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feat. 에크하르트 톨레,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by 박기복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꿈도 부서지듯 날아가버리지만 가끔 강렬하고 생생한 꿈을 꾸는데 그런 꿈은 잘 잊히지 않고 마음에 오래 남는다. 인터넷에서 해몽을 검색해보고 그즈음 벌어진 큰 사건과 꿈을 연결시켜 해석을 해보기도 한다.


8월의 마지막 토요일 새벽에 꾼 꿈은 유난히 특별했다. 나는 욕실 세면대 앞에 서있었다. 코를 풀기 위해서였다. 흥! 하고 코를 푸는데 흐르던 콧물이 갑자기 시뻘건 핏물로 변했다. 콸콸콸. 빨갛고 맑은 핏물이 코에서 한없이 흘러내렸다. 피는 세면대를 가득 채우고도 넘쳐흘러 바닥에 있는 대야에까지 담겼다. 찰랑찰랑. 끈적이지 않는 청량한(?) 피가 그칠 줄 모르고 흘렀다. 이게 뭐지? 당황한 나는 그저 가만히 흐르는 핏물을 감당하며 서있었고 그때 욕실 문이 열렸다.


남편이었다. 나는 남편을 향해 말했다. "이거 봐. 코피가 계속 나." 이미 시뻘건 코피가 욕실을 가득 어지럽히는 걸 보고 남편이 심상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아팠지."


꿈에서 깬 나는 이건 보통 꿈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당장 포털 창에 '코피 쏟는 꿈'을 쳐서 검색해 보았다. 다양한 해석이 난무했다. 흉몽이라고도 길몽이라고도 했다. 내 경험상 꿈속에서 불쾌감을 느꼈으면 흉몽, 아니었으면 길몽이었다. 피가 흘러 당황하긴 했지만 속상하거나 괴롭지는 않았으니 길몽이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그날은 마침 친정에 식사를 하러 가는 날이었고 나는 친정 식구들과 함께 복권을 샀다. 결과는 꽝이었다.


복권 당첨이 되지 않은 것이 내심 좋았다. 내가 이 꿈의 해석을 두고 세운 첫 번째 가설은 '내게 찾아올 일생일대의 변화를 예고한 계시'라는 것이었고 가장 간절한 변화는 정서적으로 가벼워지는 것이었다. 꿈에 등장한 남편이 내뱉은 대사야말로 가설의 결정적 근거였다. 며칠 후 춘천까지 가서 만난 친구에게 꿈 이야기를 수다스럽게 털어놓았을 때 동석했던 남편은 옆에서 핀잔을 주었지만 진지한 태도로 듣던 친구는 나의 가설에 적극 동조하며 힘을 실어주었다. "그래, 피를 내쏟은 만큼 새 피가 채워질 테니까."


비슷한 시기였을 것이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듣다가 "괴로움은 무지에서 비롯된다"라는 특별할 것 없는 문장에 꽂혔다. 내가 느끼는 이 괴로움이 무지 탓이다? 내가 대체 무엇을 모르는 것일까, 다 내가 어리석기 때문에 괴로운 것인가 하는 궁금증과 한탄이 나를 옭아맸다. 근무 중에도 틈이 날 때면 '괴로움'과 '무지'를 곱씹었다. 두 단어를 함께 넣어 검색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권의 책을 만났으니, 그렇다. 나는 지금 코피를 쏟는 꿈과 그 책의 연관성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이미 유명한 명상가였다. 유튜브에는 그가 쓰고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라는 책에 대한 리뷰나 낭독 영상이 꽤 많았다. 인간의 내면세계에 관한 탁월한 통찰을 제시한 책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았다. 반가운 마음에 냉큼 전자책으로 구입하여 읽어 내려갔다. 두꺼웠지만 잘 읽혔다. 다소 신비주의적인 면도 있었지만 거부감 없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그간 설명이 부족해 깜깜했던 대목에 빛이 들어오는 느낌마저 받았다.


이 책에는 '에고(ego)'와 '순수한 있음(being)'이라는 상반된 두 개념이 등장한다. 쉽게 말하면 '가짜 나'와 '진짜 나'를 구분해서 알아차림의 세계로 이끄는 것인데 꽤나 설득력이 있었다. 복잡하고 헷갈리던 것들이 책 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풀이되고 연결되면서 명료해졌다. 나를 갉아먹는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그 모든 것이 에고의 작용임을 알아차리면 깨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실질적이고도 직접적인 도움이 되었다. 가끔 삶이 확 가벼워지는 것 같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있었는데 돌이켜보니 책에서 말한 '알아차림'이 작동할 때였다. 나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도 답을 얻었다. 내가 동일화할 것은 내가 가진 직업이나 이룬 것, 나의 육체 따위가 아니라 나의 의식이라는 것, 즉 나의 본질은 (깨어있는) 나의 의식이라는 주장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서 새로웠다.


전자책의 형광펜 기능을 이용해 주요 부분을 발췌해 저장해 두고 반복해서 읽었다. 가까이 두고 수시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종이책으로도 주문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종종 산책할 때 가지고 나가서 벤치에 앉아 한 챕터씩 읽고 있다. 얼마 전 멘탈을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한 날에도 잘 정리된 발췌본들을 기도문처럼 읽으며 흐트러진 마음을 주워 담았다. 예전 같으면 일주일은 기분 나빴을 일을 몇 시간 만에 툭툭 털어낼 수 있었다. 인생 책이 될 것 같은 예감은 과장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코피 꿈과 이 책을 연결시킨 것은 아니었다. 에버노트에 끼적여둔 지난 일기들을 읽다가 신기한 꿈을 꾸었다며 써놓은 글을 보았고, 그 날짜가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를 다운받아 읽기 시작하기 직전이었음을 알아냈을 뿐이다. 조금 소름이 돋았고 꿈에 대한 나의 가설이 그르지 않았음을 확인받은 듯 흡족했다. 내게 생각의 변화를, 그로 인한 감정의 변화를, 그리하여 관계, 일, 삶의 변화를 이끌어낸 책을 만나기 직전 나는 이상한 꿈을 꾼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a new earth>다. 내가 만난 새로운 세상은 새빨갛고도 엄청난 양의 코피와 함께 찾아왔다. (20220929)


오늘의 글감: 나를 성장시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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