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새 식구를 들였다. 식물 이야기다. 아파트 후문 옆에 꽃집이 생긴 것을 알고 어찌나 반갑던지. 오며 가며 기웃거리다가 며칠 전에야 처음으로 들어가서 식물들을 찬찬히 둘러봤다. 더 이상 화분 개수를 늘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올여름을 지나며 식물 몇 개를 떠나보낸 탓에 기회가 온 거다. 어떤 식물을 살지 그 흔한 검색도 안 하고 무작정 들어가 식물을 선택해 버렸다.
경험에 의하면 잎이 두꺼운 식물이 키우기가 쉬웠다. 그리고 풀이 아닌 '나무'. 고무나무, 홍콩야자, 녹보수 같은 것들은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냉해를 입고도 잘 버텨주었으니. 하지만 정작 내가 들여온 새 식구는 유칼립투스다. 마침 화원을 방문했을 때 사장님 손에 유칼립투스가 들려 있었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다. 유칼립투스는 키우기 까다로운 식물로 알려져 있다. 몇 년 전 도전했다가 실패했던 경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뿜어내는 향이 좋아서 홀린 듯 돈을 지불하고 말았다.
남는 화분을 들고 가서 분갈이까지 맡겼다. 좌우 대칭으로 예쁘게 잘 심어진 식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양손으로 화분을 끌어안고 돌아오는 데 정말로 집에 누구를 데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사장님께 물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여쭤 봤는데 이틀에 한 번은 줘야 한단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일주일에 두 번 줘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이시니, 물 줄 제때를 찾는 게 참 어렵다.
늘 생활하는 거실 한쪽에 화분들을 모아 두어도, 몸을 일으켜 자주 잎을 살펴 주는 게 왜 그리 어려운 일인지. 일주일에 한 번씩만 몰아서 물을 주고 있다 보니 '식물 서바이벌'처럼 적응하는 놈들만 살아남고 어떤 건 물이 부족해서, 또 어떤 건 과습으로 죽는다. 일부러 유칼립투스를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두었다. 지금의 건강하고 촉촉한 이 이파리들을 잘 지켜주리라 자못 비장해지는 마음. 또 죽이면 어쩌나 슬그머니 올라오는 조바심.
하지만, 이내 그러지 말아야지 한다. 그래봤자 식물일 뿐이다. 성의를 다하겠지만 또 말라죽게 된다면 어쩔 수 없는 일. 잘해보려고 했던 나의 노고를 인정하고 산뜻하게 안녕할 뿐이다. 일부러 망쳤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리 없지 않은가. 혹시 뭔가가 부족했다 하더라도, 그랬다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나 자신에게 좀 더 다정해지고 싶다.
뇌과학에 관심이 생겨 교양 과학 서적을 읽다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 뇌의 목적은 오직 한 가지라는 것. 나의 생존. 인간의 뇌는 '객관적이고 정확하게'가 아니라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한단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일부러 왜곡을 만들어내면서. 이렇게 나의 뇌가 애쓰고 있다! 뇌의 지휘를 받아 신체의 모든 기관들도 나를 지키려 총력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또다른 나는 팔짱을 끼고선 스스로를 지적하고 탓하면서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이라고 다 '마음의 소리'는 아닌데. 스스로를 갉아먹는 의심, 비관, 걱정 같은 것들에도 자주 마이크를 대주었던 것 같다. 마음 안에서 쩌렁쩌렁 울려 퍼지도록. 내가 생각들을 쏟아놓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왜 해?"라고 묻는 이들이 있었다.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적도 있었는데 어쩌면 문자 그대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질문이다. 나 자신을 돌보는 데 1도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생각을 왜 해?
여하튼, 유칼립투스는 성의껏 키워보련다. 그리고 나도. (2023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