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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쓰게 만든 힘

힘을 빼면 힘이 나요

by 박기복

애국조회를 아시는지. 내가 학생이던 시절, 아니 교사가 되고도 한참, 월요일 아침마다 애국조회라는 것이 열렸더랬다. 애국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빠졌던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주인공인 교장 선생님이 등장하기 전까지 학생주임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고 호통을 쳐가며 군기부터 잡았다. '앞으로 나란히'를 해가며 앞사람과의 간격을, '옆으로 나란히'를 해가며 옆사람과의 간격을 세심히 맞춘 후에 마치 못이라도 박아놓은 듯 정해진 자리에서 차렷 자세로 서있어야 했다. 쓰면서 문득 기억이 났는데 손모양에 대한 지침도 있었다. 계란을 쥐듯이 해라.


지금 생각해 보면 인권유린의 현장이다. 땡볕아래 그 어린아이들을 세워놓고 한 시간씩 그렇게 조회를 했었다니. 국기에 대한 맹세부터 시작해서 애국가 제창, 각종 상장 수여가 끝나면 인고의 시간이 다가오니, 그렇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다. 학생으로, 교사로 삼십 년이 넘게 학교생활을 했으니 나의 귀를 스쳐간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얼마나 많았으랴. 그러나 단언컨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운동장 조회에 대한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 교사 초임 시절, 조회 진행을 하시던 교무부장 선생님이 학생들과 다 같이 '파이팅!'을 외쳐야 하는 순간에 '위하여!(즐겨하시던 건배사)'를 선창 하는 바람에 웃음바다가 됐던 사건 정도.


잠깐 옆길로 샜지만, 여하튼 운동장에서 줄 맞춰 듣던 그 훈화는 길기도 참 길어서 몇 번에 한 번씩은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으니 서있던 누군가가 지쳐 쓰러지는 것이다. 그럼 잠시 근처가 소란해지고 체육선생님(여학교에서 체육 선생님의 인기란....)이 바람처럼 달려가 그 학생을 업고 보건실로 뛰어나가는 장면. 목청을 가다듬은 교장 선생님은 아랑곳 않고 훈화를 이어나갔다.


자, 이 장면에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아, 나도 쓰러지고 싶다. 그래서 저렇게 실려 나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십 대 때는 헛생각을 많이 하는 법이다. 내가 쓰러지고 싶었던 것은 관심을 받고 싶어서도 아니고 업히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연약하고 싶었다. 비련의 여주인공에 대한 되지도 않는 환상 같은 것이랄까. 방점은 비련이 아니라 '주인공'에 있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누구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다만 주인공, 그러니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고나 할까. 누구나 그런 마음 조금씩은 있지 않나.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같은 맥락에서 내가 부러웠던 또 한 가지는, 바로 '알레르기'였다. "나, *** 알레르기 있어."라는 반 친구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낯설지만 특별해 보이는 아우라 같은 것을 느꼈달까. (다시금 말하지만 십 대 때는 헛생각을 많이 하니까) '나도 알레르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바람은 놀랍게도, 이루어졌다.


2002년, 이미 교직 2년 차를 맞이하고 있던 어느 날, 아침에 잠에서 깼는데 한쪽 눈이 살짝 부풀어 있었다. 한 번도 겪지 못한 일이라 병원에 갔고, 의사는 '알레르기'라고 했다. 아, 드디어 알레르기! 같은 생각을 한 건 아니다. 나는 이미 성인이었고 어린 내가 원했던 알레르기도 결코 이런 장르는 아니었다. 살짝 올라왔다 사라지는, 특정 음식만 가리면 아무 탈 없는 그런 알레르기였지 이렇게 꼴 사납게 눈이 퉁퉁 부어 출근하기도 어려워지는 그런 게 아니었단 말이다.


"그럼 나을 수 없나요?"라고 묻는 나에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알레르기란, 환경과 나와의 상호작용입니다. 환경이 변하든, 체질이 변하든 하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의사의 말은 맞았고 그로부터 20년 넘게 종종 눈이 붓는 알레르기 반응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먼지가 많은 곳에 가면 눈꺼풀이 부어오른다. 신선도가 떨어지는 해산물을 먹었을 때는 모기에 물린 듯 눈 주변이 빨갛게 올라왔고(이 정도는 애교), 진통제 성분이 들어간 약을 먹으면 이틀이 꼬박 지나야 원상복구가 될만치 눈이 퉁퉁 부어올라 출근을 할 수 없었다.


수년 전에도 약을 먹고 알레르기 반응이 크게 일어나 약사인 친구에게 처방전을 사진 찍어 보냈다. 앞으로 병원 가서 무슨 약에 알레르기가 있다고 해야 되냐고 문자로 물었다. 답이 오기를 'NSAID 계열 약을 먹으면 안 될 것 같다'라고 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병원에 갈 일이 있었다. 진료를 받고 나오며 의사 선생님에게 말했다. "저기요 저, 엔-에스-에이-아이-디 계열 약에 알레르기 있어서요. 그건 처방해 주시면 안 돼요."라고. 뭔가 전문용어를 말한 것 같은 우쭐함이 없지 않았다. 의사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아, 엔세이드요? 알겠습니다."


부끄러웠다. 대문자로 알려주기에 알파벳 하나씩 끊어 읽어야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왜 붙여서 읽을 생각을 안 했나 화끈거리다가 나중엔 혼자 피식피식 웃게 되었는데, 이런 장면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시장에 가서, "저기요, 비-에이-엔-에이-엔-에이(바나나) 있나요? 혹시 티-오-엠-에이-티-오(토마토)는요?" 이렇게 생각하니 또 어찌나 웃기던지. 한동안 수업 시간에 에피소드로 들려주며 한데 웃었던 기억이 있다.


오늘 퇴근 후, 감각 신경에 졸도 선고를 내린 의사 선생님을 또 만나고 왔다. 아직 신경이 의식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한 거 같아서 첫 진료 때 언급된 약을 처방받을 요량이었다. 처방약에 진통제 성분은 없지만 혹시라도 이상이 생기면 꼭 연락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접수대 간호사는 한술 더 떠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면 전화를 꼭 달라고, 반응이 심하면 응급실부터 가라고 한 번 더 겁을 준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약을 먹을 마음이 생기지 않아 아직 약국엔 가지 않았다.


가방에 접어서 처박아둔 처방전을 발견하고, 노트북을 열어 생각나는 대로 쓰다 보니 벌써 이만큼이나 썼다. 내 안에는 이야기가 없어서 나는 글을 쓸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잘 쓰려는 생각을 내려놓으니 별의 별것도 다 글감이 된다. 요 며칠 왕성한 집필은 내려놓음에서 시작되었다. 힘을 빼니 힘이 난다. (20230818)


-사진출처: 2006.11.26. 한겨레신문 기사 '변하지 않는 애국조회'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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