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의 품격

읽히려면 어쩔 수 없다?

by 박기복

작년부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읽을 수 있는 곳에 글을 쓴다는 것은 여전히 낯설고 설레며 긴장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완성해서 발행 버튼을 누를 때의 기쁨이 커서 계속 쓴다. 복잡한 상념들을 끌어다가 주제를 가진 한 편의 글로 풀어내는 작업이 선사하는 것은 성취감을 넘어선 일종의 성장 경험이다. 글쓰기는 단순한 문장의 나열이 아니라 나를 괴롭히는 생각을 가다듬거나 마음을 다독이는 작업이기도 하니까. 거기에 덤으로 누군가가 내 글에 보여주는 반응들은 고맙고도 반가운 것이었다. '***님이 라이킷했습니다'라든지 '###님이 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라는 알림이 오면 기분이 참 조크든요.


처음 글을 썼을 때는 발행 버튼을 누르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는 이런저런 피드백을 주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글을 올린 당일에나 조금 반응이 오다가 이틀쯤 지나면 내가 이틀 전에 글 썼던 게 맞나 할 만큼 잠잠했다. 조회수는 기대를 밑돌았다. 조금 실망했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글을 쓰던 초창기 브런치 알림을 받고 놀란 적이 있다. 나의 글이 조회수 1000회를 돌파했다는 알림이었다. 잉? 그럴 리가. 확인해 보니 정말 조회수가 1000회를 돌파했고 무서운 기세로 올라가더니 금세 3000회를 넘었다. 그 글의 제목은 '술은 죄가 없다'였다. 역시 제목이었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을 써야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거였나. 웃기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그때 잠깐 '죄가 없다' 시리즈를 써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어떤 단어든 죄가 없다를 붙이면 묘한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나는 죄가 없다, 너는 죄가 없다, 엄마는 죄가 없다, 아빠는 죄가 없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사물도 마찬가지. 반지는 죄가 없다, 아이폰은 죄가 없다, 지갑은 죄가 없다 등등.


브런치앱을 켰을 때 첫 화면에 보이는 글들을 보면 다들 어쩜 그렇게 제목을 잘 짓는지. 당장이라도 클릭하고 싶어지는 제목들이 가득했다. 나도 읽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언젠가 글쓰기 책에서 독자들이 읽고 싶어지게 제목을 붙이는 일은 작가들에게 사활을 걸 만큼 중하다는 이야기를 봤었지만 포장보다 알맹이로 평가받고 싶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제목을 두고 오래 고민하지는 않았다.


최근 오랜만에 다시 글을 쓰면서 뻔뻔함을 감수하고 <나는 어쩌다가 부자가 되었나>라는 제목을 달았다. 소제목(취미 부자 말입니다. 헤헤)으로 면피를 해보려고는 했지만 조금 부끄럽기는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역시나 며칠 만에 조회수 1000회를 가뿐히 돌파했다는 알림이 왔다. 유입경로가 브런치가 아니라 기타로 분류된 것으로 봐서는 '다음' 어딘가에 노출이 되었나 추측만 할 뿐이다. 제목만 보고 눌렀다가 몇 줄 읽고 "아 뭐야. @%$#&" 욕하고 나간 사람이 수백 명이 아닐까 하는 아찔한 상상도 했지만 어쨌건 제목만 달리 달아도 관심을 받는구나 하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로부터 며칠간 나는 공상에 빠졌다. 일상의 경험을 글감으로 전환시키다가 제목까지 지어보는 상상 놀이.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제목들을 상상해 보았다. 사실 웃자고 하는 놀이였다. 몇 개를 남편에게 말했더니 나를 향해 "그러다가 큰 일 난다" 라며 웃었다. 쓰지는 않을, 상상만 해본 제목들을 공유해 본다.


-내용: 10년을 함께 지낸 남편에게서 발견한 색다른 면을 바탕으로 남편의 (긍정적) 양면성을 파헤치는 글.


-제목: 남편 둘과 살고 있습니다.


-내용: 글쓰기에 새삼 재미가 피어올라서 내내 글감을 생각하고 제목을 생각하고 있다는 글.


-제목: 유부녀지만 연애 중입니다. (소제목: 글과)


생계가 달린 일도 아닌데 너무 악착같은 욕망을 투영하지는 않으련다. 그래도 조금은 더 호기심을 끌 수 있는 제목을 지어보려는 고민은 헛된 일은 아닐 것이다. 내가 쓴 글들이 적절하고도 정당하게 읽힐 수 있도록 애쓰는 일은 글의 생산자로서 마땅히 기울여야 할 노력일 테니까. 부리를 벌리고 아우성치는 아기새들을 돌보는 마음으로 떡밥을 물어다가 과하지 않은 낚시를 하는 정도는 괜찮겠지. 그나저나 이 글의 제목은 뭘로 하나.(202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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