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 없는 건강검진은 불가능할까

비수면 위내시경의 추억

by 박기복

예약 시간은 오전 8시 30분이었다. 예년과는 다르게 부지런을 떨어(늘 12월에야 겨우 받곤 했다) 동네 병원에 건강검진 예약을 해두었다. 2년마다 받아야 하는데 올해는 짝수년 출생자들 차례다. 40대가 되니 소변 받고 피 뽑는 데서 그치지 않고, 위암, 유방암, 자궁경부암을 대비해 속속들이 검사를 받아야 해서 영 부담스럽다. 게다가 마침 점심 약속이 있는데 수면 내시경 당일에 운전을 해서 접촉사고를 냈다는 글을 읽은 터라 목적지까지 장시간 지하철을 탈 일도 걱정이다. 부담과 걱정에 짓눌려 잠이 깬 새벽,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시가에 행사가 있어서 혼자 내려간 남편이 위내시경 이야기를 꺼낸다. 내시경을 비수면으로 받으면 어떠냐는 거다. 보호자를 동행해야만 수면내시경이 가능한 병원도 있다던데 혼자 보내려니 마음에 걸렸나. 어젯밤 통화하면서 혼자 검사 간다고 투정 부렸던 게 영향을 주었나. 자기는 매번 비수면으로 받는다며 할만하다고 나를 북돋우기 시작한다. 남편의 목소리 너머로 시어머님의 경험담도 들린다. 고민해본 적도 없던 선택지였는데, 비수면 내시경을 감당할 수 있을지 겁이 난다.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통화를 마쳤다.


수면 내시경을 받고 마취에서 깨는 과정에서 아내 앞에서 헛소리를 할까봐 정신줄을 단단히 붙잡았다는, 얼마 전 들은 동료의 고백이 생각났다. 굵은 호스를 삼킬 때 정말 죽는 줄 알았다는 친구의 경험담은 벌써 30년 전에 들은 것임에도 여전히 생생했다. 의학이 발달했으니 그때랑은 다르겠지 생각하며 비수면 내시경을 검색해 이런저런 글들을 읽었다. 할만하다는 사람도 있고 괴로웠던 기억을 잔뜩 늘어놓은 사람들도 있었다. 안 해본 경험을 처음으로 한다는 차원에서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아침의 병원은 한산했다. 검진표에 신상을 기록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혈압을 재고 키와 체중을 쟀다. 허리둘레를 잴 때는 살짝 숨을 참았다. 시력과 청력 검사를 하고 소변을 받고 피를 뽑았다. 채혈을 하는데 평소보다 유난히 따끔했다. 이 병원의 간호사들이 다들 능력자였으면 좋겠다고, 같은 검사라도 덜 아프게 진행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참이라 과민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다음은 흉부 엑스레이 촬영. 여기까지가 딱 좋았다. 아무것도 내색하지 않을 수 있었던 여기까지가.


흉부 엑스레이 촬영을 마치고는 유방암 검사가, 마지막 순서로는 자궁경부암 검사가 있었다. 이 검사들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참겠다. 두 검사를 경험한 여자들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 거다. 아무도 굴욕을 주지 않지만 당사자는 굴욕과 고통을 느끼게 되는 묘한 검사라고 해두자. 유방암 검사를 마친 후 마침내 고지가 있었으니 “OOO님, 2층으로 올라가셔서 위내시경 받으세요.”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오고야 만 것이다.


내시경을 하기에 앞서 동의서를 작성했다. 문제가 발견되면 조직검사를 진행하는 데 동의한다는 내용이었다. 수면 내시경을 신청한 경우에는 동의서가 두 장이었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던 분은 수면 내시경과 관련한 유의사항을 듣고 있었다. 위장의 가스 제거를 위한 약을 복용했다. 이름이 불려 대기실로 들어갔다. 대기자들이 거의 주사기를 꽂고 있는 걸 보니 수면내시경이 대세인듯했다. 불안감을 느꼈다. 잠시 후 한 번 더 이름이 불렸다.


침대를 가리키며 옆으로 누우라고 했다. 왼쪽을 바라보며 누웠다. 친절한 간호사 선생님이 상냥하게 안내를 함에도 두려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침을 삼키면 사레들릴 수 있으니까 침을 밖으로 흘리라며 키친 타월을 몇 장 얼굴 아래에 깔아주었다. 식도를 겨냥한 마취 스프레이가 뿌려지고 입을 벌린 채로 고정할 수 있는 장치가 물리면서 일사천리로 검사가 진행되었다. 검고 긴 호스가 가까이 오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그냥 눈을 감았다. 잠시 불편하실 거예요 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너무도 고통스러운 순간을 경험했다. 엄청난 것이 목구멍을 통과해 지나갔다.


이물감이 드는 호스가 마취된 식도와 위를 건드리며 왔다 갔다 했다. 눈물이 났다. 눈을 뜰 수 없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자꾸 눈물이 났다. 3분만 견디면 된다는 글을 믿어보기로 했다. 카메라가 달린 호스가 여기저기를 누볐다. 검사를 참 꼼꼼하게도 하는구나 생각했다. 뭐가 발견되어서 이러나 생각하니 호스의 이물감은 겁낼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내 언제 뺐는지도 모르게 호스가 빠져나갔다. 끝났다는 말이 구원처럼 들렸다. 눈을 떴다. 그리고 나는 다시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싶었다. 왜냐하면.


어떤 글에서도 읽지 못한 장면을 보고 당황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깔아 둔 키친 타월이 초라하게 느껴질 만큼 흥건한 나의 침이었다. 내가 그 사이 이렇게나 많은 침을 흘렸다니. 수치스럽다고 해야 할까 굴욕적이라고 해야 할까. 눈물과 콧물과 기침도 감당해야 하는 이 마당에 아... 간호사들이 위로를 건네듯 다량의 휴지를 건넸다. 볼에 잔뜩 묻은 침을 닦아냈다. 왼쪽 머리카락이 축축했다. 휴지를 더 받아서 머리를 정리하고 나니 한쪽 구석 모니터 앞으로 나를 불렀다. 식도와 위 사진을 보여주면서 미세하지만 위염이 있다고, 약을 먹을 만큼은 아니라며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라고 했다.


검사실을 빠져나왔다. 나와 함께 대기실에 있었던 이들은 나보다 한두 시간 늦게 집에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좀 전의 고통과 굴욕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나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했고, 오늘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비수면 내시경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처음으로 경험해 이렇게 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흥건한 침을 마주했던 순간이 지금도 아찔하긴 하지만 수면 내시경을 했다 한들 다르지 않은 장면이라고 생각해보면 통과의례일 뿐이다. 정신을 잃은 채로 겪었을 일들을 맨 정신에 겪었을 뿐.


내장 기관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서 감내해야 하는 과정은 이렇듯 만만치 않다. 물리적인 고통을 참아내야 하고, 때로는 정서적인 저항감을 겪어내야 한다. 의사와 간호사는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뿐이지만 낯선 자세와 어쩔 수 없는 노출은 쉽게 굴욕감을 주기도 한다. 병원이라는 공간 안에서는 어쩐지 늘 작아지는 기분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과학이 발달하면 옷 입고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스캔을 해서 내장 기관의 상태를 알 수 있는 날이 올까. 다음 세대의 인류에게는 그런 은총이 있기를.


모든 과정을 마치고 수납을 하고 병원문을 나섰다. 아직 10시도 되지 않은 가을 아침의 공기는 맑았다. 집에 오는 길에 빵집에 들러서 내가 좋아하는 까눌레와 휘낭시에, 그리고 커피를 샀다. 식도 마취가 풀리는 데는 30분. 30분이 지나면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일상으로 돌아가 식도나 위장 같은 것이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나저나 2년 뒤 건강검진 때는 위내시경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야 할까. 잠깐 고민했다가 결정을 보류하기로 했다. 고통을 망각하는 데는 일단 시간이 필요하다.(20221016)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