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회는 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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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복

한 두 달쯤 되었을까. 추천 영상 중 하나였던 피아노 신동의 연주를 본 것을 시작으로 유튜브 알고리즘은 솜씨 좋은 중매쟁이처럼 내 입맛에 맞는 연주곡들을 쉼 없이 소개해 주었다. 연주곡들을 자꾸 듣다 보니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같은 악기가 내는 소리가 좋아졌다.


곡의 제목이 무엇인지, 연주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듣다가 귀가 번쩍 트이는 소리를 만나면 그제야 작곡가나 연주자를 검색해 관련 곡을 찾아 듣는 식이었는데 그러는 사이 나는 클래식의 바다에 풍덩... 까지는 아니고 그 앞 모래사장 언저리쯤에 당도하게 되었다.


클래식에 대한 관심이 생전 처음은 아니었다. 십수 년 전에 클래식 CD를 사모았던 적이 있다. 이유는 아마도 지적 허영심이었던 것 같다. 1~2주에 한 번씩 교보문고 핫트랙스에 가서 신중하게 CD를 고르고 부지런히 반복해 들었다.


클래식 음악은 오롯이 선율에만 집중하게 해 주어서 좋았다. 특히 여러 악기 소리가 조화를 이루는 곡들은 딴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나의 귀와 마음을 붙들어주었다. 어쩌면 그때가 속 시끄러웠던 시절이라 클래식 음악에 나도 모르게 손이 갔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의 웬만한 관심사가 그러하듯 몇 달 지나 CD 모으기는 시들해졌고 그렇게 더 이상 개수가 늘어나지 않는 30여 장의 CD를 예쁜 쓰레기들과 함께 수년 째 장식장에 박아두었다. 몇 번의 이사에도 그들이 버려지지 않은 건 한 장 한 장 신중히 골랐던 기억 때문이지 다시 즐겨 들으려는 쓸모 때문은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 장식장 문을 자주 열어가며 CD를 듣고 있다.


몇 주 전 늦은 밤, 여느 때처럼 클래식 음악이 자동 재생되던 중이었고 취침에 대비해 30분 후 실행중단을 예약해 둔 참이었다. 문득, 이런 연주를 라이브로 들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가장 먼저 떠오른 그 이름,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를 검색해 들어갔다.


공연 정보를 찾아서 가장 괜찮아 보이는 공연을 골랐다. 누구의 곡을 누가 연주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직접 공연장에서 라이브 연주를 듣고 싶었을 뿐이었고 특히 좋은 자리에서 듣는 경험을 스스로에게 선물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고가의 클래식 공연 티켓을 내 돈 주고 직접 사는 일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지만 결정은 순식간이었다.



4월 25일 화요일. 공연은 저녁 7시 30분.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타고 남부터미널역에 내린 뒤 한참을 걸어 예술의 전당에 도착했다. 오는 데만 1시간 30분 가까이 걸렸다. 서울에 사는 게 맞나 싶을 만큼 굽이 굽이 산 넘고 물을 건너온 기분에 이미 지쳤다. 이래서 강남 강남 하는 건가.


건물 안으로 들어서며 느낀 안도감도 잠시, 음악당을 향하는 사람들의 행렬에 깜짝 놀랐다. 평일 저녁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 공연을 보기 위해서 모인다고? 공연 예매 과정이 꽤나 즉흥적이어서 괜히 비싼 돈 주고 관심 못 받는 공연을 보는 건 아닌가 하는 일말의 염려가 인파와 함께 단숨에 씻겨나갔다.


브레멘필하모닉의 첫 서울공연. 사이드이긴 했지만 10번째 줄이었다. 무대가 훤히 잘 보였다. 연주자들이 입장하는데 그들의 표정이 너무 잘 보여서 오히려 낯설었다. 대학로의 작은 소극장이 아니고서야 뮤지컬이나 연극을 앞자리에서 관람한 적은 별로 없었다. 공연은 나의 관심 소비 대상이 아니었다. 누군가 제안하면 동참하는 식이었으니 문화생활보다는 친교활동의 수단에 가까웠다.


내 오른쪽 옆자리에는 선후배로 짐작되는 여자 두 명이 앉아서 대기 시간 내내 소소한 수다를 떨었고 왼쪽 옆자리는 비어있었다. 연주자들의 입장과 거의 동시에 헐레벌떡 들어와 앉은 남자는 키가 아주 컸는데 그가 내 앞줄이 아니라 옆에 앉아주어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다. 나의 관람을 방해할 위험 요소는 전혀 없었다.


연주가 시작되었다. 잉? 나는 어리둥절했다. 이 소리가 내 눈앞에 있는 저들이 내는 소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완벽했다. CD를 틀어놓은 것 같다는 상투적인 비유를 끌어다 쓸 수밖에 없겠다. 음악은 아름다웠다. 그저 음악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느끼며 현재에 머물고 싶었다. 지휘자의 몸짓과 악기가 내는 소리에 집중하려 애썼다.


브레멘 필하모닉은 브람스가 생전에 직접 지휘도 맡았을 만큼 브람스와 인연이 깊었다. 대학축전 서곡에 이어 두 번째 무대는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 협주곡.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첼리스트 문태국이 무대에 올랐다.


온몸을 떨며 신들린 듯한 연주를 이어가는 두 연주자를 보면서 내내 했던 생각이 있다. 감동을 주는 연주는 단지 육체로 연주하는 게 아니라는 것. 활을 켜고 있는 것은 저들의 팔이지만 실은 영혼을 다해 연주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영혼과 맞닿은 기관이 바로 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연주가 끝나자마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 역시 힘차게 박수를 쳤다. 두 연주자도 감격에 겨운 듯 인사를 마치고 무대를 떠났다. 박수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나갔던 둘이 다시 무대에 들어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다시 무대를 떠났다. 관객의 박수는 멈출 줄을 몰랐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서 그들은 앙코르 연주를 들려주었고 다시 또 박수, 퇴장과 입장, 퇴장과 입장이 이어졌다. 음악회의 문법이란 이런 것인가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박수를 쳤다. 손바닥이 아팠지만 훌륭한 연주에 맞는 매너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앙코르 연주를 두 번이나 마치고서 비로소 1부가 끝이 났다. 휴식 시간 동안 나는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일행이 없이 혼자 영화관에 간 적은 있지만 라이브 공연을 보러 오는 일은 처음이었다. 어색한 일이었다. 마지막 무대는 브람스 교향곡 제4번이었다. 사실 내게는 낯선 곡이라서 공연 이틀 전부터 반복해서 듣기는 했었지만 이상하게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적막을 깨고 1악장이 시작되자마자 이럴 수가. 확실히 귀에 익은 곡이었다. 언제 스며들었던가. 음악이란 신비로운 것이다. 역시나 훌륭한 연주였다. 지휘자에게 시선이 압도되는 무대였다. 한 몸처럼 움직이는 악단을 보면서 결국 무대 위의 퍼포먼스가 관객에게 감동이 되는 이유는 조명 없는 곳에서 이어졌을 엄청난 연습과 노력이 가늠되기 때문임을 되새겼다. 김연아가 빙판 위에서 보여주는 완벽한 무대에 울컥했던 건 그가 숱하게 찧었을 엉덩방아가 생각 나서였듯이.


도대체 얼마나 연습한 걸까. 혹시라도 딴생각을 하게 될까 봐 더욱 집중하려 애썼다. 이토록 황홀한 경험을 놓치지 않고 누리리라. 이제 브람스는 나에게 특별한 작곡가가 될 터였다. 오늘 들은 곡들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경험은 그 자체로 전과 후를 갈라놓는 법이니까.


악장과 악장 사이에는 박수를 치지 않는 것도 유의할 점이었다. 4악장이 비로소 끝이 났을 때 역시나 세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 역시 마음에서 우러나 열심히 박수를 쳤다. 아까 같은 상황이 재현되겠구나, 손바닥이 아프겠구나 생각했지만 공연 막바지였던 그즈음에는 예술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의례란 꼭 필요한 것이라고 수긍하고 있었다. 과한 의례는 예술가에게 영광이고 보상이 될 것이다.


공연의 문법에 따라 퇴장과 입장, 퇴장과 입장이 몇 번 이어지다가 앙코르 연주가 시작되었다. 무려 헝가리무곡이었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첫 곡에 이어 (또 몇 번의 퇴장과 입장이 지나고) 두 번째 앙코르 무대에서는 헝가리무곡 중 가장 유명한 10번 곡이 연주되었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나도 참을 겨를이 없었다. 특히 지휘자의 특정한 몸짓은 곡과 너무도 어울려서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생애 첫 유럽여행의 첫 일정이 헝가리 부다페스트였다. 그때 mp3플레이어에 미리 담아 온 헝가리무곡을 얼마나 들었던가. 그렇지 않아도 감탄이 나올만한 연주에 유럽 여행의 감동까지 더해졌다.


다시 산 넘고 물 건너 굽이 굽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구글 검색창에 온갖 것들을 쳐봤다. 필하모닉이 하모니를 사랑한다는 데서 유래한 용어라는 것을 알았고 학창 시절에는 그렇게 외워지지 않던 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등등의 차이라든가 관현악단의 구성 같은 것이 읽는 족족 머리에 들어와 박혔다.


더블베이스나 팀파니 같은 악기가 교향곡의 웅장한 분위기를 좌우하는 중요한 악기라는 건 무대를 직접 보고서야 알았다. 배움의 가장 큰 조건은 결국 관심이었고 일말의 배경지식과 경험이었다. 배움은 이렇게 일어나는 것이구나, 또 하나 제대로 배웠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옆자리 음악 선생님과 관람 후기를 나눴다. 나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면서 자기 일처럼 재미있어하는 그를 보면서 그제야, 나를 클래식의 모래사장으로 데려다준 것이 유튜브 알고리즘만은 아님을 깨달았다.


올해 학교에 관현악단이 꾸려졌다. 그 모든 일을 나의 옆자리 선생님이 도맡아 처리하고 있었다. 학생 단원을 모으고 강사를 선발하고 악기를 구입하고 연주 연습을 계획하고... 교무실에 앉아있으면 아련히 악기 소리가 들려왔다. 그 과정에 무의식적으로 클래식에 대한 관심이 생겨난 것은 아니었을지.


내가 (기복이 심해) 박기복이 된 이유는 외부 자극에 민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 자극이 내 안의 열정을 확 불태우게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쉽게 사그라들게도 한다. 사주명리학적으로 나는 땔감을 타고나지는 못한 불씨란다. 외부의 자극이 결국 나의 땔감이 되어주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뭔가를 읽으려 하고, 듣고 보려 하고,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려 하는 게 아닐지.


나는 안으로 향하는 활짝 열린 문을 지닌 사람. 내 삶은 그래서 변화무쌍한 가능성이다. 호기심이라는 불씨가 꺼지지 않는 한 내 안으로 무엇이든 들어올 것이다. 금세 또 빠져나가겠지만 그래서 더욱 기록할만한 가치가 있다. 기복이 있는 삶은 결국 기록이 있는 삶으로 귀결되는 것일까. 나쁘지는 않다.(202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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