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기말고사 기간이다. 교직에 20년 넘게 있으면서 시험 감독을 200번도 넘게 했을 텐데 감독할 때마다 느끼는 난처함은 여전하다. 적막과 고요 속에서 수십 분을 견디며 지루함과 맞서는 일도, 언제든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긴장감도 만만치 않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공정하면서도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다수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나 자신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도 공포스럽다.
시험 사흘째인 오늘, 1교시 감독을 하러 들어간 반은 평소 수업 시간에도 이쁜 짓을 잘한다. 아는 얼굴이 감독을 왔다고 안정감 운운하며 반기는 모습이 정스럽다. 올해 아이들은 참 다정하다. 시험은 또 얼마나 진심으로 보는지. 중학교 2학년인 그들은 중간고사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이 '생애 첫' 시험이다. 시험 문제가 어렵냐 쉽냐는 질문은 몇 주 전부터 백만번은 들었고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아직 치르지도 않은 시험을 두고 망했다라든가, 한강물에 온도 체크하러 간다는 서늘한 농담을 던진다. 입방정을 떠는 방식으로 각자의 불안을 해소하는구나 싶어 안쓰럽기도 하다.
손바닥만한 OMR카드를 앞에 두고 자못 심각한 얼굴들이다. 각자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답들을 골라 컴퓨터용 싸인펜으로 답안지를 완성해 나간다. 종료 10분 전을 알리는 안내방송을 지나 마침내 종료령이 울리고 나면 자기들끼리 답을 맞추느라 분주하다. 감독인 나는 답안지를 정리하고 매수를 확인하고는, 환호와 한탄이 뒤섞인 소음을 뒤로하고 교실을 나온다.
답안지가 번호순으로 정렬되었는지 확인 도장을 빠뜨리진 않았는지 확인할 겸 넘기면서 흘깃 봐도 답지의 배열이 벌써 다채롭다. 같은 내용을 배워서 동일한 문제를 풀었지만 저마다의 정답(최선의 답)들은 제각각이다. 채점을 하기 전까지 아니 친구의 답과 제 답을 맞추어보기 전까지 각자의 답안지는 각자의 믿음 안에서 백점이었을 텐데.(확신의 정도야 학습능력이나 준비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문득 그 사실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마지막 문항까지 문제를 다 풀어내고 종료령이 울리기를 기다리는 시간, 어떤 아이들이 가장 행복도가 높을까를 생각해 본다. 교무실 각반 공지함에 살포시 놓인 정답지와 100% 일치하는 답을 써놓고도 문제가 너무 어려웠고 나는 제대로 준비를 못했고 그래서 분명히 몇 개 틀렸을 거라며 의기소침한 학생과 채점의 시간이 찾아오면 시험지에 여러 개의 빨간 빗금을 그어댈 미래를 가졌다 하더라도 아직 답안지가 자기 품 안에 있는 동안에는 내가 쓴 이 답이 백점일 거라고 의기양양한 학생을 나란히 상상해 본다. 버젓이 점수가 나오는 시험에서 종료령 이전의 행복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마는, 정답을 알려주지도 않고 점수가 당장 나오지도 않는 시험이라면 그 경우엔 어떨까.
책상 앞에 앉아 진지한 자세로 문제를 풀고 답을 골라 OMR 답지의 수많은 구멍들 중 몇 개를 골라 채워 넣는 일을 인생을 사는 일과 빗대어 본다면 말이다. 기말고사 문제처럼 길이대로 가지런히 배열된 다섯 개의 선지가 준비되어 있진 않더라도 인생을 살다 보면 중요한 고비마다 딱 하나만을 선택해야만 할 때가 줄지어 찾아오지 않던가. 그런데 기말고사와 달리 각자 다른 문제를 풀어야 하고 정답이 있을 리 없으며, 순전히 각자의 자유의지와 놓인 상황에 따라 적절한 또는 옳은 답을 찾아나갈 뿐이고 답지에 맞춰 채점하는 시간도 따로 없다!!! (누군가는 연봉을 점수로 환산할지 모르지만 글쎄다. 그것 역시 문제에 대한 자신의 답일 뿐이다.)
그렇다면, 용기 있게 적어 내려간 내 답안지를 긍정하는 게 가장 적절하고도 옳으며 바람직한 선택 아닐까. 내 앞에 완성되어 놓인 이 답지가 100점이 맞다고 믿어버리거나 (더 나은 경지는) 100점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해 버리는 거다. 50점만 넘어도 땡큐라고 생각한다면 실망이나 좌절의 습격을 높은 확률로 피할 수 있다. 물론 최고의 경지는 포기하지 않고 다 푼 것만도 참 대단하다며 스스로를 기특해하는 것. 문제도 제대로 읽지 않고 아무 번호로 마구 찍어버리는 짓만 안 한다면 뭔들 대견하지 않으랴. 무려 시험이고 무려 인생인데. (2023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