 몸이 튀어 오르던 초보 며느리 시절을 지나 아홉 번째 추석이다. 내일 새벽 네시 차에 오르면서부터가 명절 일정의 시작이다. 이번에는 처음 경험하는 이벤트(새 식구가 될지도 모를 사람의 인사)도 준비되어 있다. 크고 작은 일들을 겪어내고 무탈하게 돌아와 누구도 탓하지 않는 무해한 마음으로 이렇게 글을 쓰고 있기를 바란다. (2022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