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책_03
너 이 책 읽어봤냐?
라는 질문이 이 책과 나를 이어주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본 적이 있고 읽어보려고도 시도했으나 몇 장 넘기지 못하고 패스했던 책을 다시 작정하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 것은, 친구의 들뜬 목소리 때문이었다. 와, 너무 특별한 책이야. 너무 좋았어.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주변에 읽은 사람이 없네 안타까워하는 목소리에는 흥분이 담겨 있었다.
그 어떤 헛소리 같은 이야기를 해도 눈을 반짝이며 잘 들어주는 위대한 경청자인 그는 훌륭한 대화상대이기에 나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라도 어서 책을 읽어야 했다. 즉시 전자책으로 다운로드하여 읽기 시작했다. 초반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 진입장벽을 느끼기는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가속이 붙어 홀린 듯 읽어 내려갔다. 마침내 다 읽었을 때 나 역시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와, 놀랍다. 이렇게 잘 쓸 수가 있다고? 놀라운 이야기였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두 가지에 대해 고마움을 전했다. 첫째, 이 책을 추천해준 것. 둘째, 내용에 대해 그 어떤 힌트도 흘리지 않은 것.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책을 보고 나서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독서하는 사람이 마땅히 누릴 수 있을, 하지만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큰 즐거움 하나를 스스로 놓아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여기서부터는 책의 결말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며 겨우 눈치챈 것은 저자가 이 사람을 자기 삶의 '모범'으로 여기고자 했다는 거다. 좌절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를 가진 인물에 대한 전기인가 싶었던 이 책은 장르를 명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데 나는 이 책을 한 편의 대단한 스릴러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조금씩 조금씩 베일을 벗다가 놀라운 한 방을 먹이며 끝이 난다. 독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일 텐데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라거나 절름발이가 범인이다 같은 식의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은 혼돈과 질서에 관한 이야기이다. 혼돈의 편에 서있는 것은 저자 룰루밀러가 어렸을 때 너(=인간)는 중요한 존재가 아니야, 어쩌면 개미가 너보다 더 중요한 존재야 라고 일갈해버린 그의 아버지이고 질서의 편에 서있는 이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다. 분류학자인 데이비드는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고 그의 질서란 분류하고 이름 붙이는 일을 통해서 가능했다.
분류학자인 그의 주요 연구 대상은 어류였다.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를 해부하고 특징에 따라 분류해서 학명을 만들어 붙이는 게 그의 일이었다.쉬지 않고 일한 결과 당시 전체 어류의 5분의 1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는 점점 승승장구했으며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학장으로 스카우트되기까지 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평생 영광을 누리다가 여든 살에 곱게 사망하였지만 이 책의 중반부에서부터 그는 더 이상 모범도, 위인도 아니었다.
그는 생물을 우열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배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사다리 맨꼭대기는 인간의 자리였다. 그에게 인류는 진보를 향해 나아가는 위대한 존재였다. 인류의 쇠퇴를 예방하기 위해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가진 이들을 몰살할 계획을 세우는 것이 그가 내린 끔찍한 결론이었다. 우생학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가난, 범죄, 문맹, 정신박약, 방탕함을 혈통과 관련된 특징으로 보고 특정 집단을 지구상에서 제거해버리고자 했던 그가 내세운 해결책은 불임 시술이었다. 몰래 하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끔찍한 노력 덕분에 1907년에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불임화가 법제화되었다. 인류 최초였다. 유대인을 향한 증오를 뿜어낸 히틀러보다도 훨씬 먼저 미국에서 '부적합자'를 몰살하기 위한 합법적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종의 기원>을 저술한 찰스 다윈은 한 종을 강력하게 만들고 여러 위협에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변이'라고 했다. 동질성은 오히려 사형선고와 같은 것이라고. 유전자 풀에서 다양성을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지극히 멍청한 짓을 위해 데이비드는 인생 후반기를 바쳤다. 그 결과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강제 불임화가 자행되었다. 저자는 그 피해자 중의 하나인 애나를 직접 만난다. 눈물 바람일 줄 알았던 그 대목은 이 책에서 어쩌면 가장 따뜻하고 사랑스럽다. 누구에게는 잡초에 불과한 민들레가 다른 이에게는 가치 있는 약재가 될 수 있다는 것. 마찬가지로 하찮고 사소한 인간이 서로에게 안전한 그물망이 되고 근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 하여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 지구에게, 이 사회에게, 서로에게 중요하다는 사실이 또렷해진다.
스탠퍼드 대학 도서관에 그의 흉상이 남아있고 그의 이름으로 불리는 건물이 남아있다 해도 그는 혈통에 대한 어리석고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 차별주의자, 비인간적인 만행을 저지른 짐승, (어쩌면) 경쟁자를 독살한 범죄자일 뿐이었다. 다행히도 이 책이 발간된 후 여론이 형성되어 그의 이름이 붙은 건물의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더욱 장렬하고도 통쾌한 응징은 평생을 바친 그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마지막 장에서 비로소 이 책의 제목이 그 어떤 비유도 반어법도 아닌, 사실 그 자체였음이 드러난다. 물고기를 연구하고 분류하고 학명을 붙이는 것에 일생을 바쳐온 그의 삶이 애석하게도,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규명된 것이다. 엄연히 존재하는 조류, 양서류, 포유류와 달리 어류라는 범주는 과학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단다.
중학교 생물 시간에 '어양파조포'를 외웠던 게 생각이 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어류가 가장 열등하다고, 양서류, 파충류, 조류를 거쳐 포유류가 가장 복잡한(달리 표현하면 우월한) 조직을 가지고 있다고 배웠었다. 그런데 이미 서구 학계에서는 1980년대부터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였다고 한다. 혼란스러웠다. 내 눈에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담기는 그 많은 물고기들이 사실은 한데 묶일 수 없다는 것이. 그리고 아무런 저항 없이 생물을 위계화해서 받아들였다는 것이.
충격을 받았다. 과학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닌 내가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해서 충격일 것은 없었다. 나의 충격은 이 시대를 향한 나의 맹목적인 믿음의 균열에서는 오는 것이었다. 이미 진작에 어리석음의 장막이 걷히고 이제 웬만큼은 설명이 완료된 사실의 세계에 산다고 믿었던 것 같다. 여전히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와 다른 동물들 사이의 유사성을 과소평가해온 오류 투성이의 존재가 인간인데도 말이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저자는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기존의 범주를 부수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간다. 그의 앎이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목에서 이 책은 마침내 최고의 에세이가 된다.
질서라는 가면을 쓴 편견과 오류에 속지 않고, 안정되게 흐르고 있는 명명과 범주화의 강물에 작은 의심의 돌멩이라도 던져볼 수 있을까. "인간은 원래 곧잘 틀리잖아." 저자의 큰 언니가 원망 없이 하는 이 말과 함께 작은 돌멩이 하나 가슴팍에 숨겨 두어야겠다. (2022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