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제발 그 말은 하지 마오.
언젠가 글을 쓴 적이 있지만 남편과는 소개로 만났다. 당시 남편을 소개하는 문구 중 하나가 '말수가 적어서 걱정'이라는 것이었다. 걱정은 무색했다. 남편은 말을 배워나가는 아이처럼 결혼을 하면서 폭발적으로 말문이 트였는데 술을 마시고 온 날은 더욱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남편의 명예를 살짝 훼손한 것 같아 덧붙이자면 남편은 술을 즐기지만 술버릇은 참 깔끔한 사람이다. 웬만하면 11시를 넘기지 않고 절대로 12시를 넘기지 않고 귀가해서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하는 사람이니까. 술버릇이랄 것도 없어서 들어와서 잘 씻고 잠옷까지 말끔히 갈아입고 곱게 잘 뿐이다. 자기 전 조잘조잘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고 잠들면 고래고래 코를 곤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오늘도 남편이 10시 반쯤 집에 돌아왔다. 대리를 해서 온다고 전화로 알릴 때부터 오늘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이 이야깃거리가 잔뜩 있는 듯했다. 잘 준비를 다 하고 누워서는 나를 부른다. 자기 이야기를 꼭 들어줘야 한다고, 할 이야기가 있다고. 오늘 만난 사람들이 누구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 생각은 이렇고. 내가 정리해서 쓴다면 두 줄이면 되는 이야기는 배경 설명만도 한참이 걸린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준다. 직업병 때문인지 결론은 나의 당부(훈화)로 끝난다. 건강을 생각해. 술 좋아하다가 병들면 그 좋아하는 술 못 마신다라든지 식구라고는 둘 뿐인데 자기 없으면 나 어떡하냐라든지 불안감을 조장하는 식으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내 마음 편해지는 푸념 같은 거다. 그럴 때면 남편은 못 들은 척 딴소리를 하곤 하는데 오늘은 웬일로 내 말에 대꾸를 한다.
자기야 자기 두고 내가 어떻게 먼저 죽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기는 한데 정작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죽더라도 혼자 죽지는 않을 거야... zZ
응?
자기야, 뭐라고?? 간만에 나를 떨리게 하는 이 남자, 서늘해지는 밤이다. (2023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