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웃긴 의사들 2

피부과

by 박기복

오늘 정형외과에서의 웃참 챌린지(이전 글 참고)에 관해 글을 쓰다가 덩달아 몇 달 전 피부과에서 겪은 일이 생각났다. 하여 2편짜리 (나름) 연재물을 쓰는 바이다.


겨드랑이 제모를 하러 피부과에 갔었다. 놀랍게도 처음이었다. 하려면 진작 했어야 하는 일을 사십 대 중반인 지금에서야 굳이 하게 된 건 달리 이유는 없다. 언제부턴가 겨드랑이 털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다지 손이 많이 가지 않을 정도라 끝까지 혼자 해결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편한 방법을 두고 쓸데없이 에너지를 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겨드랑이 제모'를 검색해 보면 엄청난 양의 후기들이 있을 텐데 그것들을 일일이 찾아보기는 귀찮았다. '겨드랑이 제모 부작용'을 검색해서 두어 개의 글을 읽고는 해 볼 만하겠다 싶어서 마침 시간이 되던 어느 토요일, 집 앞 피부과를 방문한 것이다.


그 병원은 전에도 몇 번 간 적이 있었는데 갈 때마다 만원이었다. 벽면 가득 각종 시술 및 주사들의 명칭과 효과, 비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두었는데 특히 효과 대목을 읽을 때면 안 되는 것이 없는 곳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표 원장에게 진료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그러려면 오래 기다려야 했다. 접수처에서 먼저 "여자 의사분으로 해드릴게요."라고 선심 쓰듯 이야기했다. 대기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내 차례가 왔다.


대표 원장님 진료실의 반절 밖에 안 되는 작은 진료실에서 만난 의사는 한눈에 봐도 젊어 보였다. 보통의 의사 선생님들에게서는 풍기지 않는 일종의 '명랑함'이 느껴졌다. 마스크 때문에 표정이 다 보이진 않았지만, 머리를 묶은 모양새가 소탈했고 목소리는 낭랑했다. "겨드랑이 제모를 하러 오셨다고요? 후회하실 거예요."


네? 저기요 선생님 뭐라고요??라고 길게 입 밖으로 뱉은 것은 아니지만 순간 내 눈이 동그래졌을 것이다.


"후회하실 거예요. 십 년 전에 할 걸 왜 이제 왔나 후회하실 거예요. 하하하."


명랑한 의사 선생님 앞에서 덩달아 함께 웃었다. 아 그래요? 처음 경험해 보는 제모 시술을 앞둔 긴장감이 사라졌다. 하나도 안 아파요. 금방 끝나요. 시술실로 모실게요. 이렇게 싹싹한 의사 선생님을 보았나.


시술실에 누워 왼쪽과 오른쪽 겨드랑이를 번갈아 내밀며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점을 뺄 때는 레이저로 지지는 느낌이었는데 제모 레이저는 '퐁퐁퐁' 쏘는 느낌이랄까. 누르면 비누 거품이라도 나올 것처럼 친근한 레이저 퐁퐁퐁. (말이 그렇다는 거다.)


3주 뒤에 오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의사는 사라졌다. 벌써 끝난 건가 어리둥절해하며 시술실을 나왔다. 3주 내지는 한 달 주기로 5번의 레이저 시술을 받으면 되는 거라는데 두 번 정도 받자 이미 효과가 확실해졌다. 의사 선생님의 말이 맞았다. 후회한다. 10년 전에 할 걸 그랬다. 너무 편하다. (2023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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