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서 살겠다고?
괴짜 과학자를 연상케 하는 그의 자유분방한 머리 모양에 자꾸 눈이 갔다. 한쪽 벽면 꽉 차게 들어선 책장에 빈틈없이 꽂힌 의학 원서들과 책상 위에 잔뜩 쌓인 서류 뭉치들 탓에 그는 더 탐구적인 의사처럼 보였다. 검사 결과를 냉큼 설명해 주면 좋으련만 내가 학생이라도 되는 양 질문을 해댔고 주의력이 흐려진 나는 정답을 잘 맞히지 못했다.
질문과 정답을 이어나가며 그가 전한 결론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므로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고지혈증 진단을 내린 거다. 몇 년이나 되었을까. 건강검진을 위해 혈액 검사를 하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아슬아슬했다. 경계를 왔다 갔다 하더니만 이번에는 영낙없이. 언제까지 약을 먹어야 하냐고 물었을 때 그는 주저 없이 평생이라고 답하며 어지러운 책상 한구석에 놓인 약상자를 집어 흔들어 보였다. 자기도 먹고 있단다. (그다지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약을 먹으면 혈관벽에 쌓인 물질이 녹을까요? 안 녹아요. 그런데 왜 먹어야 할까요? (그는 내 답을 기다렸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더 이상 쌓이지 않게 하려고 먹는 거예요." 그 말은 깊이 박혔다. 본 적도 없는 내 혈관 안쪽에 지방 찌꺼기들이 쌓여가는 상상은 나를 조바심 나게 만들었다. 언젠가 혈관이 막히는 날에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약을 받아 집에 오는데 안쪽 어디선가 울적한 기분이 올라왔다. 나는 과체중도 아닌데, 운동도 꾸준히 하는데 어째서 수치가 높은 건가 항변하고 싶었지만 누구에게?
식탁 한쪽에 약상자를 올려두었지만 복용은 보류 중이다. 두 달만 철저하게 식습관을 바꾸어보고 다시 검사를 받아볼 생각이다. 무의미한 시도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검사 전날 밤 동대문 엽기 떡볶이를 시켜 먹은 게 생각났고 그러고 보니 식습관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는 자각이 밀려왔다. 외식이 일상화되어 있었고 너무나 많은 것을 너무도 많이 먹었다. 삼겹살, 갈비찜, 감자탕, 순댓국, 초밥, 햄버거, 치킨, 피자, 라면. 이런 메뉴들을 일상적으로 먹었다. (쓰면서도 군침도는 건 뭐지?)
그나마 과체중이 아닌 것은 간헐적 단식 덕분일 터였다. 정상체중의 범주 안에 든 게 어쩌면 착시였다. 체중을 유지한다고 해서 식습관이 올바르다는 의미는 아닐 텐데. 식탐에 위장을 맡겼던 지난날이 후회스러웠다. 온갖 자극적인 맛에, 불에 구운 고기, 염분 가득한 탕, 달달한 디저트와 빵에 활짝 열린 위장이었다. 나는 어째서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을 수 있다고, 먹어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먹는 낙으로 살아온 나에게서, 각성한 내가 떨어져 나와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니 그렇게 어리석을 수가 없었다. 한없이 한심했다.
건강하게 살고 싶었다. 오래 사는 것보다 사는 동안 건강한 게 중요했다. 통증을 겪지 않고 남의 도움 빌리지 않도록 건강하고 싶었다. 그래서 운동도 하고, 그래서 마음 건강도 챙기며 살았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쳤다. 먹고 싶은 메뉴를 마음 가는 대로 골라먹어도 된다는 생각은 분명한 '착각'이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아슬아슬해지면서부터 나에게는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선택해 먹을 자유는 없어야 하는 거였다. 선택권이 없는 줄도 모르고 무한한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면 이렇게 탈이 나게 되어 있다.
'대단한 착각'이라는 다섯 글자를 만지작거리면서 '선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는 시쳇말처럼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지혜롭게 산다는 것은 결국 매 순간 현명한 선택을 이어나가는 것일 텐데, 선택할 수도 없는 일에 힘을 빼거나, 엉뚱한 선택을 하거나, 선택의 범위를 넘어서는 고민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은 생각보다 빈번하다. 반대로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일인데도 무력해져 선택을 포기하거나 마땅히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권을 (자기도 모르게) 타인에게 넘기는 경우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마침 오늘 들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 건강염려증으로 매일 전화해 아픔을 호소하는 친정어머니 때문에 힘들다는 사연이 나왔다. 한 시간씩 넋두리를 들어주는 게 힘들고 멀리 있어서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괴롭다는 내용이었다. 스님은 뭐라고 답하셨을까. 멀리 있어서 해줄 수 있는 게 마땅치 않은 건 어쩔 수 없으니 하소연 한 시간 정도 들어주는 건 할 수 있지 않냐고 질문자에게 되물었다. 해줄 수 있는 건 하기 싫고 해줄 수 없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며 감정낭비하는 건 어리석은 것 아닐까요?라는 대목은 특히 울림이 있었다.
선택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잘 분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선 미련조차 두지 않는 것. 그렇게 에너지를 아껴가며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지혜로운 삶으로 난 길은 이토록 단순하다. 다만,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잘 분별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을 먹고 아닌 음식들에 대해선 미련조차 두지 않는 것이라고 부연하고 나니 단순하되 험난한 가시밭길임을 부정할 도리가 없다. 어쨌거나 당분간 내 삶은 팍팍할 터다.(2023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